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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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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2차, 3차 어묵, 부산어묵로드

부산역 어묵 베이커리 → 어묵 박물관 → 부평깡통시장,
부산 어묵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맛보다
등록 2022-05-14 13:39 수정 2022-05-15 01:42

“한입 베어물면 한 시대가 입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백년식당>(박찬일, 2014) 책 표지의 문구다. 백년식당 전체를 아우르는 말로 손색없어 대표 문구로 골랐을 것이다. 이 문장의 앞 문장은 이렇다. “부산어묵에는 우리 역사가 다 들어 있다.” 부산의 ‘삼진어묵’ 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우리 역사까지는 아닐지라도 부산어묵에는 적어도 부산 사람들의 역사가 다 들어 있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의 피에는 ‘오뎅 국물’이 흐른다(본문에는 오뎅과 어묵이 혼재해 있다. 그 이유는 뒤에 밝힌다).

부산 사람에게 어묵은 김치급이다. 부산 출신이면서 서울을 떠나온 지 20년인 J씨. 부산의 어머니가 김치와 함께 그에게 보내주는 것은 시장 어묵이다. 그의 말끝에서도 부산 사투리가 사라졌지만, 포장마차의 어묵꼬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오늘도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 서울역사에서 오뎅을 하나 먹었다.

부산 사람은 어묵에 박식하다. 최근 <한겨레21>에 합류한 S기자. 사무실에서 사람들끼리 어묵 이야기를 하는데 “저희는 ××어묵 먹어요” 한다. 고향이 어디? 물을 필요가 없다. 집에서 워낙 어묵을 먹어와서 여섯 살 딸도 어묵을 잘 먹는다고 한다.

“떡볶이에서 떡보다는 어묵을 더 좋아해요. 메뉴에 ‘어묵만’이 있으면 그걸 골라요.”(은재) 그래서 떡도 어묵처럼 담가 먹는다. “물떡이라고 이것도 다른 지방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기데요.”(나영)

서울에서도 부산어묵이 눈에 띄게 늘어난 요즈음, 부산으로 갔다. 피에 오뎅 국물이 흐르는 부산 사람 이은재(42)와 조나영(42)을 만나 길거리어묵을 먹었다. 해장이 필요하도록 어묵 안주로 술을 마셨다. 다음날 어묵으로 해장했다. 부산역 주변의 어묵로드를 구성해본다.

 #1차  부산역사 베이커리: 전국으로 나아가다

“어묵을 베이커리 형태로 내면서 어묵을 반찬 아니라 간식으로 먹는 사람도 많아졌지요.”(은재)

부산역사에는 ‘어묵 베이커리’가 있다. 빵집처럼 쟁반에 어묵을 골라 담아서 계산한다. 이제 10년이나 된 일이니 많은 이에게 맨숭맨숭하지만, ‘촌놈’ 같은 누구에게는 색다른 경험이다. 금방 구운 빵 같은 어묵, 어째 빵보다 더 맛있다. 베이커리 상품은 “신선도와 모양이 어그러지는 문제” 때문에 택배 불가 상품이다. 그러니 부산을 밟은 사람에게서 전해지는 ‘레어템’(희귀상품)이다.

2014년 삼진어묵이 부산역사 매장으로 들어온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코레일의 입찰을 뚫은 것이 화제였다. 삼진식품 대표인 박용준씨는 케이티엑스 승객들이 대전에서 성심당 빵을 들고 기차를 타는 것을 보고 역사에 입점하는 것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전략은 주효했고, 문을 연 뒤 3년간 코레일 역사 판매 2위이던 대전 성심당 매출의 2배를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부산역사에는 삼진어묵에 이어 2017년부터는 환공어묵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삼진어묵은 부산역 양쪽에 베이커리 매장을 마련해놓았다. 현재 부산역사에는 환공어묵 외에도 부산오뎅 부산역 출구점이 있고 정면에 부산초량어묵직판장이 있다. 김포공항에서 오르든 부산역에서 오르든 사람들은 어묵을 사는 게 자연스럽게 됐다.

(이름만이 아닌 부산에서 만들어진) 부산어묵의 약진은 전국적이다.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피코크 어묵 상품의 이마트 매출(온라인 합산)은 2019년 29억원, 2020년 35억원, 2021년 42억원, 2022년은 50억원(추산)이다. 2022년 1~4월 이마트 전체 어묵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4~5%포인트 올랐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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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영도구 삼진어묵 체험역사관: 왜 부산어묵인가

부산역에서 버스 101번, 88-1번을 타고 15분가량을 가면 삼진어묵 체험역사관이 나온다. 1층에는 1호점 베이커리가 있고 2층에는 찌고, 튀기고, 구워 어묵을 만드는 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부산에는 고래사어묵에서 만든 어묵박물관이 해운대와 부전시장에, 미도어묵 박물관은 부평깡통시장(아래 3차 장소)에 있다.

2011년 삼진어묵은 1953년부터 이 자리에 있던 공장을 정리하고 사하구로 옮겼다. 어묵이 2012년 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HACCP)의 의무적용 대상 품목으로 지정되기 전 부산의 부산어육제품종합협동조합은 “어묵이 비위생적”이라는 인식을 불식하기 위해 자율 규제에 들어갔다. 위생적이고 전문적인 현대적 시스템을 마련했다. 당시 부산은 1980년대 후반 ‘중소기업 고유 업종’ 중 어묵 제조업이 제외돼 전국 규모의 식품기업이 어묵산업으로 진출하고, 2000년대 들어 대기업까지 어묵을 선점하면서 쇠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부산어묵을 나락으로 이끈 것이 ‘규제 철폐’였다면 부흥으로 이끈 것은 ‘관리’였다.

왜 부산어묵인가. 통칭하지만, 역사의 매장이 보여주듯 부산어묵은 다 다르다. 부산 출신 J씨는 “서울에 올라오니까 ‘부산어묵’이라고 써놨는데, 갸우뚱했다. 부산에도 맛있는 어묵이 있고 맛없는 어묵도 있고 그런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010년대 부산어묵의 부흥기는 ‘부산’이라는 이름을 버리면서 만들어졌다. 부산어묵은 배타적 생산자표시제도의 혜택을 볼 수 없었다. 대부분 원양의 연육으로 만들어지는 어육은, 표시된 지역의 재료를 60% 이상 써야 한다는 생산자표시제도를 충족할 수 없다. 대기업도 마음껏 부산어묵을 쓸 수 있다. 삼진어묵은 2013년 리뉴얼하면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이라는 ‘삼진어묵’을 내세우자는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그 방향을 따라 다른 어묵들도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부산어묵에 합류했다.

2010년대 들어 부산 개개 기업의 일개 약진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부산 전체 어묵산업이 커졌다. 어묵이 식품 대기업의 다품종 상품에서 전문 기업의 강소상품으로 전환돼갔다. 삼진어묵의 이금복 장인 역시 “어묵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어묵을 제조하고 출시할 수 있다”며 “어묵산업의 성장은 삼진어묵뿐만 아닌 부산의 어묵회사가 경쟁력 있는 식품으로 나아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2018년 부산의 어묵 사업체는 61곳(전체 어묵 사업체의 22%), 종사자 1996명(18.7%)으로 경기도에 이어 2위 규모지만, 생산능력은 경기도의 1.8배(16만8천톤)로 1위다. 생산량 77만9천t(29.3%) 역시 2위지만, 판매액은 2972억원(32.4%)으로 1위이다. 10년 전에 비해 2배 증가했다.(부산시 제공) 부산시 관계자는 “2014~2018년 5년간 어묵전략식품사업단의 고부가가치 산업화 지원정책의 효과”라고 전한다.

 #3차  부평깡통시장: 부산에서 70년

삼진어묵 체험역사관에서 영도우체국 거리로 나와 버스 113번을 타면 부평시장으로 간다. 해방 뒤 미군정 시기 ‘깡통’으로 된 해외 제품이 쌓여 있던 곳이다. 가까이 국제시장이 있다. 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던 영화거리가 조성됐던 남포동이고, 뒤는 보수동 헌책방이다. 먹자골목이 늘어선 이곳에 어묵특화거리가 있다. 대원·오륙도·효성·환공·범표·국제·참어묵·어묵고 등의 상점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의 상점들도 강소기업에 합류한다. 깡통시장 할매유부주머니집은 어묵과 유부주머니를 묶은 상품을 인터넷에서 판다. 특화거리에는 어묵꼬치 가게와 즉석어묵 가게도 있다. 어묵꼬치 가게의 꼬치를 먹으면서 “무슨 어묵 쓰시냐” 물으면 “저희는 △△어묵 씁니더” 정확하게 알려준다.

국물을 후후 불며 나영이 이야기한다. “해장으로 정말 좋아요.” 부산의 술집 거리 정류장에는 꼭 어묵 포장마차가 있단다. “술 먹고 파할 때 꼭 오뎅집 앞에서 헤어져요.” 부산 어묵로드의 일행은 말하는 중에 거의 ‘어묵’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스시를 초밥으로, 오야꼬돈부리를 고기알덮밥이라고 고쳐야 한다면 짜장면은 되된장가락국수로 해야 할 것이고 (…) 어째 요리뿐이랴 넥타이는 사나이들 목에 매는 양댕기로, 파마는 까치둥우리머리 혹은 볶아낸 양머리로 아파트는 줄살이양샛집으로 (…) 다꾸앙을 왜짠지라 명명했는데 적어도 일국의 어학회로서 그리고 소위 학자들로서 일본짠지라 하지 않고 왜짠지라고 한 것…” 소설가 박계주가 일본 언어 순화 정책에 의문을 제기한 1949년 글이다. 이런 상황은 2022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맛칼럼니스트 박상현씨는 “일본 오뎅과 한국 오뎅의 뜻이 다르다. 오랫동안 순화시키려 했지만 잘 안 되는데, 오뎅이라는 언어를 못 쓸 게 뭔가”라고 말한다.

일본 요리 만화책 <맛의 달인>에 나오는 ‘오뎅’을 어묵탕으로 번역했다고 지적하는 나무위키(마니아들의 문화 위키 사전)를 비롯해 한국인의 일본 문화유산 음식에 대한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KBS <한국인의 밥상> ‘어묵과 오뎅, 그 100년의 기억’ 편(2014년)까지 오뎅과 어묵의 관계는 단순하면서 복잡하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진행자 최불암은 한국인의 삶 속에 뿌리내린 어묵을 본 뒤에야 ‘안도’한다. “(구포의 철길을 걸으며) 서로 평행해서 만나지 못하는 철길처럼 한국 음식과 일본 음식이 서로 제각각 발전해왔노라”며.

그러니 부산 사람들의 핏속에 흐르는 것은 일본 음식 오뎅도 아니고 어묵도 아니고 부산 오뎅 국물이다. 참고로, 일본인은 오뎅 요리의 국물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의 오뎅, 한국의 오뎅탕을 먹으러 남포동의 한 술집으로 향했다. 분위기 좋은 술집은 곧 있으면 백년식당이겠네, 싶다. 부산어묵만 이제 70년이다.

부산=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참고자료: <부산어묵사>, 부산학교양총서, 2016
도움말: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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