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세계 4대 문명의 한 발원지이자 거대한 제국이었다. 최초의 통일왕국 진나라 이래 2천 년 동안 중국의 위세는 동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전역에 뻗쳤다. 20세기 한때 외세의 반식민지로 전락했지만, 21세기 들어 ‘중국 굴기’는 괄목상대 이상이다. 강대국 곁에 사는 것은 힘들다. 티베트, 몽골, 중앙아시아의 많은 주변국이 중국에 편입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반도는 예외다. 1천 년 넘도록 중국의 숱한 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지만, 단 한 번도 제국의 일부가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냉전사 연구 권위자인 오드 아르네 베스타(미국 예일대 교수)는 최신 저작 <제국과 의로운 민족>(옥창준 옮김, 너머북스 펴냄)에서, 14세기 말 대륙의 원-명 교체기와 한반도의 고려-조선 교체기 이후 ‘한중 관계 600년사’(부제)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그 답을 찾으려 했다.
지은이는 한반도 독립성의 비결로 ‘정체성’과 ‘지식’, 두 가지를 든다. 한반도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열쇳말이 책 제목(원제도 같다)에 쓰인 ‘의로운 민족’이다. 이때 ‘의로움’은 “600여 년간 한반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성리학(신유학) 사상”의 핵심 가치를 말한다. “조선의 건국은 초창기부터 성리학적 기획”이었다. 이는 “윤리적 수준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정의하는 것을 넘어 국가, 민족, 공동체를 묶어내는 슬로건”이 됐다. 중국(송) 사상가 주희가 집대성한 성리학(주자학)은 점차 교조화하고 본디 정신이 퇴색했지만, 조선시대 내내 국왕부터 농민까지 거의 모든 인민의 가치관과 일상의 삶을 규정했다. 외침에 맞선 민병대는 ‘의병’(義兵)이었다. 유교 원리는 중국인과 한반도를 하나의 이념 체계로 연결하는 고리이기도 했다.
독립성의 두 번째 비결은 ‘중국에 대한 지식’이었다. 조선 엘리트들은 중국인 자신보다도 제국을 훨씬 더 많이 알았다. 매년 수차례 사신 파견으로 정세와 문물을 파악하고 안보 환경에 대응했다. 대국을 섬기는 ‘사대’는 “중국과 외적의 한반도 간섭을 막는 방식”인 동시에 “조선 정권이 천하의 강대국 중국과 친밀하고 독특한 이웃 국가임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이런 특수성을 토대로, 지은이는 조선에서 16세기 무렵이면 외부의 배제나 포섭 없이 ‘민족국가’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 베네딕트 앤더슨을 비롯해 서구의 학계가 ‘민족’이란 개념을 근대의 기획으로 발명된 ‘상상된 공동체’로 해석한 것이 한반도에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시각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저자는 책의 헌정 문구를 “평화와 통일을 이룬 미래의 한반도를 위해”라고 썼을 만큼 한반도 통일에 관심이 크지만, 20세기를 지나면서 양쪽 모두에서 강렬한 민족주의가 부상하는 현상을 우려한다. 권위주의 정권과 중화민족주의가 지배하는 지금의 중국이 향후 한반도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도 관건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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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과 대안을 천착해온 보건학자가 ‘천안함 침몰 사건’(2010년 3월) 생존 장병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트라우마를 보살핀 실태 조사 보고서. “천안함 사건은 폭침 당일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이후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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