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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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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공유지의 담장을 낮춰라

‘한국 오픈액세스 운동’의 경과 보고서 <지식을 공유하라>
등록 2022-05-21 08:16 수정 2022-05-22 02:38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딸이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사이에 외국의 전자저널에 ‘국가부채’ ‘셔먼법’(미국의 반독점법)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친 영향’ 등 3가지 주제의 논문을 실었고 그중 한 편은 케냐 출신 대필 작가가 대신 써줬다는 증언이 나오자, 2022년 5월16일 경찰이 ‘논문 대필 의혹’ 고발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한 장관은 “(딸이 돈을 주고 논문을 실었다는) 오픈액세스 학술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논문과 리포트를 올릴 수 있는 매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지식공유연대, 전국교수노조 등 연구자 단체들은 “문제의 전자저널은 전형적인 가짜 학술지”라며 “한 후보자의 해명은 오픈액세스 저널에 대한 무지와 왜곡, 궤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오픈액세스는 “학술 지식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그 공공재적 성격을 강화하는” 지식공유의 대안적 플랫폼이다. 돈 주고 에세이를 싣는 가짜 학술저널과는 전혀 다르다. <지식을 공유하라>(빨간소금 펴냄)는 지식공유연대가 2020년 7월 창립한 이후 벌여온 ‘한국 오픈액세스 운동’의 경과 보고이자 그 확장 가능성을 탐색한 책이다. 학자와 연구자 12명이 지식의 공공성, 지식공유운동의 역사와 필요, 지식공유운동의 현재와 과제라는 세 가지 큰 주제에 대해 각기 글을 쓰고 대담을 나눴다.

지식공유운동은 학술 지식마저 상품으로 유통되는 세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인류의 문화와 지식의 역사는 사회 구성원들이 생산·공유·전승하면서 발전하고 사회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해온 커먼즈(공유지)의 역사”였다. 그러나 복제기술의 발달과 함께 저작권 개념이 생겨났고, 신자유주의는 그 상품화를 부추겼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도 학술 데이터베이스 업체에 논문을 실을 때 ‘저작권양도계약서’를 쓰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업체의 플랫폼에서 논문이 배타적으로 유통되면 저자도 자기 논문을 유료로 내려받아야 한다. 디비피아 같은 학술 콘텐츠 업체들이 구독료를 급격히 올려도 속수무책이다. 업체와 계약한 대학이나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연구자와 일반 시민은 유용한 지식에 대한 접근에 큰 제약을 받는다. 널리 이롭게 쓰이는 지식정보의 공유지에 저작권을 앞세운 사유지 인클로저가 담장을 높이는 모양새다.

윤종수 변호사는 저작권과 소유권의 차이를 짚은 뒤, 오픈소스 라이선스와 크리에이티브코먼스 라이선스 등 지식공유의 법적 수단을 소개한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는 “학문과 학술정책을 시민적 권리의 하나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배균 서울대 교수(지리학)는 학술 지식의 지속적·안정적 생산의 토대로서 연구자학술협동조합 모델을 제시한다. 이수상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과 글로벌 학술출판그룹 엘스비어가 기존 구독계약의 오픈액세스 계약 전환을 놓고 벌인 팽팽한 협상 결과와 그 파장을 소개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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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박홍규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1만8천원

전방위 인문학자가 전통적 권위에 맞서 혁신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했던 ‘시대의 아웃사이더’ 57명의 삶과 투쟁을 한데 모았다. 권력 없는 자유를 추구한 표트르 크로폿킨, 의사들의 기득권과 싸운 의사 마이클 사디드, 히피족에서 환경운동가가 된 나오미 클라인, 눈먼 시대를 투시한 조제 사라마구 등.

우크라이나 전쟁,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각축전

알렉스 캘리니코스·김준효 외 4명 지음, 책갈피 펴냄, 1만7천원

영국·미국·러시아·한국의 사회주의자 지식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라는 틀로 분석했다. 옛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의 역사, 전쟁을 둘러싼 러시아 내부의 논쟁과 반전 시위, 서방의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의 지정학적 파장을 들여다본다.

깻잎 투쟁기

우춘희 지음, 교양인 펴냄, 1만6천원

이주인권 연구자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부제)의 기록. 한국인의 밥상에 올라오는 채소의 대부분은 고용허가제에 묶인 이주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의 수확물이다. 참혹한 주거환경, 살인적 노동과 임금 체불, 만연한 인권침해는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소설 3선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문학동네 펴냄, 각 권 1만5천~1만6천원

202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탄자니아 출신 영국 작가의 장편소설 3편이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 <낙원>(왕은철 옮김), <바닷가에서>(황유원 옮김), <그 후의 삶>(강동혁 옮김). 종교탄압의 기억과 망명 이주, 정체성과 소속의 문제, 식민주의와 다른 문화권 편입 등의 경험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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