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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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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익숙해지려니 서점 장사

평창에서 영월 골목길 일송서점으로, 큰길가 목 좋은 일송서점으로 두 번의 이사
등록 2021-09-29 02:20 수정 2021-09-29 11:59
구둘래 제공

구둘래 제공

1979년 평창에서 영월로 이사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면서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유치원 다니던 큰딸을 전학시키고 이사했습니다. 남편은 노트 쪼가리 팔아서 언제 돈 벌겠나,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아이 셋 데리고 학생사를 운영하느라 서로 이야기할 시간도 별로 없었습니다. 결단력이 빠른 남편은 정들었던 학생사를 미련 없이 정리하고 영월에 서점을 차려놓았습니다. 이사 간 일송서점은 영월 읍내 골목길 안 조금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대로변 좋은 자리를 계약했는데 그 집 사정상 몇 달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임시로 있는 거랍니다.

호언장담하던 이삿짐 아저씨들은 짐을 쏟고 둘러엎고

영월에는 이미 유명한 동아서점도 있었고 문명서점이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동아서점은 동아출판사에서 나오는 백과사전, 문제집, 전과를 독점으로 판매했습니다. 문명서점에서는 교학사에서 나오는 문제집을 취급했습니다. 우리 서점의 주 품목은 능력개발에서 나온 다달학습, 아이템풀 등 학생들 부교재였습니다.

일송서점이라는 간판이 맘에 들었습니다. 능력개발 본사의 최상민 부장이 이름을 짓고 직접 간판 글씨도 써주셨답니다. 최 부장님은 사진작가이며 서예협회 회장도 한다고 했습니다. 내 평생 목말라했던 처음 보는 책들이 가득한 것이 좋았습니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인 줄만 알고 이사 갔는데 그곳에는 이종사촌 여동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동생의 남편은 영월 토박이로 키가 180㎝ 넘는 아주 호남이었습니다. 본업은 사진사인데 이것저것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이라고 합니다.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도 아홉 명이나 살고 있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2학기 첫날 영월국민학교에 전학시켰습니다. 학교를 낯설어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1교시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새 친구들과 친해져서 쉬는 시간에 잘 놀고 있습니다. 큰딸은 유치원에 2학기 입학을 시키고, 막내딸은 언니를 따라 유치원 청강생으로 갔습니다. 유치원이 재미있다고 합니다.

어디 사나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사 가서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또 이사해야 합니다. 이사 가는 집이 멀지 않아서 차를 부를 수가 없어서 리어카로 이사합니다. 짐 나르는 아저씨 둘이 자기네가 책임지고 이사해주겠다고 합니다. 이삿짐이란 냉장고 하나만 꺼내도 많은데 서점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쪽 벽 책장을 먼저 빼서 옮기고 책을 옮겨다 꽂고 또 한쪽 벽 책장을 옮겼습니다. 큰소리치던 아저씨들은 엉성하기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상자에 적당히 담아 잘 묶지도 않고 옮기다보니 길거리에서 쏟아질 때도 있고 내릴 때도 둘러엎습니다. 그렇게 엉성하게 하면 어떡하냐고 하니 깨지는 물건도 아닌데 뭔 걱정이냐고 합니다. 할 수 없이 남편이 짐을 싸고 묶고 해서 이사했습니다.

식당도 시장도 다 문을 닫은 날

큰길가 목 좋은 넓고 큰 가게로 이사하고 나니 확실히 손님이 많아졌습니다. 정신없는 나날이 흘러갑니다. 문구 장사가 익숙해진 때 업종을 바꾸고 나니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참고서는 아이들이 달라는 대로 주고 정가대로 가격을 받으면 되는데 일반 서적은 달랐습니다. 손님들이 오면 책 내용을 물어봅니다. 요즘 잘나가는 책이 무어냐, 신간이 뭐가 있냐 물어봅니다. 손님 몰래 눈치를 보면서 책 뒤표지에 쓰인 추천글을 빨리빨리 읽고 이야기해줍니다.

어떤 책을 읽을지 추천해달라는 손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눈치껏 하느라고 힘이 들었습니다. 단행본은 송인서적에서 제일 많이 받았습니다. 송인서적의 영월 담당인 송 과장은 출장을 올 때마다 책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어서 장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능력개발 최 부장이 출장을 온 날입니다. 남편과 둘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했다고 뉴스가 나옵니다. 다들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아끼고 집 앞에는 조기를 달았습니다. 식당도 다 문을 닫으라고 했답니다. 식당 앞에서 어떤 사람이 고발할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중에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친한 친구끼리 술 한잔하고 있는데 박 대통령 암살 소식을 듣고 “각본대로 되었다”고 했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은 고발당해서 한참 동안 영창을 살고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최 부장님은 아주 깔끔하고 멋쟁이셨습니다. 누추한 우리 살림방으로 할 수 없이 최 부장님을 모셨습니다. 최 부장님은 50이 넘었는데 세 살짜리 딸이 하나 있답니다. 세 살 먹은 딸내미 앨범이 세 권이라고 자랑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셋이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합니다. 장래 화가가 꿈인 큰딸의 그림을 보고 이걸 다 사진 찍어서 보관하지 그러느냐고 했습니다. 액자도 만들어주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게 하느냐고 합니다.

시장도 다 문을 닫았습니다. 어떻게 서울 손님을 대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서점이 정식 이사를 했으니 집들이할까 하고 담근 김치가 있었습니다. 고추부각을 만들고 호박 한 개 있어서 막장찌개를 끓였습니다. 배추김치를 옛날 어머니처럼 한 접시 수북이 담아냈습니다. 파김치도 큰 접시에 넉넉히 담았습니다. 총각김치도 한 접시 가득 담았습니다. 왠지 주눅 들어 조금 담기 싫었습니다. 무장아찌도 무쳤습니다. 고추장아찌도 올렸습니다. 고기는 한 점도 없는 완전 시골식으로 한 상 차렸습니다. 남편도 최 부장은 입맛이 까다롭다고 많이 걱정했습니다.

노심초사한 세월이 몇 년인데

그런데 밥상을 보자 우선 사진부터 찍습니다. 자기네 어머니가 차린 밥상 같다고 합니다. 생전 처음 김치 먹어보는 사람같이 김치를 먹습니다. 배추김치 한 접시를 다 비우고 김치를 좀더 달라고 합니다. 걱정과 달리 그렇게 잘 먹는 손님은 처음입니다. 여관에서 자고 아침 첫차로 갔습니다.

다음날 남편은 아침을 먹으며 김치 좀 가져와보라고 합니다. 김치를 먹어보더니 “맛있네” 그럽니다. 남편은 겨울 김장김치는 잘 먹는데 여름에는 김치를 안 좋아해서 끼니때마다 반찬 걱정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는 까다롭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합니다. 끼니마다 뭘 먹을까 노심초사하고 산 세월이 얼마인지 남편만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최 부장님이 김치를 잘 먹고 간 날부터는 남편이 여름김치도 좋아하게 돼서 반찬 걱정을 덜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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