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채사장(41)의 등장은 ‘사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문학 책을 쓰려면 박사나 교수 같은 타이틀을 갖춰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그의 첫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 1권은 갑자기 튀어나와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출판시장을 흔들었다.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지만 학계에 몸담은 건 아니고, 창업 등 여러 직업을 거친 채사장은 첫 책에서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등 ‘현실 세계’를 한 두름으로 뀄다. <지대넓얕> 2권에선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 등 ‘현실 너머’를 과감하게 횡단했다. 그의 책은 방대한 인문학 앞에 위축된 채 서성이던 독자에게 쉽고 친절한 지도가 됐다. 그 지도를 그리며 그는 지식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놓인 권위의 경계를 허물었다. 인문교양서 여섯 권과 2021년에 나온 첫 소설 <소마>까지, 300만 부 넘게 팔렸다. 2022년 3월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채사장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글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자아는, 세계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나는 누구인가? <지대넓얕 0(제로)>의 서문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 ‘파잔’에서 시작한다. 아기 코끼리가 완전히 순응해 관광객을 등에 업고 걸을 때까지 때리는 의식이다. 그의 책은 자기를 잊은 코끼리에게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영혼에 대해 묻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채사장은 돈 버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질문과 답으로 자본주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책이) 많이 팔릴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제 주변 사람들한테 주고 같이 얘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그러다보니 부담이 하나도 없었어요. 하루에 열 군데씩 출판사에 보내보자 했는데 첫날 네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잘 팔리니까 걱정도 많이 됐던 거 같아요. 이렇게 많이 팔릴 책이 아닌데….”
2011년 그는 회사 동료들과 제주도로 여행 갔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버스가 몇 바퀴 굴렀고 그는 현장에서 동료의 주검을 보았다. 제대하고 세상에 적응해보려 한동안 돈 버는 일에 골몰한 그는 이제까지 공부했던 세계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죠. 불안도 있었을 거고요.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는 게 유일한 재미였는데 항상 아쉬움이 있었던 거 같아요. 친구를 만나도 계속 겉도는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우리가 최소한 공통의 뭔가를 공유한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다음 얘기를 해나갈 텐데. 누구나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지대넓얕> 1권은 초고를 거의 1~2주 만에 썼어요.”
<지대넓얕>의 매력 중 하나는 구조다. 방대한 지식의 맥락을 잡아준다. 예를 들어 <지대넓얕> 2권의 열쇳말은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다. 진리를 향한 태도를 기준으로 나눈 분류는 철학, 과학, 예술 등을 엮어내는 뼈대다. “(<지대넓얕>을 쓸 때) 누구나 아는 내용이니까 구조화만 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뭔가 모르고 못 배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거든요. 우리가 이미 스냅사진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으니 저는 이걸 정리하는 앨범 같은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대넓얕> 1권과 2권을 통해서 그다음 계단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왜 한 우물을 깊이 파야 하죠?그가 독자와 함께 계단을 올라 닿고 싶은 궁극적인 지점은 ‘신비’,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2016년 이후 나온 책들,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지대넓얕 0>는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그가 찾은 답을 언어로 표현하긴 쉽지 않다. 우파니샤드(고대 인도의 철학 경전)에 따르면 ‘범아일여’라 하겠다. 자아와 우주는 하나라는 거다. 우주는 마음이 만들고 마음 안에 우주가 펼쳐진다. 무슨 말일까? “저는 ‘봤다’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이거구나. 4~5년 전에 정확하게 이해한 시간이 있었어요. 불교, 베다, 노자가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지금 이 감각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는 그 구심점이 나이지, 이거 이외에 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이 ‘보고 있는’ 구심점으로서의 자아는 여러 조건이 형성돼 만들어졌어요. 조건이 사라지면 이 ‘보는 자’도 사라질 거예요. 그런데 시간은 영원하고 물리적 조건은 유한하니, 언젠가 특정 조건은 반복될 것이고, 그렇다면 내 의식이 다시 발현되는 거구나. 아, 이렇게 설명하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이 어려운 답을 설명하기 위해 <지대넓얕 0>에서 우주에 대한 가설부터 펼쳐놓았다. 빅뱅, 다중 우주, 양자물리학, 11차원… 이어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 경전의 핵심을 짚었다. 책 <열한 계단>에서 그는 하루에 거의 한 권씩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고 썼다. 일부러 “불편한 책들”,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 균열을 내는 책들을 읽었다. 성서를 읽은 다음에 신은 없다고 선언한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식이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이토록 광범위하게 공부할 수 있을까? “사실,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에요. 깊이도 없고요. 질문이 명확했던 거 같아요. 자아의 문제죠.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답을 찾아야 하니 이것저것 들춰봤어요. 질문이 없었으면 헤맸을 거 같아요. 그리고, ‘봐서’ 아는 거 같아요. 파리 에펠탑을 본 적 없으면 설명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하이데거를 공부한 적이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 못했어요. 알쏭달쏭한 말로 그냥 어렵게 쓰면 사람들이 뭔가 있나 싶어 좋아하나보다 했죠. 그런데 제가 자아의 본질이 뭔지 ‘보니’ 쉬웠어요. 고전의 절반은 자아의 본질에 대한 얘기거든요.”
*채사장, 자아와 세계를 여행하는 당신의 친절한 안내자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83.html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한빛비즈 2014, 웨일북 개정판 2020)
채사장의 첫 책이자 밀리언셀러. 1권은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등 ‘현실 세계’를, 2권은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 등 ‘현실 너머’를 다뤘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웨일북, 2019)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 등을 아우르며 채사장이 도달한 자아와 세계의 본질을 풀어놓았다.
<열한 계단>(웨일북, 2016)
문학·철학·종교를 아우르는 인문학과 작가의 성장과정을 교차해 담았다.
<시민의 교양>(웨일북, 2015)
세금·국가·직업 등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양을 엮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웨일북, 2017)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소마>(웨일북, 2021)
채사장의 첫 소설. 가상세계 속 주인공 소마의 일생. 내면세계 체험을 서사로 풀었다.
채사장이 글쓰기 초심자에게 보내는 팁
자기 안에 질문이 있어야 해요. 책을 쓰고 싶어서 일부러 질문이 있는 것처럼 짜내면 누구나 진정성이 없다는 걸 알아요. 자기 안에 분명히 있거든요. 말하지 못하고 쓰지 못할 때 마음 안에 응어리진 별 같은 게 있어요. 억눌러도 튀어나올 수밖에 없을 때, 쓸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러면 어설퍼도 누구나 진정성이 있다는 걸 알아봐요.
둘째는 형식적 측면에서 반드시 퇴고해야 해요.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는 거라면 반드시 자기가 소리 내서 읽어보고 자연스럽게 다듬어가야 해요. 그런 과정 없이 날것 그대로 갖다주면 실패한 글이에요. 엉덩이로 쓰는 거예요.
-자기 안에 질문이 없다면?
그럼 좋은 거예요. 뭔가 약한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마음속에서 계속 질문이 발생하는 건 어떤 면에서 불안의 증거일 수도 있어요. 이 사람들이 형이상학적인 뭔가를 찾아 헤매요. 그런 사람들이 멋져 보일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저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강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잘 사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가족과 산책도 하고 맛있는 거 먹을 때 진짜 기뻐하고. 그런 건강한 사람들은 크게 질문하지 않아요. 저는 그 삶이 훨씬 나은 거 같아요. 만약 정말로 질문이 없다면 다행이에요.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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