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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굿즈 위한 ‘1일 1머리 뜯음’

‘웹툰 단행본=한정판’ 공식, 이미 다 본 내용을 굳이 소장하는 팬을 위한 책이기에
등록 2021-06-29 06:51 수정 2021-06-30 22:45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의 굿즈. 디앤씨웹툰비즈 제공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의 굿즈. 디앤씨웹툰비즈 제공

웹툰 편집자에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성취감과 머리를 쥐어뜯는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과정이 있다. ‘1일 1머리 뜯음’을 시전하게 할 만큼 괴롭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작업! 바로 단행본과 함께 출시하는 ‘한정판 굿즈(판촉물)’를 구상하는 일이다.

판촉물, 판촉물 누가 말했나, 웹툰 편집자가 말했지…. 책 만드는 편집자가 왜 판촉물 타령을 하냐고 물으신다면 ‘한정판’과 ‘굿즈’라는 독특한 개념을 빼놓고는 웹툰 출판 시장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수를 제한해 발간하는 출판물이나 음반으로, 독자가 없어 수요가 적은 책이나 음반을 출판할 때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한정판’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렇다면 웹툰 출판계에서 한정판이란? 꼬꼬마 웹툰 편집자로서 감히 정의해보자면… 웹툰 단행본 시장의 특이점이자 담당 편집자를 판촉물 장인으로 만드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웹툰 출판 시장에선 보통 초판부터 일반판과 한정판을 함께 선보인다. 한정판은 초판이 소진되면 품절되고 책에 여러 굿즈를 함께 곁들인다. 정가는 2만원 중반인 경우가 많다. 패키징을 고급스럽게 구성하면 4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최근 작업한 만화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이하 <그공사>) 5권의 한정판은 책과 함께 아크릴 키링(열쇠고리), 마우스패드, 엽서와 스티커 세트 구성으로, 값은 2만8천원이다. 비싸다고? 하지만 이 시장에서 이 가격은 저렴한 축에 속한다. 지금까지 나온 <그공사> 1~4권 한정판은 모두 품절됐다.

책과 굿즈가 묶인 한정판은 이제 시장에서 ‘기본템’이 됐다. 웹툰 단행본이 굿즈 하나 없이 출간되면 왜 한정판이 없냐고 항의하는 독자까지 있을 정도다. ‘웹툰 단행본=한정판’ 공식이 나온 원인은 웹툰 단행본의 물성을 살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웹툰 단행본 독자는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본 내용을 굳이 ‘소장’하기 위해서 산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웹툰 도서는 소장‘품’ 성격을 강하게 띤다.

작품에 관련된 여러 판촉물, 그러니까 굿즈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엽서나 책갈피, 캐릭터 카드 같은 지류 굿즈부터 제작 단가가 꽤 높은 아크릴 스탠드 등이 대표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팬에게는 무척 값지고 의미 있는 굿즈가 제3자의 눈에는 한낱 종이 나부랭이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완결된 웹툰 작품의 단행본이 나온다고 치자. 이 작품의 한정판 부록으로 두 주인공의 결혼식에 초대하는 ‘청첩장’과 고사양의 ‘메모 보드’가 함께 포함됐다. 과연 팬을 더 열광하게 할 굿즈는? 두말할 것도 없이 청첩장이다. ‘동네 사람들, 제가 우리 애들 결혼식에 초대받았어요!’ ‘예식장으로 화환 보내겠습니다’ ‘담당자 아이디어 미쳤다!’ 등 한정판 부록에 대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반응이 절로 눈에 그려진다. 실제로 <그녀의 심청> 스페셜 에디션 단행본을 제작할 때 가상 청첩장을 만들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봤다.

이처럼 제품의 단가나 실용성을 떠나서 그 굿즈가 작품과 얼마나 깊게 관련돼 있느냐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기본 중의 기본인 책의 완성도를 챙겨야 하고, 굿즈도 구상하고, 가격이 너무 비싸면 안 되고(웹툰 주독자층의 나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리다)…. 그래서 웹툰 편집자들이 맨날 머리를 쥐어뜯는 것이다.

유선 디앤씨웹툰비즈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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