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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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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수학을 풀다

재밌다가 금세 당위로 돌아오는 수학, 수학에 패배하고 싶지 않아
등록 2021-07-08 01:00 수정 2021-07-08 11:31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나와 수학의 인연은 질기고도 아릿하다. ‘수학’을 했다고 처음 기억하는 건 유치원 때 교구놀이다. 몬테소리 교육 방식을 따른 우리 유치원은 아침마다 교구를 가지고 노는 시간이 있었다. 집게로 색색의 구슬을 하얀 그릇에서 초록색 그릇으로 옮기거나, 굵고 뭉툭한 바늘에 실을 꿰어서 송송 구멍 뚫린 스티로폼 판을 바느질하는 등 몇 가지는 아직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유치원을 다닌 3년을 통틀어 꾸중 듣거나 칭찬받기는 여러 번이었지만, 가장 부끄러운 일은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께 불려나가 ‘왜 수학 교구만 안 하냐’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뭐든 배우고 해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수학 교구를 한 횟수만 유독 적었다. 그때부터 수학은 잘하고 좋아하는 아이가 따로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학교에 오자, 수학학원을 다니지 않는 친구가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수학학원에 첫발을 디딘 나는 이미 늦어 있었다. 뒤처진다는 생각은 나를 정말로 뒤처지게 했다. 수학시간이 즐겁고 수학학원에 다니는 일이 피곤하지만 하기 싫은 건 아니었는데도 수학시험 성적이 훨씬 낮게 나왔다. 중학교 2학년 첫 수학시험을 본 뒤 정말 많이 울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리고 3학년에 올라가서도 나는 울면서 수학문제를 풀었다. 수학을 공부한 기억은 정말 몰입했거나, 속상하고 답답하고 불안해하거나 둘 중 하나의 감정으로 완전히 물들어 있다.

얼마간 투병하면서 내신, 대학 입시 등의 문제에 많이 초월해졌다고 여겼다. 물론 시험기간이 되면 불안하고 예민해져서 잔뜩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을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은 이 모든 것과 별개로 이따금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수학을 싫어해서 재능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수학이 재미있을 때가 있다. 수학은 반짝 재미있다가 금세 당위 혹은 의무로 돌아온다. 그 반짝 때문에 혹시 수학에 재능 있고 수학을 열렬히 사랑하는 조금의 가능성이 있을까봐 나는 마음을 편히 먹지 못한다. 더 잘하고 싶다.

나는 모든 배움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수학만 유독 힘들어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 수학이야말로 모든 과목의 기본이라고, 수학을 잘해야 논리를 가질 수 있다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탓일지도 모르겠다. 논리를 가지고 싶고, 탄탄한 초석 위에 다른 학문을 쌓아올리고 싶으니까. 그러니 수학을 반드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알량한 과시욕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겠다.

금요일 밤마다 삼켜야 하는 약은 토요일의 나를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도록 한다. 지난 토요일에도 그랬는데, 특히 더 절망스러웠다. 기말시험이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수학시험을 보고, 나는 병원에 다니고 아프느라 수업을 많이 빠졌다. 복습도 예습도 할 시간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열심히 듣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당연히 예전에 목표하고, 하던 만큼도 공부해낼 수 없었다. 아프느라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렇게 부담을 가지는 것이 바로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수학이 아닌 다른 과목과 분야에 재능이 더 많음을 시사한다는 건 확실하다. 그래도 수학 공부에 손 놓을 수 없다. 포기하고 싶을 때쯤 신기루처럼 피어오르는 재미와 성취감 때문에 나는 수학에 집착한다. 수학에 패배하고 싶지 않다.

신채윤 고2 학생

*'노랑클로버'는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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