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침을 먹으면서 주산학원과 과외학원을 겸해 하면 돈을 벌 것 같다고 합니다. 그냥 해보는 소리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때 보니 언제 준비를 다 했는지 개업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 그렇게 하고 싶은지 마음만 먹으면 말려볼 틈도 없습니다.
걱정입니다. 나 혼자 아기를 데리고 가게를 어떻게 하겠냐고 울상이 되었습니다. 나보고 걱정도 말라고 합니다. 부원장도 신용 있는 사람이고 강사진이 탄탄해 그냥 맡겨놓고 자기는 본업에 충실할 것이라고 합니다.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예쁜 쌍둥이 자매가 있었는데 한 명은 영어를 가르치고 한 명은 주산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걱정한 것보다는 학원이 순조롭게 잘되는 편이었습니다. 주산 선생님이 남자친구가 생겨 결근이 잦아졌습니다. 남편은 어느 날부터인가 주산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누구네 집 아들은 학원비를 1년을 안 내고 다닌다고 합니다. 집이 가난한 것도 아닌데 수금을 가면 엄마를 만날 수도 없답니다. 남편이 나보고 혹시 그 엄마를 만나거든 돈을 좀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시장 골목에서 아이의 엄마를 만났습니다. “누구 엄마 학원비를 좀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단둘이 만나 얘기했는데 아이 엄마는 “그 잘난 학원비 좀 밀렸다고 사람 많은 시장 가운데서 달라 하냐”고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그 새끼가 공부나 잘한다면 또 말을 안 해!” 나는 밀린 학원비 좀 달라고 한마디 했는데 아이 엄마는 소리소리 지르니까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니 “이 뭣 같은 ×!” 하며 아이 엄마는 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나가던 옷가게 아줌마가 내 손을 끌면서 빨리 가자고 했습니다. 자기네 집에서도 아들 옷을 외상으로 가져갔는데 외상값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세탁소도 식료품가게도 외상값을 못 받았다고 합니다. 그 여자에게 외상값을 달라는 건 땡비(땅벌) 집을 건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다들 외상값은 못 받고 약이 오르니 “그 새끼 키워서 뭐가 되나 볼 거여” 하며 흉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친정어머니 얘기로는 말이란 오장육부에서 우러나야 한다고 합니다. 말주변이 없는 사람은 심부름을 시켜도 시킨 말 외에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왜 그리 말주변이 없는지 누가 세게 나오면 할 말도 잊어버리고 어버버하다가 맙니다. 좀 싸우려고 하면 눈물부터 나서 싸울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싸움에서 눈물을 보이면 지는 거라고 절대 울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고쳐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같이 먹었습니다. 저녁은 바쁘니, 아침밥 먹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제는 누구 엄마에게 학원비 달라고 했다가 욕만 잔뜩 먹었다고 얘기했습니다. 남편은 학원을 그만둬야 하겠다고 합니다. 학원이 그렇게 안 되는 것은 아닌데 누구네는 돈이 있어도 학원비를 안 내고 어려운 학생은 어렵다고 면제해주다보니 별로 돈이 안 된다고 합니다. 선생님들도 속을 썩이는데, 마침 남자 선생님 한 분이 학원을 맡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집주인이 기척 없이 문을 확 연 이유아침 먹을 때 지나가는 말이려니 했는데 저녁때가 되니 벌써 인수인계를 끝내고 왔답니다. 속으로 일을 벌이기도 잘하고 정리도 잘해서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1년6개월 동안 운영한 학원을 정리한 돈이라며 잘 가지고 있으라고 꽤 많은 금액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우리가 세 들어 살던 가겟집을 집주인이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집을 팔면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사고 싶습니다. 집주인이 좀 별나서 살기가 많이 불편했습니다. 집세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전기세 물세 따로따로 다 냅니다. 그런데도 불이 껌벅하면 아무 기척도 없이 와서 문을 확 열어봅니다. 혹시 자기네 몰래 전기제품을 쓰는지 조사하러 왔답니다. 그런 일이 하도 심해, 옷도 세탁소에 가서 다려다 입었습니다.
남편이 이 집을 사려면 돈이 좀 모자랄 것 같으니 돈을 좀 구해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돈 구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친정아버지가 장에 오셨기에 아버지께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데 보증을 서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문제는 큰올케와 의논해보라 하고 그냥 가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아들이 많은 평창상회는 한 시세 더 주고라도 사서 작은아들 살림을 차려줄 거라고 별렀습니다.
소문이 나고 얼마 안 있어 주인이 집을 팔고 강릉으로 이사 간다며 집을 내놓았습니다. 집주인은 시세보다 많은 돈을 부르면서 우리보고 집을 사라고 합니다. 그래도 살고 있었으니 우선권을 주는 거라며 한 푼이라도 깎으면 다른 사람한테 팔겠다고 합니다. 남편은 얼른 평창상회 회장님한테 갔습니다. 이 집을 판다는데 얼마에 사면 어떻겠냐고 의논했습니다. 평창상회 회장님은 물건이 맘에 들면 한 시세 더 주고라도 사야 한다고 했답니다.
우리는 달라는 금액을 다 주고 집을 샀습니다. 집주인은 중도금이고 잔금이고 빨리빨리 주면 좋겠답니다. 중도금까지는 되는데 잔금이 모자랍니다. 적금이 하나 있는데 끝나려면 아직 몇 달이 남았습니다. 친한 친구네 엄마가 가게를 세주고 잘살았습니다. 친구 엄마한테 적금 통장을 들고 갔습니다. 적금 통장을 맡길 테니 적금 액수만큼만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적금 붓는 날은 통장을 찾아다 적금을 붓고 다시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적금 만기가 되면 같이 가서 적금 탄 돈을 드리겠다고 하고 돈을 빌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게 차린 지 3년 만에 가겟집을 샀습니다.
평창으로 이사 오던 1973년 가을부터 구옥을 헐고 너도나도 이층 양옥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집을 짓고,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동원해 상을 차려 집들이를 합니다. 남의 집들이에 가면 팥죽이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이사하는 날 팥죽을 끓여 집 안에 뿌리고 먹어서 액땜함). 나는 10년이 가도 집을 살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3년 만에 집을 산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부엌엔 검정 솥을 사서 반들반들 윤기 내어 걸고 마당에는 강아지도 키웁니다. 얼른 돈을 모아서 집을 새로 짓고 집들이할 꿈을 꿉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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