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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 사랑에서 나오는 글을 쓰는 예술사회학자 [21WRITERS②]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쓴 이라영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8 23:15 수정 2022-03-29 12:50
사진=김진수 선임기자

사진=김진수 선임기자


*이라영, 대신하는 목소리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80.html

적을 만드는 것, 신격화하는 것

당파성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가운데 누군가의 여성성은 줄곧 조롱의 대상이자 수단이 됐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김용민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가 과거 <나는 꼼수다>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을 강간하자’고 발언한 게 뒤늦게 문제 된 게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풍자와 조롱은 이성애자 남성의 시각에서 만들어지기에 여성이나 성소수자 입장에서는 함께 웃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중략) 남성 정치인에게는 하지 않는 ‘강간’ 발언이 특정 여성 정치인에게 향할 때, 그것은 이미 ‘정치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공격이 된다.”(<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57쪽)

이라영에게 30대는 20대에 쌓은 지적인 생태계를 완전히 새롭게 재점검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한때 “열심히 쫓아다니던” 지식인들의 글을 언젠가부터 편히 읽을 수 없게 됐다. “발화 권력, 요즘 말로 하면 ‘좋아요’에 도취되고, 자신이 말해온 것을 스스로 배신하는 사람들이 계속 출몰”한 탓이다.

“누군가를 악마화해 공격하고, 정권이 교체되면 만사형통이 되는 것처럼 이야기들을 하는데 세상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한쪽에 적을 만든다는 건 다른 한쪽을 신격화하게 된다는 점에서 위험하고요.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누구 하나를 온라인에서 조롱해 바보로 만드는 게 쉬워졌는데, 그럴수록 더 조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식인들이 앞장서 조롱의 언어를 생산한다는 게 너무 위험해 보였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라영은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경계한다. 2018년 10월 <한겨레>에 쓴 칼럼 ‘애도의 윤리’에서 그는 “글쓰기는 자아도취의 끝없는 향연을 펼칠 수 있는 장이며 타인을 짓밟을 수도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적었다.

가장 최근에 펴낸 책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에서 이라영은 끊임없이 읽고, 보고, 쓰는 원동력이 크게 세 군데서 나온다고 썼다. “분노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우울함과 잘 살아가기 위해, 오만을 다스려 무지를 발굴하기 위해.”

“함께 사는 남편이 ‘맨날 티브이와 멱살 잡을 듯이 싸운다’고 할 정도로” 분노가 글쓰기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결코 화난 상태에서 감정을 문자로 옮기지 않는다. “전선을 확실히 긋고 어떤 대상을 공격하는 걸 목적으로 글을 쓴다면 결국 내 생각이 편협해질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까지 목표로 하진 않아요. 어렴풋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그들을 대신해 단호하고 명료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생각하며 글을 써요.”

사진=김진수 선임기자

사진=김진수 선임기자

작은따옴표, 부연설명, 참고 문헌, 각주, 미주…

이라영은 스스로 ‘생각을 마구 정리했다가 준비되면 내보내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의 집 서재와 거실 소파 앞 등 손 닿는 모든 곳에 형광색 접착식 메모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티브이를 보다가도, 길을 가다가 광고지를 받아도, 매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새로 놓이는 지역 신문을 읽다가도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수시로 메모한다.

“산발적으로 적어둔 메모 속에서 어떤 흐름을 찾을 때가 있어요. 그럼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것을 막 찾고 열심히 구글링도 해요. 그러다보면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던 메모들 사이에서 써야 할 글의 구조가 나오기 시작해요. 그다음부터는 충실하게 쓰면 되는데, 거기까지 가는 게 힘들죠.”

이라영의 글에는 작은따옴표가 많다. 그가 “지저분함을 무릅쓰고” 굳이 글에 작은따옴표를 사용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단어를 대신해 쓸 만한 말이 없는데, 도무지 그 단어를 쓰는 게 불편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불륜’이라는 단어엔 사회의 규정과 판단이 들어가 있다.

“할머니면 할머니이지 굳이 ‘외’를 붙인” ‘외할머니’ 같은 단어에도 “그 말을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하는 사회에 동화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따옴표를 친다.

“물론 우리는 공식적으로는 같은 모국어를 쓰는 대한민국 사람이지만 결코 같을 수가 없어요.”

‘남성혐오’와 같이, 스스로 동의할 수 없는 개념을 비판하기 위해 언급하는 경우에도 따옴표를 사용한다. 이 외에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해 강조하기 위해서도 쓴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에서 이라영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부연 설명하는 기능을 가진 문장부호 대시(-)가 많다”며 “하고 싶은 말이 숨겨져 있는 이 대시를 삭제하는 행위는 어쩌면 그의 진짜 목소리를 삭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썼다.

참고 문헌이 많다는 점도 이라영이 쓰는 글의 특징이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참고 문헌과 각주, 미주가 마구 달려 있”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학술적인 글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어떻게 보면 어정쩡하다.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선 ‘중학교 2학년도 읽을 수 있게 써야 한다’는 말이 격언처럼 전해지지만, 이라영은 쉽게만 쓴 글이 지닐 수 있는 폭력성을 경계한다. 어떤 대통령 후보는 단 일곱 글자 쉬운 말로 정책 공약을 대신해도 “‘아무 말’이라고 여겨지기는커녕 모두가 열심히 해석해주는” 시대가 아닌가.

“대중적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 사이 중간지대가 풍요로울수록 한 사회가 풍부하게 담론을 형성하기에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계속해서 알고자 하는 자극을 받잖아요. 책 하나를 읽고 나면 다음 갈래로 마구 나가고 싶은 욕구가 드는 책 있잖아요. 그런 글쓰기를 지향해요. 그게 적극적인 독서이고요.”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에서 이라영은 ‘자기방어나 증오심에서 나온 글, 남에게 명령하거나 반박하기 위한 글, 남을 공격하거나 남에게 사과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 글을 써야 한다’는 미국 소설가 유도라 웰티의 말을 늘 떠올리며 글을 쓴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글쓰기의 원천이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땐 ‘뭐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가 다 있나’ 생각했다.

이라영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5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필통. 김진수 선임기자

이라영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5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필통. 김진수 선임기자

“어디에서든 뭐라도 해보려고 싸우는 ‘사람’”

강원도 강릉 출신인 그는 지금까지 주거지를 서른 번 가까이 옮겨다녔다. “물리적으로 자주 이동하는 사람은 타인과 그만큼 자주 이별한다. 그 헛헛함과 함께 살아가려면 장소 자체와 관계를 맺을 줄 알아야 했다.”(<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23쪽)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 안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싸우는 ‘사람’으로 관점을 돌리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이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201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만 해도, 이라영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양당정치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밖에서는 ‘대통령이 누구인지’처럼 큰 것만 보잖아요. 그런데 지역으로 들어가서 정말 많은 소수자 단체가 싸우는 걸 눈으로 보니 ‘나도 편견이 있었구나’ 싶었어요.”

“어디서든 자꾸 싸우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들어와서 쌓이면 저는 그걸 또다시 말로 뱉어내죠. 이게 다 설명이 안 돼요. 마음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에필로그

3월 첫째 주 어느 오후, 서울 한복판에서부터 1시간가량 차를 몰고 경기도 한 도시의 이라영 집을 찾았다. “‘서촌에서 만나자’는 말이 서울에 사는 사람과 부천에 사는 사람에게 결코 똑같이 들릴 수는 없다”는 구절을 그의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운전하는 내내 그 구절이 떠올랐다.

“무엇을, 어떻게, 왜, 누가, 어디에서, 언제 먹었는지에 대해, ‘먹기’를 둘러싼 인간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정치적인 식탁>, 11쪽)는 그의 집을 빈손으로 찾기가 뭐해, 봄동 두 포기를 들고 갔다. 인터뷰 전날 어머니가 운영하는 채소가게에 들러 급하게 준비한 선물이었다.

낯선 이를 집에 들이면서 이라영은 “이사를 자주 다닌 탓에 사진을 찍을 만큼 멋들어진 서재가 없다”고 겸연쩍어했다. 사진기자가 이라영을 촬영하는 동안 실례인 줄 알면서 그의 주방을 몰래 구경했다. “누군가가 해준 음식, 혹은 누군가와 함께 먹은 음식을 매개로 결국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이는 주로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 금방 요리를 마친 것처럼 찐 콩이 채반에 조금 남아 있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하려 앉은 작은 탁자에는 그가 아침에 손수 만들었다는 곶감말이(그 안에 찐 콩이 들어 있었다)와 함께 그의 어머니가 만든 깨강정이 놓여 있었다. 호의를 베풀어야 할 의무가, 많은 경우 여성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위해 마련할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역시 먹을거리라는 생각을 하며 강정을 깨물어 먹었다.

길어야 2시간 정도를 예상한 인터뷰가 4시간 가까이 걸린 탓에 서울로 다시 나오는 길에는 해가 다 져 있었다.

정인선 <코인데스크 코리아> 기자 ren@coindes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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