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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 자아와 세계를 여행하는 당신의 친절한 안내자 [21WRITERS②]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 쓴 채사장 인터뷰
등록 2022-03-29 11:52 수정 2022-03-30 01:28
사진=류우종 기자

사진=류우종 기자


*채사장, 에펠탑을 보듯 자아를 보았으니까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82.html

<죄와 벌>, “인간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존재”

그의 공부법은 한 우물을 깊게 파서 전문가가 되라는 한국 사회의 주문에 반한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억압하는 분위기가 싫은 거죠. 이 사회에서 먹고살려면 기능이 있어야 하니 전문성을 기르라고 하는 분위기는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거 같아요.” 그는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 이렇게 썼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강요한다. 특정 분야의 제한된 역할만을 수행하라. 자본주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한다. 하나의 특정 분야가 있다면 그 안에서 생산자는 전문적인 생산자의 역할로서 고정되고, 소비자는 충실히 소비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아쉽다. 왜냐하면 이러한 역할의 구분이 우리에게서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거칠게 정리하면, 세계가 내 마음이 일으킨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있을까? 각자가 일으킨 세계에서 꿈을 꾸는 건 아닐까? “어려운 문제예요.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제가 종교의 본질이 믿음이라고 한다면 나는 타인에 대한 종교를 갖고 있다고 썼어요. 논리적으로 모순돼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3차원 속에 눈떠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2차원 세계에선 동전의 앞뒷면이 전혀 다른 것이지만 3차원에선 하나인 걸 아는 것처럼, 지금 분리돼 보이는 것이 우리 의식의 다른(상위) 차원이 열리면 같은 얘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서로 마주 보고 앉아도 만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그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타인에 대한 ‘사실’을 안다고 하지 못하고 ‘믿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소통은 가능하긴 한 걸까? 회의하면서도 그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 글을 썼다. “만약 제가 타인에 대해 기대가 크다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알았을 때 고통스러울 거 같아요. 그런데 무인도에 있다고 해봐요. 양쪽에 컵이 달린 실전화로 대륙 너머 누군가가 얘기해준다고 생각해봐요. 어쨌든 우리가 닿고 있잖아요. 그건 참 반가운 일인 거 같아요.”

나는 누구고 어디로 가나? 이런 질문은 어른이 되면 잊기 일쑤다. 누구긴 누군가, 지금 부장에게 혼나는 자다. 가긴 어디로 가나, 회사로 간다. 그런데 그는 이 추상적 질문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대출처럼 치열하게 고민해왔다. 왜 놓지 못했을까? “그런 질문은 누구나 갖고 있죠. 숨겨져 있을 뿐이죠. 가족, 학교, 사회가 친절하게 말하잖아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그런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제가 그랬어요. 그런 사람들은 이 질문을 멈출 기회를 갖지 못해요. 제가 수업이든 직장 생활이든 잘 따라가지 못했어요. 좀 늦고 모자라고.”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 수학은 10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것만을 간신히 붙잡는” 방식으로 현실을 견뎠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행패를 부렸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선생님들이 싫어하는 학생이었던 거 같아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무기력한 아이요. 선생님한테 많이 맞았어요. 직장 다닐 때도 부장님 성질 돋우는 직원이었고요.” 고2 겨울방학 때 우연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인간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공부해 성적이 올랐다. 친구는 그에게 “머리가 새것”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성균관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4년간 장교로 군생활을 한 뒤 논술 강사, 주식투자 등 ‘돈 되는 일’은 다 했다. “사회생활을 잘하지 못해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어요. 인문학 하면 덮어놓고 자본주의를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세요. 저는 그분들 삶이 그래도 괜찮아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 먹고살려고 시장에서 구르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니까.” 이때의 경험은 그의 글쓰기에 녹아 있다.

여러 경전을 모아 놓은 채사장의 책장. 류우종 기자

여러 경전을 모아 놓은 채사장의 책장. 류우종 기자

‘직접인용’이 거의 없는 이유

<지대넓얕>에서 그가 쓴 주제들은 어렵다. 그런데 쉽다. 중간중간 그가 개념을 요약해 그린 그림도 등장한다. “아이들 가르칠 때 이 방법이 효과적이었어요.” 니체, 소크라테스 등 철학자들과 대화하는 식으로 풀어가기도 한다. 그가 씹어 소화시킨 결과물을 이유식으로 먹는 것처럼 글이 술술 넘어간다. “기술적 측면에서, 어휘가 이중적으로 해석되지 않게 다듬고 단문 위주로 써요. 내용을 보자면, 중학생부터 8090세대까지 어쨌든 뭔가를 얻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대넓얕 0>를 읽고 중고등학생들이 자아의 내면을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노자와 공자가 어떻게 만났는지 등 역사를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대화체를 넣었던 건 사람들이 형식이 바뀌면 다시 집중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퇴고를 평균 여덟 번 해요. 조사, 술어가 자꾸 걸려요. 낭독했을 때 거슬리는 데가 없을 때까지 퇴고해요. 자기 글을 세 번 이상 읽으면 진짜 토할 것 같거든요. 고통스러워도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같아요. 그게 독자에 대한 예의고요.” 그의 글엔 직접인용이 거의 없다.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어’ 하면 권위에 기대는 거예요. 사람들은 제가 한 인용이 아니라 제가 뭘 생각하는지 궁금해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2년에 한 번꼴로 책을 냈다. 꾸준하다. 그에게도 글쓰기 습관이 있을까. “1년 구상하고 1년 본격적으로 써요. 회사원처럼 써요. 집에서 안 써지면 카페 가고, 안되면 사무실 가고 계속 써요. 뭔가 멋있는 게 딱히 없네요. (멈춤) 인생을 돌이켜보니까 입만 열면 거짓말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기를 포장하고 과장하고. 어느 순간에 내가 말하면서 마음이 허해지는 이유가 계속 나를 포장해서 그렇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지금 연습 중이에요. 사실이 아니면 말하지 않으려고요. 말씀하신 습관 같은 게 있으면 멋있게 보일 것 같은데 저는 특별한 게 없어요.”

글쓰기에 언제 매혹됐냐고 했더니 “매혹된 적 없고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가 시를 썼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 정도면 글을 향한 오랜 사랑 아닌가? “친구 따라 쓴 거예요. 현실이 고통스럽고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찾은 탈출구 중 하나였어요. 다른 짓 하면 혼나는데 시를 쓰면 혼나지 않으니까요. 글쓰기는 제게 그냥 표현 양식의 하나인 거 같아요. 랩을 할 줄 알면 래퍼가 됐겠죠.”

싱잉볼. 티베트 여행 때 산 그의 애장품이다. 류우종 기자

싱잉볼. 티베트 여행 때 산 그의 애장품이다. 류우종 기자

지금은 정원을 돌보는 시간

다시 돌아와, 그에게 중요한 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고 자기가 발견한 답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 답을 <지대넓얕 0>에서 이론으로 풀어냈다. 이 답은 개념으로 딱 잡히지 않는다. 어쩌면 체험의 영역이다. 수영을 글로 배우면 어렵지만 물에 들어가면 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체험을 나누려고 <소마> 전에 소설 세 편을 썼는데 그의 첫 책부터 만들어온 권미경 웨일북 대표가 “좋지 않다”고 퇴짜를 놓았다. 네 번째 소설이지만 출간된 첫 소설이 <소마>다. 소년 소마가 부모를 잃고 적국에서 자라난 뒤 복수를 거쳐 최고 자리에 올랐다가 추락하는 이야기는 익숙한 영웅신화의 플롯을 닮았다. 소마는 다섯 번에 걸쳐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신의 감각기관이 하나씩 닫히면 그 목소리가 올라왔고 소마의 마음속에 우주가 펼쳐졌다. “현대인들은 내면세계의 체험이 없거든요. 다 외부에 관심이 있죠. 내면세계를 체험한다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고자 했어요.”

그의 글쓰기 동력은 질문이었다. 답을 찾고 난 뒤, 그는 무엇을 쓸까? “사실 궁금증이 해소됐어요. <지대넓얕> 1권과 <시민의 교양>은 현실 세계, <지대넓얕> 2권과 <열한 계단>은 현실 세계 너머, <지대넓얕 0>랑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초월에 대한 얘기였어요. 이론적 구조는 짜였죠. 이에 대응하는 서사가 있어야 해요. <소마>가 그 시작이고 앞으로 나올 여섯 권 정도는 소설이나 수필 같은 문학 형태를 띨 거 같아요. 계속 내면으로 침잠했을 때, 지식도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졌을 때, 닿을 수 있는 가장 변하지 않는 것에서 영감을 찾으려 헤맸어요. 답을 찾았으니 이제 감각적인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요. <소마>는 그 시작이었고요.”

그는 요즘에 “논다”. 책도 잘 읽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자기가 먹는 걸 맛보고 대지를 밟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그런 감각적인 연습을 하는 단계예요. 좀더 익숙해지면 거기서부터 또 다른 글이 나올 거 같아요. 하늘을 보느라 자기가 밟고 있는 정원이 엉망이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그랬어요. 이제는 정원을 돌봐야죠.”

에필로그

나는 그를 오해했다. 채사장이란 필명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를 쓰는 작가인 줄 알았다. 그는 “채사장이란 필명은 팟캐스트를 하면서 웃기려고 지은 거였다”고 말했다. 뒤늦게 그의 책을 읽고 놀랐다. 그의 책은 자아와 세계를 여행하는 영혼이 되라고 부추긴다. 이런 영혼은 성실한 생산자, 소비자가 되라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기 있는 인간형이 아니다.

2시간30분 동안 그와 나눴던 대화는 영원한 시간, 다중 우주 등으로 뻗어갔다. 그가 말한 자아의 본질을 나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그의 얘기를 듣다보면 나라는 존재가 내 상상으로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하고 본질적인 것에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든다. “내면의 빛에 닿기를.”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내게 선물한 책 <소마>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채사장은 2~3년 전에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그림을 모르는 내 눈에는 올챙이들이 호수 위를 떠다니는 거 같았다. 그는 여러 색감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어릴 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 탓에 엄두를 못 냈단다. 여러 경전을 모아놓은 책장에는 싱잉볼이 있었다. 티베트 여행 때 산 그의 애장품이다. 싱잉볼이 그를 ‘내면의 빛’으로 이끈 힘의 상징이라면, 그림은 그가 내딛기 시작한 감각적 세계의 상징인지 모르겠다.

“어떤 구체적인 근거도 없지만 나는 이렇게 믿는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태어나기 이전에 근원적인 내가 스스로 무엇을 배울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 짧고 유한한 세계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이다.”(<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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