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 다른 것에 합을 맞춰 춤추듯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86.html
글 쓰는 행위는 즐겁다. 하지만 괴롭기도 하다. 김원영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글을 쓰는데 예상 못한 철학자의 글이나 외국에 사는 장애인의 글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을 때 글 쓰는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답이 없을 때,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들 때는 괴롭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만약 장애를 고칠 수 있는 약이 있다고 해봐요. 그런데도 안 먹겠다는 누군가가 있어요. 나는 머리로는 그를 존경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일종의 정신승리 아닐까’ 하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 겁니다. 그런 의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책을 쓰면 그 책은 자기계발서가 될 수밖에 없어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떨쳐내는 과정, 나 자신을 억누르는 무언가를 돌파해야만 한발 나아갈 수 있는 과정은 언제나 괴롭습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근본적이다. “구체적 쟁점에 대해선 많은 사람이 많은 이야기를 해요. 저는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어요. 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중증장애인도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등에 더 관심이 많죠.” 그는 “내 성향이, 내 욕구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좋은 책을 읽고 영감을 얻는다.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읽을 땐 그의 글쓰기 방식에 영향받았다.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도 그가 꼽는 추천작인데 개인의 경험을 훨씬 넓은 시공간으로 확장한 자기분석에 영감을 받았다. 홍은전 작가와 은유 작가의 글도 많이 읽는다. “두 사람은 자기 곁에 있는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전하는 데 깊이 몰두해요.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과 사고를 여는 그런 작가적 태도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만의 글 쓰는 비법이 있을까. 그는 질문이 끝나자마자 웃는다. “그런 건 모르겠다”고 겸손한 태도로 말한다. “누구나 하는 얘기지만 계속 수정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일단 쓰기 시작했으면 멈추지 말고 쭉 가야 합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아, 시작한 다음에 계속하지 말고 계속하고 나서 시작해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아무것도 안 떠오를 때 시작하려고 하면 백날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봐야 시작할 수 없다. 그럴 땐 애국가 가사라도 좋으니 무엇이든 쓰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의미 없는 말이라도 쓰는 것을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시작이 되어 있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게 아니라 계속하는 것. 김원영이 올리비에 푸리올의 <노력의 기쁨과 슬픔>에서 배운 글쓰기 비법이란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글쓰기 루틴(습관)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동안은 어떤 궤도에 올랐을 때 몇 날 며칠을 몰입해 쏟아내는 형태의 글쓰기를 했는데 그러다보니 지속성이 떨어지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아시잖아요. 그럴 땐 계속 의자에만 앉아 있고 음식도 대강대강 쓰레기 같은 것만 먹고. 하하하.”
김원영에게 글쓰기란 ‘미래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느낌’이라고 한다. “글은 오래 남을 수 있어요. 운이 좋다면 몇십 년 뒤 미래의 독자도 만날 수 있지요. 30년 뒤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쓰고 싶습니다.”
그는 논픽션 작가에게 중요한 자질로 자기분석과 통찰을 꼽았다. “나라는 사람을 가운데 놓고 내가 연결된 전체 세상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맵(지도)을 그려보는 거예요. 아주 작은 나로부터 시작해 지구 전체로 확대해보는 거죠. 그 과정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좀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 통찰하고 통합하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어떤 연결성을 찾는 데 집착한 나머지 사실을 왜곡해 소설을 써버리면 안 된다.
“사실을 과장해서도 안 되고 거짓말하고 싶은 욕구도 참아야 해요. 흩어진 사물과 인물들 관계의 연결성을 보는 동시에 그것을 잘 해석하는 정직성이야말로 논픽션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률가(변호사)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의 또 다른 이력은 무용가다. 애장품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에 공연 사진을 보여줄 정도로 무대를 향한 그의 애정은 깊다.
그의 첫 무대 경험은 재활원이었다. 교회 행사로 연극을 했는데 첫 대사를 내뱉지 못해 한 달을 첫 대사 없이 연습했다. 그러다 일이 있어 들른 서울의 한 지하철에서 모르는 할아버지에게서 1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적선받는 수모를 겪었다. 다시 재활원으로 돌아온 그는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고 무대에 올라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소리쳤다.
“도대체, 도대체 당신(신)은 어디 있는 겁니까!”
스스로를 감싼 껍데기를 깨야 했던 첫 번째 순간. 그는 <희망 대신 욕망>에서 이 일화를 전하며 “큰 목소리가 터져나올 때의 예상치 못한 후련함,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연극’이라는 특정한 예술 현장으로 순간 이동한 듯한 긴장감, 이 모두가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후로도 연극과 공연 등 무대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급기야 2020년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로 연극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저는 차별을 겪었을 때 맞서는 일종의 무기로 언어가 필요했고 먹고살기 위해서도 법률의 언어를 갈고닦아야 했어요. 그런데 언어로는 절대 다룰 수 없는 어떤 순간들이 있습니다. 공연을 연습해 관객 앞에서 선보일 때 공연하는 나와 관람객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그 경험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는 “공연 또한 책처럼 다른 사람(타자)을 만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공연은 몸으로 건네는 또 다른 말인 셈이다. 몸을 이용해 쓰는 글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 춤추는 것처럼 글 쓰고 싶다고. 고정된 주제와 원칙을 따르기보단 그때그때의 현실과 문제의식에 반응하면서 (이를테면 공연 때마다 매번 다른 관객에게 반응하듯) 다른 사람들, 다른 세상들과 함께 합을 맞추는 사람이고 싶다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나는 그를 이렇게 기억하기로 했다.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고유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 30년 뒤 미래 독자에게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그들을 능히 ‘읽는 즐거움’ 속으로 초대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춤추는 논픽션 작가, 그런 김원영 작가를 인터뷰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는 장애인 당사자다. 나는 발달장애인의 엄마다. 우리 글엔 늘 ‘장애’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자신의 글이 정신승리를 위한 자기계발서가 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자기를 가둔 껍데기를 깨야 했고, 괴로운 정신적 돌파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비장애인인 나는 장애인인 아들과 함께 살아나가기 위해 내 안의 편견과 장애 혐오를 깨닫고 이를 의식적으로 전환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타인의 삶을 이해한다”는 말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그의 삶에 많은 공감을 하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말했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내가 장애인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나의 자부심과 나의 꿈 앞에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다”고. 나도 외친다. 내 아들이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내 아들더러 발달장애인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내 아들은 발달장애인이기에 앞서 놀기 좋아하는 14살 청소년일 뿐이라고.
이제 이 외침에 답해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닌 독자들이어야 한다. 적어도 김원영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나름의 생각을 우리에게 되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가 끝난 뒤 김원영에게 물었다. “그런데 작가님, 글쓰기가 정말 세상을 바꿀까요?”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내 의견을 물었다. 글쎄요. 우리는 웃었고 어떤 답변을 주고받았다. 그 말이 긍정형일지 부정형일지 대답하진 않겠다. 그 대답은 이 세상 모든 독자의 몫일 테니까 말이다.
류승연 작가·<배려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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