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88.html
-글을 쓰기에 앞서 기초취재를 굉장히 꼼꼼히 하시네요.
“기초취재는 일단 관련 자료를 전부 내려받아서 다 읽어요. 그런 뒤 현장취재와 인터뷰를 시작하죠. 좋은 작가는 좋은 인터뷰어인 것 같아요. 이게 막 능수능란한 게 아니라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중요해요. ‘칙카이드’(치킨 염지 작업용 용액)란 말을 아는 인터뷰어와 그렇지 못한 인터뷰어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거든요. 내가 이 분야에서 이만큼 공부했는데 내밀한 이야기는 모르니 대답해주세요, 이렇게 돼야 하잖아요.”
-작가보다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이 도움이 된 건가요?
“저는 단행본보다 오히려 집요하게 논문을 봐요. 유통, 산업 관련 보고서 등도. 한 주제를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이, 웬만한 단행본보다 글쓰기에 훨씬 더 도움이 돼요. 그리고 인터뷰할 때도, 작가로서는 좌충우돌하며 부딪혀도 원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끌어내라고 하잖아요? 사회학과 대학원에선 멈춰야 할 땐 멈춰야 한다고 가르쳐요. 연구 윤리의 문제죠. 저는 작가로서의 자존심보다, 인터뷰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신 분들께 예의를 다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좋은 논픽션 작가의 자질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전철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귀에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그 상황을 관찰하는 사람. 식당에서 누군가 이야기하는데 ‘아휴, 왜 이렇게 시끄러워?’ 하는 대신에 ‘저 사람이 어떤 일 때문에 저렇게 술이 많이 취했을까’ 앞뒤 스토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 (인터뷰 대상자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고 싶게 만드는 게, 논픽션 작가한테 1순위로 중요한 자질인 것 같아요. 어느 날 나는 대독, 대필한다는 느낌으로 글을 쓸 때가 있어요. 나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냥 대신 타이핑해서 옮기는 사람? 그런 느낌으로.”
그래서 정은정 작가의 책에서는 ‘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늘 그의 눈길은 사람에게 머문다. <대한민국 치킨전>에서는 ‘치킨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닭을 키우고 치킨을 직접 튀기고 배달하는, ‘치킨과 관련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엮어 따로 어린이 동화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도 냈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오래된 치킨집을 운영하는 노부부, 여기서 일하는 젊은 배달노동자가 동화의 주인공이다. 다음 동화책으로는 떡볶이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떡볶이는 여고 앞에서 인기 있고, 농촌에서 대도시로 온 여성들이 자립할 기반이 떡볶이집이었고, 이런 과정을 쓰려고 해요. 여성들 간의 ‘빨간 연대’랄까.”
치킨에 이어 떡볶이. 다 음식이다. 사실 그가 글쓰기에 빠져든 것도, 알고 보면 다 짜장면 때문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백일장 준비를 잘 못했어요. 엄마는 공장 다니느라 바빠서 잘 챙겨주지도 않고. 성격 급한 3살 터울 언니가 대신 제 글을 써준 거예요. 그런데 그게 덜컥 교내 장원이 됐죠. 엄청 울었어요, 선생님한테 들켜서 야단맞을까봐. 며칠을 끙끙 앓고 울고불고했는데, 제가 학교 대표로 교육청 백일장에 나가서 장원했어요. 반공 글짓기였는데, 못 쓰진 않나보다 했죠.”
점심밥도 주지 않는 공장에 다니던 엄마는 “짧은 점심시간에 집으로 와서 대충 물에 밥을 말아 드시면서”도, 딸이 각종 글쓰기로 상을 받아오면 짜장면을 한 그릇씩 사줬다. 800원짜리 딱 한 그릇. 언니오빠도 못 먹고, 혼자만 짜장면을 독차지했다. “그 재미에 홀딱 빠져서 온갖 독후감대회, 백일장 다 열심히 했죠.” “정은정 글발의 팔 할은 짜장면”이라는 박찬일 셰프의 표현도 무리가 아니다. 실로 “개개의 모든 음식에는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자연의 변천까지 망라되어 있고, 여기에 개인의 기억과 사연까지 깃들어 있다”.(<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썼던 비결이 있나요?
“집에 책이 아예 없었어요. 전집도 없고. 고작 읽은 책이 언니오빠들 교과서였어요. 국어, 사회, 역사는 스토리북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책을 절대적인 글쓰기의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을 쓰지만 제가 그렇게 많이 읽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교과서부터 여성잡지까지 계보 없는 독서. 이문구의 <관촌수필> 같은 책을 좋아해요. 왜 배꼽 째지게 울다가 웃게 되잖아요. 일상이 스토리가 될 수 있다는 건 박완서 선생님의 책에서 배웠죠.”
-꼭 책이 아니라도, 스토리에 대한 욕구는 다른 동기부여가 있지 않았을까요?
“아버지가 말씀을 되게 잘하세요. 어릴 때, 똑순이 김민희씨가 나오는 드라마(<달동네>)가 히트였거든요. 아버지가 서울 와서 취직 못하고 백수일 때니까, 이 양반이 심심해서 막내딸인 저한테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다시 해봐라. 그러면 200원 줄게’ 하는 거예요. 다음날 또 물어봐요. 저도 똑같은 이야기 또 하기 지겨워서 플롯을 바꾸고, 장르를 바꾸기도 하고 아버지랑 그런 장난을 많이 쳤어요. 아버지가 스토리텔러를 키우셨죠.”
정은정 작가는 여기서 또 한번 스스로 묻고, 고뇌한다. “제가 글 쓰는 게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자기 경험의 자장 속에서 계속 머물러 있다보니, 가족이나 친인척을 너무 소재로만 삼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 저의 윤리적 갈등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쓴 책을 친척들은 읽을 형편이 안 돼요. 글이랑 되게 먼 삶을 살기 때문에. 저에겐 항상 그게 관통하기 어려운 고통 중 하나예요.”
가족만이 아니라, 글의 소재가 되는 사람 모두에게 그는 미안한 마음을 품는다. 험한 곳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쓰고는 “내가 눈을 낚아챌 만한 소재로서 죽음을 다뤘던 것은 아닐까”를 묻고, 고뇌한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얼마 전 언니도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쪽에 항상 마음이 많이 가요. 예전에 ‘당신은 어떤 글쓰기를 합니까’ 질문받으면 ‘염장이 같다’고 답했어요. 죽음에 대한 고민을 늘 해서.” 한국의 농촌과 농업, 그런 것을 바라보는 마음도 비슷하다. “진짜 죽었는데, 그 이후에 희망이란 건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누군가가 지켜봐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제가 감히 (…) 적어놓고 싶었어요.”(<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농촌의 마지막을 어떻게 적어두고 계신가요?
“농촌에 강의 갈 때마다 버스를 타면 배차 간격이 길어서 네댓 시간 먼저 도착하거든요. 동네를 엄청 헤매다니면서 곳곳을 사진 찍어둬요. 다음에 오면 없어질 확률이 높으니까. 집도 슈퍼마켓도 학교도 없어지고. 오늘 적어놓지 않으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거다, 그런 강박이 늘 있죠.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동네는 오후 2시만 돼도 스산하고 쓸쓸해요. 그 풍경 사진에서 느껴지는 황망함 같은 것이 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문장으로 표현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건조한 문장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커져요.”
-글과 관련해, 최근의 가장 큰 고민은 뭔가요?
“제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책에 왜 대안이나 결론이 없느냐는 거예요. 답답하다고 해요. 그러면 저는 대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고, 지금의 현상을 적는 사람이라고 답해요. 내가 조금이라도 바꿔볼 수 있는 게 있다면, 깜냥껏 힘을 보태고 싶어요. 2021년 가을 내내 가축 방역 노동자들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가축전염병의 최전선에서 ‘고기’를 지키는 사람들>)을 한 것처럼요. 동물권도 중요하고, 육식 문제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그 논의에서 누락시킨 삶, 거기에 얽혀 있는 사람들이 먼저 보여요. 축사에 사료를 가져다주는 사람, 방역하고 도축하는 사람, 그 부산물을 가져다가 뒷손질해서 파는 유통업자, 고깃집에 숯불을 공급하는 업자.”
그래서 정은정 작가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기록하는, 적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함께 성장하는 비법
정은정 작가는 따로 글쓰기 연습이나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도 “이 판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영업비밀”이 한 가지 있다. 비밀은 윤독, 여러 사람과 돌려읽기다.
언론에 보내는 칼럼 초고는 최소 서너 명에게는 미리 보내 읽어봐달라고 “괴롭힌다”. 이를테면, 정은정의 ‘윤독팀’이 존재하는 셈이다. 1997년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처음 만나 지금은 남매처럼 지내는 사회학자 엄기호와는 서로 초고를 주고받으며 “글 어때?”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다. 박찬일 셰프, 고영 작가 등 유명한 글쟁이뿐만 아니라 농민들에게도 글을 보내 오류가 없는지 꼼꼼하게 검수받는다. “농업이나 농촌 관련해서 잘못 써서 업계에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가끔 책을 전혀 안 읽는 20대 조카도 괴롭힌다. “이 글이 뭔 말인지 알겠냐?” 조카가 “띄엄띄엄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면, 사람들 눈높이에 맞겠다 싶다.
“저도 가끔 보여드리기 부끄럽고 창피한 글도 많거든요. 그래도 그 순간을 넘겨야 하는 것 같아요. 윤독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체대화방에서 서로서로 글을 보여주고 또 읽어주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성장하거든요. (내가 쓴 글이라도) 나만의 글이 아니잖아요. 세상에서 벌어진 일을 적는 거니까요.”
이날 만난 정은정 작가는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10대 때 부모님이 농사지었던 경기도 남양주로 그는 10년 전쯤 돌아와 터를 잡았다. 여전히 친구들, 친척들이 이곳에 산다.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원진레이온 공장과 빙그레 공장 등이 있던 곳이다. 30여 년 전엔 “청량리발 3번 버스의 종착지를 다들 ‘빙그레’라 했다. (…) 누구 하나 웃지도 않으면서 ‘빙그레’라 했다.” 지금 동네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신도시가 됐다. 그가 지금 사는(정확히는 빌린) 아파트 단지가 원진레이온 공장 터다. 인터뷰 뒤인 3월14일, 그는 남양주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집이 바뀌어도 작업 공간은 그대로다. 식탁에 앉아 글을 쓰다가, 틈틈이 빨래도 하고 밥도 한다. 식탁에서 밥도 먹고 일도 하다가 “널브러진 자료와 노트북을 밀고 밥상을 차리는 것이 싫어서” 양은 밥상에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남양주지옥분식통신’이라는 이름으로 밥상 사진을 매일 올리기 시작했다. “농업부터 유통, 폐기까지 우리 밥상이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깝”기 때문에 ‘지옥’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헤어진 30여 분 뒤, 정 작가가 밥상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그중에는 2020년 세상을 떠난 언니가 눈을 감기 며칠 전에 미리 보냈던 조카(정 작가의 둘째 아이) 생일 선물(떡갈비)로 차린 밥상 사진(위 사진③)도 있었다.
전철에서 정은정 작가가 내 손에 쥐여준 <창작과 비평> 2022년 봄호를 펴보았다. 그가 ‘내가 사는 곳’이라는 주제로 쓴 산문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웃을 일은 없지만, 그래도 빙그레.” 글을 읽다가 나도 빙그레 웃고 말았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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