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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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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썰머리 나는 아저씨 오토바이 부대

영월의 동창들과 어울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술도 먹고 고스톱도 치게 된 남편
등록 2021-10-29 00:37 수정 2021-10-29 09:26
구둘래 제공

구둘래 제공

남편은 영월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9명이나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성공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신문기자도 있고 학교 선생님도 있고 경찰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사업을 잘 운영하며 기반을 다져갔습니다. 남편 동창들은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했습니다. 남편 동창 중에는 영월에서 나고 자라 영월에서 영월 사람끼리 결혼해서 사는 이도 여러 명 있었습니다. 여자들도 나름대로 동창도 있고 가까운 이웃이 있어 잘들 어울렸습니다.

대관령도 넘고 충청도도 가고

남자들은 어느 날부터인가 뭔 바람이 불었는지 오토바이를 너도나도 다 샀습니다.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친구 말고는 차가 없던 때였습니다. 집 안에 오토바이 한 대가 생기니 많이 편리해졌습니다. 우리는 학생들 상대하는 장사라 학생들이 등교하고 나면 남편 오토바이 뒤에 타고 영월 외곽을 한 바퀴씩 돌아오곤 했습니다. 일요일이면 가족이 모두 끼어 타고 청령포로 놀러 가기도 하고 물물이골에 가기도 했습니다. 장릉으로 소풍을 갈 때면 점심 보따리를 실어다줘서 아주 편하게 소풍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점점 멀리 가기 시작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대관령을 넘기도 하고 충청도도 가고 어디든 멀어서 못 가는 곳이 없어졌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오토바이를 사서 남편 오토바이 부대와 같이 잘 다녔습니다. 오토바이를 좀 과격하게 모는 선생님 한 분이 논둑길을 쌩엥엥~ 달려가다가 커브길에서 멈추지 못하고 논바닥으로 한 5m는 날아서 떨어졌답니다. 많이 다쳤겠다고 하니 워낙 잘 키워놓은 벼 위에 떨어져서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편은 술을 잘 못 먹습니다. 술을 한잔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져서 정신을 못 차립니다. 선천적으로 간에서 알코올 분해를 잘 못하는 체질입니다. 그날도 오토바이 부대는 저녁때 몰려나가더니 밤중이 돼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아이들 데리고 자려고 막 누웠는데 셔터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전순예, 문 열어라! 전순예, 문 열어라!” 하는 겁니다. 너무 놀라서 맨발로 뛰어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술에 취해 옆구리에 양쪽 손을 올리고 서서 셔터 문을 걷어차고 있었습니다. 셔터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온 시에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평소 불량기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사람인데 많이 놀랐습니다. 가게에 살림집이 딸려 있어 소리를 듣고 바로 집에 데리고 들어왔으니 망정이지, 멀리 살았었으면 말리는 사람 없이 밤새 걷어찼을 거라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억지로 끌고 들어오니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깊이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어젯밤 이야기를 해도 자기는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원래 술 취한 사람은 자기가 잘한 일은 다 알고 못한 일은 모른다고 한다더라” 하니 정말 그랬다면 이웃 보기 창피해서 큰일이라니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어젯밤에는 누가 그렇게 시끄럽게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다 알고 묻는 듯해 우리 남편이 술을 먹고 그랬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에에~이~ 원래 술도 못하는 양반이 무슨 술을 먹고 그랬다고 그러나” 하며 의아한 얼굴들을 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 뒤 피를 흘리며 찾아간 병원

한동안 고스톱 바람이 불었습니다. 오토바이 부대 후배 중 자매가 하는 식당이 있는데 사람도 싹싹하고 음식 솜씨가 좋아서 대개 그 집에 모여서 밥을 먹었습니다. 식당 옆에는 낙원여관이 있는데 거기서 모여 고스톱을 한다고 합니다. 오토바이 부대는 “저녁 먹고 올게” 하고 나가면 대부분 소식 없이 밤중에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누구네는 동생 잔치에 입으려고 맞춘 새 양복을 입고 가서 뭘 하다 왔는지 바지 오금 밑을 다 쪼글쪼글하게 망가뜨렸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집 남편만 그런 게 아니고 쪼그리고 앉아 고스톱을 치느라 다들 무릎 밑이 쪼글쪼글하다고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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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두둥실 뜬 아주 화창하고 맑은 가을날입니다. 아이들 등교 시간이 끝나고 남편 오토바이 뒤에 타고 시내를 벗어나서 상동 쪽으로 강변을 달렸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강변을 달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누가 하나 앞질러 휙 하고 저만치 가버립니다. 뒤에 탄 나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추월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우리도 “달려~ 달려~” 하며 뒤에서 부추깁니다.

기분 좋게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었습니다. 오토바이 백미러에 비친 하늘이 너무 예뻤습니다. 정신을 놓고 감상하며 오는데 남편이 한 3㎝ 높이의 맨홀을 뛰어넘었습니다. 나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지면서 오토바이 버팀목에 바지 자락이 걸렸습니다. 남편은 놀라 오토바이를 세우려고 한 바퀴 삥 도는데 정수리 왼쪽부터 왼쪽 팔까지 갈려서 피가 흘렀습니다. 가까운 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간호사와 원무과 직원 둘이 서서 오늘 토요일이어서 진료가 마감돼 치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급하니 봐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해서 그냥 원장실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깜짝 놀라서 “당신 뭐냐”고 물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가 났는데 진료 끝났다고 해서 내 맘대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원장님은 “무슨 소리냐” “응급환자를 놓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난리가 났습니다. 외상이 심하지는 않으니 며칠 약 먹고 치료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한 열흘 치료하니 다 나았습니다.

사고 나고 한 달 지난 어느 날 책상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책상이 한쪽으로 뛰떡(기우뚱)했습니다. ‘왜지?’ 하고 흔들어봐도 멀쩡했습니다. 잠시 뒤 머리가 뺑글뺑글 돌면서 어지러웠습니다. 다시 병원에 갔더니 뇌가 흔들리면 후유증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약 먹고 한 달간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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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이 신나게 놀러 다니는 동안

사고가 나고도 남편은 오토바이 타는 걸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한여름엔 오토바이를 타고 슝 하고 달리면 바람이 아주 시원합니다. 날이 추워지니 그렇지 않아도 찬 바람이 오토바이를 타면 더 매섭게 느껴집니다. 한번은 오토바이 부대 부인들이 모였습니다. 한 사람이 “썰렁한 날 다들 코가 새빨개져서 몰려다니는 거 하고는” 하며 은근히 아니꼬운 듯이 말하니 다른 사람이 받아서 “아, 신문지를 두툼하게 접어서 배 속에 넣고 탄다잖여” 합니다. 오토바이 부대가 모여서 신나게 놀러들 다니는 동안 가게를 하는 집들은 부인들이 가게를 지켰습니다. 선생님이나 공무원들 집에서도 남자들이 모여 멀리 나가고 늦게 들어오고 하니 걱정도 되고 얄밉기도 하답니다. 여자들은 “그놈의 오토바이 부대 몸썰머리(몸서리) 난다”고 합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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