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53)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역사상 도시와 건축 분야에서 제1의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동안 수많은 건축가와 도시학자가 책을 냈지만, 판매 부수에서 그에 필적할 사람은 없다. 그의 베스트셀러를 모두 출판한 을유문화사는 2015년 이후 현재까지 네 권을 통틀어 143쇄, 50만 부가 팔렸다고 밝혔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다.
유 교수의 책은 단지 베스트셀러라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만든 도시와 건축이 다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왜 아파트에 발코니가 필요한지, 왜 도시에 벤치가 필요한지, 학교 건물은 어떠해야 하는지, 코로나19 시대의 도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는 이 시대에 도시와 건축에 대한 ‘대중 교사’가 됐다. 2022년 3월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유현준건축사사무소’ 1층에서 그를 만났다.
-50만 권을 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소감은?
“얼떨떨하다. 내 커리어(경력)에서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다. 학교 때는 일기도 안 썼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지 못했다. 사생대회에서 뽑혀도 백일장에선 뽑히지 못했다. 문학적 표현 같은 걸 할 줄 몰랐다. 지금 쓰는 것이 문학적인 글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한 글이어서 건축과 잘 맞는 것 같다.”
-저서 네 권이 연속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구어체로 쓰기 때문인 것 같다. 구어체라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간다. 손으로 쓰는 시대였다면 구어체로 쓰지 못했을 것이다. 컴퓨터가 있어서 구어체로 쓸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선배 교수들이 ‘논문을 구어체로 썼다. 문어체로 쓰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문어체로 써야 하는 논문은 힘들다.”
-다른 도시, 건축 작가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대한민국 국민이 공간과 건축에 관심을 가질 소득(3만달러)이 됐을 때 내가 책을 냈다. 대학 때 ‘건축이 인정받으려면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1990년대에 서태지와 김건모가 음반을 100만 장 넘게 판 것과 비슷하다. 그런 시장이 있어서 책을 많이 팔 수 있었다. 또 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다. 실질적이고 삶에 와닿는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승효상 선생(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의 글은 철학적이고 어렵다. 내가 공부할 때 건축 책을 별로 안 읽은 것도 도움이 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건축계 스승들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한다. 그런 점이 쉽게 다가가는 것 같다.
인터뷰 도중에 유 교수가 갑자기 사진기자에게 통유리창 밖을 가리키며 “저 할머니 좀 찍어달라”고 말했다. 건축사사무소 건물 벽면에 벤치와 같은 공간을 만들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바로 거기에 앉은 것이다. 그는 “저런 목적으로 저 공간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벤치의 건축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떻게 글을 쓰게 됐나?
“처음 책을 낸 것은 2008년이다. 500만원 정도 지원받고 논문을 썼는데, 게재를 거부당했다. 그래서 그 논문을 ‘미세움’ 출판사에서 <모더니즘>이란 책으로 냈다. 다행히 지원 조건에 논문 대신 책을 내는 것도 허용했다. 그렇게 그 출판사에서 3권의 책을 냈다. 그것이 책을 쓴 계기였다.”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12년 어떤 건축가가 내 제자를 통해 <경향신문> 기고를 제안했다. 원래는 4명이 한 편씩 쓰기로 했는데, 다들 사정이 있어서 내가 4편을 모두 썼다. 첫 편이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가’였다. (이것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2장 제목이 됐다) 이 글을 보고 <매일경제>에서 작은 고정 칼럼을 요청했다. 이 칼럼을 보고 을유문화사에서 연락해왔다.”
-을유문화사가 대어를 낚았다.
“을유문화사 편집자가 찾아와 나보고 ‘인문적인 건축가’라며 책을 내자고 하기에 ‘나는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을 모르는데 무슨 인문적 건축가냐’며 거절했다. 그러자 편집자가 나를 이렇게 설득했다. ‘당신이 건축계의 정재승이 될 수 있다.’ 사실 굉장한 찬사인데, 당시 나는 정재승이 누구인지 몰랐다.(웃음) 그 편집자의 확신에 넘어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펴냈다. 이 책을 내는 데 많은 은인이 있었다.”
글쓰기는 설계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유 교수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도다. 유 전 청장은 400만 권 이상, 유 전 장관은 100만 권 이상 팔았다고 알려져 있다. 유 전 청장은 유 교수의 사무실 근처에 살고, 유 전 장관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해 친해졌다. 유 교수는 “두 분 다 좋아하는 선배님이고 여러 차례 뵀다. 그분들처럼 100만 권 이상 팔고 싶다”고 웃었다.
-당신에게 글쓰기는 무엇인가?
“건축은 제약이 많다. 여러 사람과 흥정해야 하고, 예산 제한이 있고, 건축주의 취향이 있다. 그래서 원래 의도의 반이나 실현하면 다행이다. 그러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컨트롤한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자유를 느낀다. 스트레스도 해소된다. 건축은 하나를 현실화하기도 어렵지만, 글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글은 언제 쓰나?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가장 좋은 때는 아침에 식구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다. 식탁에서 주로 쓴다. 칼럼 위주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진 않다. 코로나19 이전엔 출장 가는 비행기에서 많이 썼다. 출장 가면 비즈니스석 끊어주고, 콘센트도 있고, 먹을 것도 갖다줘서 글쓰기에 좋았다.(웃음) <어디서 살 것인가>의 3분의 1가량은 외국 출장을 다녀오며 비행기 안에서, 출장지에서 썼다.”
-어디서 글쓰기 영감을 얻나?
“일하면서 얻는다. 일상에서 습관처럼 건축, 공간을 읽는다. 건축엔 증명된 진리가 없다. 거장들도 각자 자기 시각으로 이야기한다. 나도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한다.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논문처럼 주석을 달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내 말이 ‘뇌피셜’이라는 힐난도 많다.(웃음)”
-글쓰기 습관, 루틴이 있는가?
“설계와 같다. 영감이 있으면 스마트폰에 키워드를 적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생각이 또 나면 문장으로 정리하고, 머리가 맑으면 글로 펼친다. 먼저 칼럼 같은 짧은 글을 쓰고, 그것을 키워서 책으로 낸다. 말로도 정리한다. 수업 시간에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말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1시간30분을 떠들다보면 모든 게 다 나온다.”
*유현준, 청와대와 용산에 대해 말하다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91.html
<모더니즘>(미세움, 2008)
미국 하버드대학 석사 논문을 바탕으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를 비판한 책.
<현대 건축의 흐름>(미세움, 2009)
수업을 위해 만든 책. 좋아하는 건축가들을 소개한 책.
<52 9 12>(미세움, 2011)
그 뒤에 나온 책들의 씨앗.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 2015)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새 삶을 열어준 책.
<어디서 살 것인가>(을유문화사, 2018)
대한민국 교육에 열받아서 쓴 책.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와이즈베리, 2019)
그동안 안 쓴 50년치 일기.
<공간이 만든 공간>(을유문화사, 2020)
가장 좋아하는 책. 30년 동안 공부하고 생각하고 건축한 결과.
<공간의 미래>(을유문화사, 2021) 코로나19가 만든 책.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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