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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청와대와 용산에 대해 말하다 [21WRITERS②]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공간의 미래> 쓴 유현준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31 23:31 수정 2022-04-01 11:25
사진=박승화 기자

사진=박승화 기자


*유현준, 발코니를 만들고 벤치에 앉자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90.html

함께 일할 사람이 많고 일할 기회가 많아지고

유 교수는 말이 매우 빠르다. 인터뷰하면서 받아치기 어려웠다. 말하는 속도가 보통 사람의 1.5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짧은 강연이라도 그의 강연은 정보가 많다. 어떤 청중은 “말이 빨라 듣고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푸념했다. 그는 말이 빠른 이유를 “어려서 부모님이 말을 편하게 하도록 해주셔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평생 유 교수를 야단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글 쓸 때 사용하는 도구는?

“아이디어는 스마트폰(갤럭시 노트10)에 쓴다. 갤럭시 노트는 펜이 있어서 스케치하기도 좋다. 글은 태블릿피시로 쓴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나온 ‘서피스’다. 심플하고 각도 조절이 쉽고 타이핑감도 좋다. 건축가 중에 ‘애플빠’가 많은데, 나는 남이 많이 쓰는 건 쓰기 싫다. 나한테 갤럭시나 MS에서 광고 좀 줘야 한다.(웃음)”

-글쓰기 초심자에게 줄 노하우가 있나?

“자기가 좋아하는 걸 써야 한다. 독자는 다 안다. 책이나 유튜브를 보면, 그 사람이 그걸 진짜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재밌어야 신나서 한다. 또 본인 생각을 표현할 때 미리 너무 생각하지 마라. 생각이 복잡해지면 안 된다. 책에서 읽은 것 말고 자기가 생각한 것을 표현해야 한다.”

-글쓰기에 큰 영향을 준 책이나 사람은?

“글쓰기에 영향을 준 책이나 사람은 없다. 생각에 큰 영향을 준 책은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1975)이다. 동양사상과 물리학은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서로 떨어져 있지만,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성은 쪼개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다. 생각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학창 시절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다. 그분은 성경 이야기를 심리학이나 경영학 이야기로 시작했다. 다른 앵글로 성경에 접근했다. 성경의 내용을 문자의 뜻이 아니라, 현대사회에 맞게 재해석했다. 그에게서 생각하는 방식을 배웠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서 좋은 점이 있나?

“내 생각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게 좋다. 건축으로 하는 것보다 효과가 컸다. 책 한 권은 혼자 4시간 정도 떠드는 셈인데, 이렇게 영향력이 클지 몰랐다. 함께 일해보자는 사람이 많아졌다. 일할 기회가 20배는 늘어난 거 같다. 그러나 매출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웃음) 지금은 생각하면서 설계할 수 있다. 어려울 땐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이 했다.”

-다음 책은 무슨 내용인가?

“현재 70% 정도 쓴 책은 <공간이 만든 공간>의 자매 책이다. 건축물과 인류가 어떻게 함께 진화해왔는가 하는 내용이다. 그에 앞서 <여행 간 김에 보면 좋은 현대건축물>(가제)을 쓸 것 같다. 코로나19로 오래 못 나가서 외국에 나가보고 싶다. 여름방학 때 나가서 돌아보고 쓰려고 한다. 노먼 포스터의 홍콩 HSBC 건물,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폴링워터’(낙수장) 등 32개를 쓸 것이다.”

유현준 교수는 주로 가족이 깨지 않은 아침 시간에 자택의 식탁에서 글을 쓴다. 사무실 5층 탁자에 앉은 유 교수의 모습. 박승화 기자

유현준 교수는 주로 가족이 깨지 않은 아침 시간에 자택의 식탁에서 글을 쓴다. 사무실 5층 탁자에 앉은 유 교수의 모습. 박승화 기자

이미 발코니를 확장했다면

베스트셀러 작가로 더 유명하지만, 유현준 교수는 기본적으로 건축가이다. 현재 도시와 건축에 대한 유 교수의 의견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이 있다. 책 이야기에서 도시와 건축 이야기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왜 건축가가 됐나?

“아버지 영향이다. 아버지가 경제신문 기자였는데, 집에서 정치나 정치인 비판을 많이 하셨다. 어릴 때 아버지는 왜 직접 정치를 하지 않고 말로만 하나 그랬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 중 하나가 건축가였다.”

-아파트 발코니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국 아파트의 큰 문제는 발코니가 없는 것이다. 무조건 발코니를 없애고 실내를 확장한다. 근데 발코니를 없애면 유리창 뒤로 사람이 사라진다. 발코니가 있어야 삶이 보인다. 이웃을 볼 수 없는 비인간적인 도시가 됐다. 그래도 젊은 세대가 비싼 돈 내고 (발코니 있는) 펜션에 가서 노는 걸 보면 희망이 있다.(웃음)”

-이미 발코니를 확장했는데, 어떻게 되살리나?

“기존에 확장한 것은 그대로 두고 추가로 지붕 없는 발코니를 허용하면 어떨까? 아니면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기존 발코니를 되살리면 너비 1m 정도 추가로 발코니를 허용할 수 없을까? 사람들이 좋은 집, 좋은 세상에 사는 것을 법이 너무 제한해선 안 된다.”

-우리 아파트를 단지형이 아니라 유럽처럼 거리형, 중정형, 주상복합형으로 바꿀 수 없을까?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우리의 남향 선호다. 아파트를 남향으로 지으려면 4개 면이 있는 유럽형 아파트가 나오기 어렵다. 둘째는 아파트 관련 법률이다. 동간 거리 제한 같은 현재 법률을 지키면 지금 아파트밖에 안 나온다. 용적률만 묶고 다른 것은 풀면 좋겠다. 건축가들이 자유롭게 상상하면 얼마나 새로운 것이 많이 나오겠나.”

유 교수는 발코니와 함께 벤치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발코니가 이웃끼리 서로 소통하는 반(半)공공 공간이라면 벤치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공 공간이다. 발코니와 벤치 같은 공공성이 강한 공간이 부족한 것은 확실히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닿아 있다.

-책에서 공공주택 공급보다 주택 소유를 권했는데, 현재 서울에서 20~30평 아파트의 가격이 평균 10억원을 넘는다. 청년들이 어떻게 주택을 마련하나?

“시드머니(종잣돈)를 모으면서 포기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청년들은 원룸이나 공유주택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나도 청년이 소유할 수 있는, 대안적인 주택을 만들어보고 싶다. 청년이 월세를 내지 않고 자산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도시 성공하려면 대도시 구도심으로 갔어야

-프랑스 파리의 공공주택 비율은 25%를 넘고, 독일 베를린에선 시민의 80%가 각종 임대주택에 산다. 주택 소유를 강조하는 것은 흐름상 거꾸로 아닌가?

“파리는 우리와 다르다. 이미 도시가 성숙했고, 집값도 안정됐다. 아마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일이 적고, 부동산 관련 박탈감도 적을 것이다. 도시가 안정되면 공공주택 위주로 갈 수 있겠지만, 우리처럼 집값이 계속 오르면 어려울 것 같다.”

-지방으로 가면 집값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나?

“한국은 도시국가처럼 되고 있다. 고속철도로 시간 거리가 단축돼 수도권과 지방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국토가 작아서 수도권으로 더 몰리는 것 같다. 미국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가 모두 다르다. 지방을 살리려면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서울이나 대전이나 광주나 다 같다. 그러니 그중 나은 서울로 몰리는 것이다.”

-전국의 균형발전 가능할까?

“혁신도시를 성공시키려면 공공기관들이 대도시 구도심으로 가야 했다. 혁신도시나 다른 신도시 때문에 지방 대도시 도심이 다 망했다. 예를 들어 광주 구도심에 가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좋은 공간이 있다. 마당도 있고, 모서리마다 좋은 공간이 있다. 그런데 광주도 신도시를 지어서 구도심이 약화됐다. 인프라가 잘돼 있는 구도심을 유지하면서 개발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실을 현재의 청와대에서 서울 광화문이나 용산 쪽으로 옮기려고 한다. 그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새 정부가 청와대를 떠나려 한다.

“최근에 한 방송사와 함께 청와대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나보고 바꾸라면 여민관을 리모델링하겠다. 3개 동으로 된 여민관을 회랑으로 연결하고, 가운데 자동차 로터리(교차로)는 정원으로 바꾸고, 막힌 상춘재 쪽으로는 길을 열겠다. 리모델링만 해도 훨씬 소통이 잘될 수 있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면?

“아무래도 광화문으로 옮기면 사람들의 삶에 더 가까워진다. 사람들 모습에 좀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광화문으로 옮긴다면 정부청사 내부의 몇 개층을 뚫어서 중앙계단을 만들면 좋겠다. 건물 가운데 ‘보이는 계단’을 둬서 오가는 사람과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 서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용산 국방부는 어떤가?

“가장 낫다. 용산은 터가 넓어서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모두 옮길 수 있다. 또 앞으로 용산공원이 들어서면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시민과 만날 수 있다. 공원 조성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길게 보면 큰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당장은 국방부 청사를 쓰더라도 제대로 된 집무실과 관저를 지으면 좋겠다.”

-세종시에 설치될 제2국회를 설계한다면?

“우리 사무실 규모로는 국회 설계 공모에 응모하기 어렵다. (웃음)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의회가 좋더라. 공원을 걸어 올라가다보면 의회 지붕으로 연결된다.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는 권력의 상징인 의회 돔으로 시민들이 걸어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서 바깥도 구경하고, 의회 내부도 감시한다. 그렇게 개방적이고 시민을 높이는 의회를 만들고 싶다.

에필로그

유현준 교수는 50대 중반이지만, 소년 같은 모습이 있었다. 5층인 사무실의 위아래 층을 다닐 때 그는 아이처럼 계단을 쿵쿵쿵쿵 뛰어다녔다. 운동 삼아 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는 꿈이 많아 보였다. 쓰고 싶은 것도 많고, 더 많은 이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영어로 책을 쓰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고 한다. 전세계의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 그게 안 된다면 통일이라도 돼서 북한의 독자, 만주의 독자에게 자신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책을 써서 먹고사는 작가가 많아지려면 인구가 한 1억 명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 의외인 점도 있었다. 그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에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엔 발코니도 없고, 마당도 없고, 층고도 너무 낮다. 현재의 아파트에선 창조성이 나오기 어렵다. 당연히 그의 집은 단독주택이거나 적어도 아파트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해명은 이랬다.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데, 땅값이 너무 비싼 서울에선 단독주택을 마련하기 어렵다.” 서울 강남이 아닌 곳에선 가능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나고 자란 곳, 오래 살아온 동네에서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당대 유명 건축가, 작가로서도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적 상황에선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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