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섭외를 위해 김원영(39)의 연락처를 뒤지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떠올렸다. 무겁고 지루해야 마땅할 변론집이 이렇게 거침없이 읽히고 흥미진진해도 되는 거야? 이 사람 대체 뭐지? 한바탕 충격이 휘몰아친 다음에 찾아온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어쩌면 이리 글을 잘 쓸까. 탐난다. 이 사람도, 그의 글쓰기도.
첫 통화는 불발. 두 번째 통화에서 드디어 목소리를 들었을 때 “요즘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저런 설득의 과정을 거쳐 며칠 뒤 만났을 때 “류승연 작가님이니까 수락한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 몇 년 전 팬심 가득한 마음으로 그의 북콘서트를 찾아가 친분을 쌓아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물었다. 왜 요즘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냐고. 그는 말했다. “말이 많은 시대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많은 말이 난무하는데 나까지 나서서 말을 더할 필요가 있겠나 싶었던 거죠.”
동의한다. 너무나 많은 말이 난무하니 진실도 거짓도 말속에 몸을 숨기는 시대다. 그렇다 해서 말하기를 중단할 수는 없다. 작가가 하는 행위, 즉 글쓰기 또한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말하기가 싫은 게 아니라 자기 말의 무게를 소화하지 못한 타자가 의미를 제멋대로 해석해 세상에 내놓는 게 싫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최대한 말을 아꼈다가 왜곡될 소지 없는 안전한 공간, 작가 스스로의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직접 말을 건네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더욱 엄중한 마음으로 이 글을 써내려간다. 인터뷰는 2022년 3월3일 경기도에 위치한 그의 집필 공간과 근처 카페에서 이뤄졌다. 그는 우아하게 휠체어를 밀며 자신의 집필 공간을 방문한 손님을 맞이했다.
김원영의 글쓰기는 10대부터 시작됐다. 중학교 때 용돈벌이를 위해 공모전에 글을 썼는데 덜컥 상을 받아버린 것이다. 김원영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쓴 언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전까지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멀어져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흐름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개인이었던 것. 그런 그의 언어에 세상이 반응했다. 세상과 그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탄력받은 그는 고등학생 때까지 상금 주는 공모전 글쓰기에 열심히 도전했다. “주제는 잘 기억도 안 나는데 무슨 원자력 찬성이었나? 그때는 뭘 알지도 못하면서 막 찬성한다는 글도 쓰고 그랬어요. 하하하.”
나는 지금이라면 전혀 쓰지 않을 원자력 찬성 글을 열심히 써서 공모전에 응시했던 중학생 김원영, 고등학생 김원영을 열렬히 지지한다.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타는 그는, 15살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은 채 집에만 있었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뼈가 부러지는 탓에 병원 갈 때를 제외하곤 외출하지 않았다.
“내 세계는 작은 방이 전부였다. 한쪽으로 트여 있는 미닫이문을 통해 마을의 개천과 다리가 보였다. 나는 한쪽 팔꿈치를 문턱에 올려 몸을 지지한 채 밖을 내다보았다.”(<희망 대신 욕망>)
강원도 작은 시골마을에 살던 그가 처음 대면한 세상은 재활원(지체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이었다. 달빛만이 들어오던 작은 방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배움이 열어준 신세계는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지만 그에게 재활원은 여전히 비좁은 세계였다. 더 큰 세계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 세상과 더 가깝게 연결되려는 욕망이 지금의 김원영을 있게 했을 것이란 짐작.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학창 시절에 열중한 공모전 글쓰기는 세상과 연결되고자 했다는 김원영의 간절한 마음이 닿은 하나의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자기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본격적인 글쓰기는 대학 때부터 시작됐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그는 언론사에 ‘장애 학생 이야기’라는 수기를 3부작으로 썼다.
“그 이야기를 쓰면서 거창하게 말하면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내 경험이 내 언어로 표현됐을 때 가지는 힘과 의미도 느꼈고요.”
소재는 많았다. 김원영의 삶은 그 자체로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했다. “(장애인으로) 매일 경험하는 분노와 좌절, 일상의 짜증과 각종 부당함이 있어요. 그런 것을 언어로 정제해서 표현하다보니 개인적 분노가 공적 의제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인간 실격이란 없다”는 의제를 던지며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발견되고 구축되는지 깊은 통찰을 보여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출간 4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인권 분야를 대표하는 저서로 꼽힌다.
“인간은 신체를 훼손당할 때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에 큰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 특유의 욕망과 선호, 희망, 자율성으로 구성되는 개별적 인격성을 인정받지 못할 때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크게 훼손당한다.”(<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그러나 나는 그보다 2010년에 출간되고 2019년에 새로 개정판이 나온 <희망 대신 욕망>을 더 좋아하는데, 그의 말을 빌리면 ‘참을 수 없이 민망한 표현과 묘사, 과잉된 자의식, 자기 서사를 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충동’이 곳곳에 보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희망 대신 욕망>에서는 나 자신을 글로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나를 해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내 서사에 기반해 사회 구성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한 증언이었던 셈이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는 처음부터 마지막을 꿰뚫는 하나의 통찰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향하는(설득하는) 글쓰기가 시작됐습니다.”
2021년 출간된 <사이보그가 되다>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쓰였다. 김초엽 작가와 공동집필한 이 책에서 김원영은 과학과 기술이 다양한 신체와 감각을 지닌 개인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전해가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을 사회에 던졌다.
“공동작업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어요.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앞선 저서들과 비슷한데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사례와 각도에서 재조명하는 것이 중요했거든요.” 청각장애가 있는 김초엽과 지체장애가 있는 김원영의 시각은 분명 차이가 있었고 그 덕에 책은 더 많은 담론을 더 다양한 각도에서 풍성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엔 모두 ‘장애’가 등장한다. 물론 김원영은 장애 당사자지만 그는 ‘장애인 작가’가 아니다. 그냥 작가인데 단지 장애가 있을 뿐이다. 그 차이는 크다.
“법학교과서를 쓰지 않는 이상 제 글에서 장애는 계속 다뤄질 겁니다. 그것은 장애가 내 정체성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그냥) 사람입니다. 다만 그 창작의 배경에 제 장애가 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제 글에 장애가 ‘등장’하는 것뿐이죠.”
*김원영, 고유함으로 출발해 세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다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87.html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푸른숲, 2010)
작가의 개인 서사를 통해 욕망이 왜 평등해야 하는가를 고찰한 책. 2019년 개정판 <희망 대신 욕망>으로 출간.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 2018)
장애나 질병, 가난, 볼품없는 외모, 부족한 재능, 다른 성적 지향을 이유로 세상의 법정에서 실격을 선고당한 이들을 위한 김원영 변호사의 반론.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 2021)
김초엽과 김원영이 만나 개인 경험을 통해 사이보그가 그려갈 미래에 대해 고찰한 담론집.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 부문 수상.
<랭스로 되돌아가다>(문학과지성사, 2021)
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 에리봉은 스스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계급적 정체성과 성정체성이 교차되고 갈등하는 모습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열린책들, 2015)
전미도서상 수상자인 앤드루 솔로몬이 들려주는 남다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이야기. 전미비평가협회상 수상.
류승연 작가·<배려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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