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적을 때마다 헷갈리는 단어다. ‘인터뷰’라는 행위를 두고 행하는 주체(인터뷰어)와 당하는 객체(인터뷰이)가 민첩하게 머릿속에 정돈되지 않는 탓이다. 인터뷰어는 질문 몇 개를 던질 뿐이다. 주체라기엔 어딘지 미심쩍다. 인터뷰이는 대화 대부분을 점한다. 글의 목적 또한 그의 모습을 그리는 데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 주인 아닌 손님(객체)의 접미어(-이)를 달고 있는가. 애먼 데 심통 부리다, 끝내 대상이 있는 모든 말과 글의 주인과 손님 자리를 궁리하게 되는 것이다.
김혜리(51)의 이력. 1995년부터 <씨네21> 기자로 주로 <씨네21>에 글 썼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김혜리가 만난 사람’ 꼭지에 배우부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의) 창작자 50명의 진심을 옮겼다. 인터뷰어였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279편을 적었다. ‘영화가 쓰다듬고 부딪히고 할퀸 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남긴 인증숏’ 같은 글로 설명한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그림 에세이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를 썼다. 낯설고 아름다운 그림과 낯익은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했다. 영화 혹은 그림 리뷰어였다. 물론 특별한 꼭지명을 달지 않은 영화 기사와 리뷰, 인터뷰는 더 많다. 리포터였다. 홀로 저자가 된 책 여섯 권(25쪽 출간 목록 참조)은 그런 글을 추리고 덧댄 모음집이다.
10년 훌쩍 넘는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과 팟캐스트에서 주로 영화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했다. 그의 목소리를 거친 영화와 사람은 다단하여 넓었는데, 덕분에 세계와 예술 보는 법을 익힌 (것으로 착각한) 청소년이 몇 트럭쯤 된다.(<한겨레21> 뉴스룸에도 몇 있다.) 지금은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과 <조용한 생활>을 진행한다. 호스트다
이력 안에서 김혜리는 줄곧 인터뷰어·리뷰어·리포터, ‘-어’의 자리에 있다. 바라보고 적고 말하는 주체다. 태도는 자리와 불화한다. 주인의 자리를 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안방은 응당 포착‘된’ 영화와 인터뷰‘당한’ 인물 몫이다.
책은 곧잘 이런 말로 연다. “인터뷰라고 하면 저는, 상대방의 정원 한구석에 앉아 울타리 밖과 집 안을 번갈아 넘겨다보며 주인의 성격을 짐작하는 광경이 떠오릅니다.”(<진심의 탐닉>, 4쪽) 한편 직장인이다. 책 쓰자고 작정하고 글 쓴 적이 없다. 써낸 글은 작품이 아닌 생계의 결과물로 여긴다. 책은 결국 이런 말로 닫는다. “책에 대한 경외심을 품어온 제게 이 작은 문집은 기만이고 일탈입니다.”(<영화야 미안해>, 394쪽)
바라보는 자의 권력남용을 염려하는 마음, 자기 글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태도. 도무지 ‘-어’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자세는 20여 년 내내 한결같았다. 이제 완벽한 설득의 단계에 이른 듯하다. 팟캐스트 <필름클럽> 공개방송(15회)에서 저서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를 낭독하기 직전 ‘에휴’, ‘끙’(보다 더 이상한 소리) 하는 신음이 그의 몸에서 비어져 나올 때, 오래 알아온 청중은 그러려니 웃고 만다.
손님이라 주인(영화와 인물)의 심기를 예민하게 헤아렸고,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면밀히 살폈다. ‘자신’에는 물론 관객이며 독자인 우리도 포함된다. 김혜리의 헤아림이 아니었다면, 조앤 이어들리의 그림을 보며 한 사람으로 아이들을 인정하는 태도가 맹목적 애정만큼 의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다.(<그림과 그림자>, 95쪽) 성장영화들이 품은 노스탤지어가 미래와 맺어진 정서일 수도 있다고,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영화야 미안해>, 188쪽) 이런 목록은 백 개도 더 적을 수 있다.
좋다. 다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영화와 사람 뒤에 잠자코 숨기에 그의 문장이 지나치게 아름답다. 상찬의 대상이며 또한 선망의 대상이다.(“나는 그냥 잘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처럼’ 잘 쓰고 싶다”(신형철 문학평론가), “많은 여자 영화기자들은 ‘김혜리처럼 쓰고 싶다는 나를 극복하는 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하는데…”(이다혜 <씨네21> 기자) 등으로 표현된다.) 독자는 끝내 그를 주인의 자리에 두고 싶다. 이 모든 문장의 소유자로 지목하고 싶다. 동경하는 마음이 향할 곳이 인물과 영화를 넘어, 또한 그의 문장이기를 바란다.
2022년 3월11일 서울 합정동 북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인터뷰의 목적은 김혜리와 그의 문장을 (무려 스스로의 진술을 통해) 마땅한 숭모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 데 있다.
그는 예의 작고 활발한 손짓을 곁들여, 역시 물샐틈없이 방어했고 우리는 씁쓸히 패퇴했다. 앉자마자 예감했다. “저 글쟁이 아니에요. 기획 취지에 안 맞아요. 그마저 최근에는 거의 쓰지 않아서요.” 이어질 인터뷰는 그리하여, “나는 글쟁이가 아니”라는 김혜리의 제법 긴 설명에 그친다. 다만 끝내 김혜리가 주인공인 두어 순간 정도는 그를 오래 좇은 독자와 청자라면 눈치챌 수도 있다.
질문과 답 사이 김혜리의 문장을 뜬금없이 적어 넣는다. 멋없는 삶에 가끔 그의 문장이 톡 하고 끼어들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었다. 그 마음만은 지고 싶지 않았다.
-글을 보거나 방송을 들으면 의외로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 잦습니다. 차분하고 엄정할 것 같은 김혜리에 대한 선입관과 달리, 유쾌한 분과의 대화를 더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유머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단호) 나를 웃게 해주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고 매력을 많이 느껴요. 자기 삶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있잖아요. ‘아이, 그냥 하루 사는 거야, 분윳값 버는 거야’ 하는. 그런데 그게 절대 성실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거든요. 너무 진지하게 두괄식으로 사는 사람보다는 매일매일 즐기고 집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좀더 매력 있다고 여깁니다. 살짝 놀리면서 하는 대화가 재밌기도 해요. 다만 점점 조심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누굴 만나도 제가 아래 세대에 속했는데 이제 저보다 젊은 분을 더 많이 만나게 돼서요. 농담하고, 놀린다는 게 기분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잖아요.”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경기를 보다가 타이슨이 귀를 물어뜯는 장면을 보고 계시처럼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고 했는데, 진정 그랬나요?// 뭐랄까, 경기도 삶도 규칙이 있잖아요? 그런데 타이슨이 규칙 안에서 하다가 안 되니까 답답해서 상대방 귀를 깨물어 뜯더라고요. 우와, 싶었죠. -소설가 박민규를 인터뷰하며, <그녀에게 말하다>
-좋은 인터뷰와 나쁜 인터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좋은 기사를 만들어내면 그걸로도 안심입니다. 인터뷰이가 ‘그런 각도로 볼 수 있는지 몰랐다, 나에게도 도움이 됐다’ 이야기해줄 때 조금 더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그럴 때면 ‘밥값은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쁜 인터뷰는 잘 안 들은 것 같은 인터뷰입니다. 인터뷰어의 질문이 답보다 더 중요한 인터뷰도 가끔 있습니다. 마감이 늘 촉박했지만 글을 다시 볼 시간이 있고, (200자 원고지) 2.5장만 줄여야 한다면 내 질문부터 쳐내려 했습니다.”
-질문할 때 특별히 생각하는 부분 있습니까?
“인터뷰이의 호흡. 어떤 분은 질문을 던지고 (고개를 주억이며) 셋, 넷 하고 답변합니다. 어떤 분은 바로 질문의 끝을 잡고 답합니다. 그 호흡을 존중하지 않으면 생각 중에 끼어들거나, 생각하고 있던 답 대신에 다른 질문을 하는 일도 생길 수 있어요. 예전에는 질문을 많이 뽑아 갔는데 그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질문 개수를 줄여보려고 합니다. 우선 제 체력이 달립니다. 물론 상대의 집중력도 흩어집니다. 서너 시간을 허락받아도 그 시간을 다 채우는 게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3시간15분 이후의 말에서 쓸 게 없거나 겨우 한두 개 건진 일도 있어요.”
*영화, 글, 자신에 대한 김혜리 기자와의 본격적인 인터뷰는 ‘김혜리, 프레임의 세계를 다시 보여주는 영화기자 [21이 사랑한 작가②]’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57.html
<김혜리 기자의 영화야 미안해>(도서출판 강, 2007)
<영화를 멈추다: 서른 편의 영화, 서른 개의 장면>(한국영상자료원, 2008)
<그녀에게 말하다-김혜리가 만난 사람>(씨네21북스, 2008)
<진심의 탐닉-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씨네21북스, 2010)
<그림과 그림자>(앨리스, 2011)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어크로스, 2017)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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