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기생충>이다!” <벌새>(2018)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지금 한국 영화를 규정하는 하나의 언어로 자리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 관객상 수상을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 섹션 대상, 트라이베카영화제 최우수 국제장편상 등 전세계 영화제에서 59개의 트로피를 받으며 <벌새>는 힘차게 날아올랐다. 제작비 3억원의 작은 영화 <벌새>가 이룬 기적이었다.
<벌새>의 활약은 한국 영화의 변화를 뜻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그간 세계 영화 지형도에서 한국 영화의 영역은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등 남성 감독 이름으로 대표되고 규정돼왔다. 1994년 개발 논리로 우리 사회에 폭력이 만연한 시절을 통과했던 14살 소녀 은희(박지후)의 성장담을 그린 <벌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여성 서사를 만든 여성 감독이 그 자체로 폭넓게 호응을 얻은, 한국 영화 100년사의 반가운 시작을 의미한다. 김보라 감독이 영화를 완성하기까지는 장장 7년이 필요했다. 이 영민하고도 집요한 창작자는 자신의 한 시기를 통틀어, 한국 영화계에 은희라는 어린 여성의 시선을 더해줬다. 장편 데뷔작을 만든 신인감독 김보라의 등장은 그래서 <벌새> 한 편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는 커다란 확장성을 지닌다.
김보라 감독이 열어젖힌 문을 통해, 한국 영화계는 ‘제2의 벌새’를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많은 창작자가 이제 작은 영화로도 <벌새>와 같은 반향을 불러오길 꿈꾸고 계획한다. <벌새>가 보여준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상상이다.
그간 나는 기자로 인터뷰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며 <벌새>의 행적을 부지런히 기록해왔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보라 감독은 자신의 시선을 펼쳐 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그 누구보다 용감한 창작자다. ‘체인저스’라는 화두에 가장 먼저 감독 김보라를 떠올린 것도 그런 이유다. 김보라 감독에게 <벌새>가 선물한 기적 같은 변화를 짚어보기 위해 만남을 청했다. 서울 망원동 자택, 김보라 감독은 이제 <벌새>를 향한 관심을 잠시 접고 차기작 <스펙트럼> 준비에 매진 중이다. 한국 영화가 공상과학(SF) 장르로 상상력의 몸집을 키우는 지금, 김보라 감독의 도전도 크기가 한층 커졌다. 그간 여성 감독이 접근하지 않은 장르라는 선입견과 장벽에 맞섰다는 점에서, 김보라 감독이 불러올 변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긍정의 신호가 읽혔다.
개봉 전 수상부터 한국 개봉, 미국, 일본 개봉까지 <벌새>로 참 바쁜 시간을 보냈다.
“차기작에 들어가야 하니 한동안 인터뷰하지 않았다. 마침 며칠 전에 <벌새> 블루레이 제작 음성 해설 작업이 있어서 오랜만에 <벌새> 배우들, 스태프와 만났다. 함께 신나게 칭찬하고 자랑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사회 비슷하게 맡았는데, 이 분위기로 가자고 했다.(웃음)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다보니 현장에서 다들 고생이 많았는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잘했다고 이야기해주는 시간이 이번이 처음인 거다. 너무 뭉클하고 기분이 벅차더라. 코멘터리 끝나고 집에 와서 달뜨고 먹먹한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그 칭찬과 자랑을 오늘도 좀 이어가야겠다.(웃음) 14만7461명이라는 기록적인 관객 수도 <벌새>가 이룬 성취였다. 2008년 <똥파리>가 세운 12만 명의 기록을 뛰어넘은 수치다. 한국 독립영화 극영화 부문에서 11년 만의 스코어 경신이었다. 대작이 독식하던 극장가, <벌새> 흥행이 독립영화계에 준 활력, 에너지가 크다. 영화계에서는 ‘제2의 <벌새>’로 붐업 된 분위기를 이어나가자는 힘이 생겼다.
“그 정도 관객 수는 생각도 못했다. 첫 개봉이다보니 수치에 감이 없었다. 처음 배급사와 함께 세운 목표치도 훨씬 낮았는데, 개봉하고 보니 초반 여세가 세더라. 1만 명이 될 때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할 감사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아, 이거 미리 더 만들어놔야겠다’ 직감이 왔다.(웃음) 그렇게 기념 동영상을 만들 때마다 다들 신이 나서, 더 재밌게 만들자 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좋아해주니 더 힘이 나더라.”
<벌새>는 ‘엔(n)차 관람객’(한 관객이 여러 번 영화를 봄)이 많았다. 영화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관객이 회를 거듭할수록 확대됐고 서포터즈 ‘벌새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작은 독립영화 한 편으로 이렇게 연락을 많이 받는 건 생각지도 못한 특수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그 시기에 번아웃이 오기도 했다. 관객이 황금빛 보호막, 마음에 바르는 마데카솔 같은 구실을 해주셨다. <벌새>를 보신 분들이 그냥 영화가 좋다, 웰메이드다 이런 평가가 아니라, 자신과 연결해서 환호를 보내주셨다. 그 마음이 모두 느껴졌다.”
첫 장편 <벌새>로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과 넷팩상,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 섹션 대상, 트라이베카영화제 최우수 국제장편상, 이스탄불영화제 국제장편 대상, 예루살렘영화제 최우수 장편데뷔작상, 청룡영화제 각본상, 백상예술대상 감독상 등 국내외에서 60개가량 상을 받았다. <벌새>는 <뉴욕타임스> 크리틱스 픽, 로튼토마토 공식 인증 100%를 받으며 인디와이어와 메타크리틱이 뽑은 2020년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올랐다.
<벌새> 관객과의 대화(GV)를 여러 차례 하면서 감독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관객과 창작자가 <벌새>라는 공통어로 같은 공간 안에서 교류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GV 때 극장에 들어서면 관객이 보내주는 공기로 그 공간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다. 경청하는 눈빛, 환대의 에너지가 극장 온도를 높여준 거다. 내 본질을 이해하고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함께하니, 일종의 공동체 느낌이 들더라. 특히 관객이 보내주는 편지가 큰 힘이 됐다. 그 편지들을 드래곤볼이 구슬 모으듯 모았다. 마리오가 버섯을 먹고 몸집이 커져 슈퍼 마리오가 되는 것처럼 나도 힘이 나더라.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는 말을 지면을 통해서라도 꼭 전하고 싶다.”
<벌새>는 여성 감독, 여성 주연, 여성이 주도하는 서사의 작품으로 그간 영화계에 부족했던 여성 영화의 붐을 형성해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아트나인 극장에서 한, 여성 감독들이 모인 크로스 GV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집>을 만든 윤가은 감독, <메기>의 이옥섭 감독, <밤의 문이 열린다>의 유은정 감독과 함께했는데, 그 만남을 많은 분이 응원해주셨고, 그렇게 여성 감독들이 함께한다는 걸 의미 있게 봐주셨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영화를 만들고 진행하면서 겪었던 고충을 모두가 비슷하게 경험했더라. 이야기를 나누면서 큰 힘이 생겼다.”
2020년 성평등한 영화계를 위해 마련한 행사 ‘벡델데이2020’에서는 영화를 통해 양성평등에 기여한 영화인인 ‘벡델리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똑같은 질문을 남성에게 하지 않는다면 나도 대답할 필요 없다’며 차별적인 시선을 바로잡는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소신 있는 발언이 늘 화제가 됐다.
“평소 생각을 담담히 말하려 한다. 사실 인터뷰 때 내가 하는 말은 내가 지향하는 걸 말하기도 한다. ‘그러고 싶다’일 수도 있는데, 마치 내가 다 그런 사람처럼, 너무 멋있는 말만 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민망하기도 했다.(웃음) 가끔 악성 댓글도 받고 비난도 받으니 마음이 쓰인다. 나는 20대부터 페미니스트였는데, 어떤 발언이 단순히 시류에 따라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더라. 그럼에도 내가 소비되고 깎여나가지 않는 선에서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말은 하려고 한다. 말하지 ‘못할’ 때 느끼는 슬픔이 있기에.”
여성 감독으로 그간 부딪힌 편견에 더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계속해서 여자 감독이라고 호명되는 것이 피로할 때가 있다. 해외 영화제에서 영화가 아닌 여성 감독으로서 힘든 점만 계속 물어올 때, 내가 여성을 대표해 발언해주길 바랄 때 부담되기도 하고 작품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앞으로 차별적인 시선이 없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할 때는 현장에서 성적소수자(LGBT) 친화적인, 소수자 친화적인 현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가능하면 우리 현장이 즐겁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영화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감독이 돼야겠다는 꿈을 키운 건 언제부터였나.
“고등학교 때 연극을 전공했고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그때는 그냥 전공 수업 과제로 영화를 만들었다. 첫 번째 영화 만들고 재밌다고 느낀 건 내가 서울의 강남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강남 여자’ ‘강남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었다. 운동권 성향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영화를 한 편 만들고 나니 그제야 시선이 달라지더라. 나는 똑같은데 나에 대한 평가, 판단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자보를 쓰고 알리려 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을 본질적으로 보여주는 것, 나를 알게 해주는 게 영화구나. 이후 영화를 만들 때는 그래서 잘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유년기의 기억을 살린 졸업 단편 <리코더 시험>(2011)이 주목받았다. 초등학생 은희의 시선으로 이 사회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의 묘사, 설정 등이 <벌새>의 중학생 은희의 전사 같다는 점에서, 장편의 토대로 연결지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를 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늘 의심했다. 영화가 아닌 글을 써보고 싶어 문예창작학과에도 갔다. 그러다 결국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영화학과 대학원에 갔는데, 거기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선생님들이 영화를 너무 사랑했고 한국 교육 기관에서 느끼지 못한 LGBT 친화적인 환경에서 영화를 배웠다. 소수자 혐오 발언이나 농담 같은 배제가 없는 교실은 처음이었고 무척 해방적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조용히 공부만 하면 되겠다는 안심이 됐다. 게다가 선생님들이 내 작품을 무척 응원해줬고 그 지지가 큰 힘이 됐다.”
그 시절의 학생 김보라를 떠올리니, 폭력적인 사회에서 따뜻하게 자신을 바라봐주는 (<벌새>의) 영지 선생님을 만난 사춘기 소녀 은희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페미니스트, 소수자 친화적인 교실에서 교수님들의 응원과 함께 학교생활을 한 게 처음이었다. 대학교 때 ‘이런 영화는 그만하는 게 더 좋은 선택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대학원에서 내 작품에 대해 깊은 존경을 받는 기분을 느꼈다. 5분짜리 영화에 대해서도 2시간 동안 세심한 크리틱(비평)을 받았다. 모든 샷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보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게 해준 경험이었다. 이후 <벌새>가 미국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최우수 국제장편상)했을 때 선생님들이 다 오셔서 축하해주고 너무 뿌듯해했다. <뉴욕타임스>에 <벌새> 기사가 난 걸 찍어서 보내주기도 했다. 선생님이 나한테 사랑을 준 것처럼 선순환하자는 마음이 생겼다. 한국에 온 뒤 성결대, 단국대에서 수업할 때 나 역시 ‘내가 받은 사랑을 그대로 주겠어’라는 마음으로 강의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 작품이 영화제에 가서 호평받는데, 그때 알겠더라. 이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사랑이라는 것이 순환하는구나. 사랑도 제대로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깨달음을 준 대학원 선생님들께 늘 감사하다.”
두 번째 작품에 빨리 들어가서 고무적이다. “여성의 눈으로 역사, 전쟁, SF 장르를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마침 김초엽 작가의 단편 SF물 ‘스펙트럼’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여성 감독이 많이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크다.
“열심히 쓰고 있다. 어떤 작품을 할지 결정하기까지 조금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김초엽 작가의 ‘스펙트럼’을 원작으로 한 작품 제안이 왔다. 너무 좋아하는 작가이고 특히 그 작품을 좋아하는데, 신기했다. 나다운 작품을 만났다는 것이 기적이고, 더군다나 온전히 작품을 쓰는 데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예전에는 돈을 구하기 위해 제작서, 예산서 쓰고 피칭(일종의 투자설명회)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일이었다. 요즘 영화 준비를 위해 SF 영화, SF 책 보는 게 일인데 너무 재밌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직업이라는 게 좋다. 어느 날 작업실에서 글을 쓰다가, 혼자 ‘굉장히 감사하다’ 했다. 사실 <벌새> 이후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벌새> 이후 일어난 모든 일이 예기치 않은 큰 선물 같다.”
영화를 통해 감독 김보라가 세상에 주고 싶은 변화는 무엇인가.
“오정희 작가가 ‘모든 질문의 답은 사랑이다’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20대 때는 시니컬했는데 지금은 청기 백기 다 내렸다.(웃음) 아무리 쿨한 척하고 홀로 잘 지내고 싶다고 해도,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작업 중인 <스펙트럼>도 그렇고 앞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작품은 연결성과 사랑인 거 같다. 잔가지 없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 어떤 연결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어떤 장르의 어떤 영화를 만든다 해도 그 부분을 견지하고 싶다. 무엇보다 앞으로 영화를 잘 만들고 싶다.”
wjryu@hani.co.kr*1355호 - 체인저스 21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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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싱잉볼과 아로마오일. 방 안에는 명상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사진도 있다. 김보라 감독의 집 안 곳곳에는 언제든 명상할 수 있는 도구들이 준비돼 있다. 잡다한 물건 없이 꼭 필요한 물건만 갖춰진 집 역시 명상할 장소로 언제든 변환 가능해 보인다.
김보라 감독에게 명상은 익숙한 일상이자 수련 방법이다. 그는 명상을 만나고서 자신의 삶이 “천지개벽하는 것처럼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가 유년기를 보낸 곳은 서울 강남 아파트 지역이었다. 보이는 것이 중요하고 서로서로 비교하는 지역에서 아이 때부터 모두 서울대를 향해 달려가야 했던 그때 그는 “이렇게 살면 미치겠구나” 하고 자각했다. ‘이렇게 쳇바퀴 돌듯 살아가면 불행할 텐데, 이런 삶이 전부가 아닐 텐데’ 갑갑해하던 순간 만난 것이 명상이다. “어느 날 집에서 명상 책을 발견했다. 명상 원리를 담은 기본서였는데, 그걸 보고 느꼈다. 내가 살길이 이거 구나!”
자신의 마음속 지옥도를 풀어낼 각자의 방식이 존재하듯, 김보라 감독에게 그 방법은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더 면밀하게 알 수 있었다는 그는 “창작하는 데 명상이 주는 도움” 역시 크다고 말한다. “명상을 하다보면 나의 광활한 내면과 만난다. 내 내면의 광활함을 느끼면 타인 역시 그러함을 알게 된다. 내가 타인을 손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줬다.” 그는 하루에 시간을 정해두고, 3분이라도 명상한다. 그렇게 일상의 루틴으로, 빼먹지 않고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다.
트로피 수집가라고 해도 될 정도로 김보라 감독이 <벌새>로 받은 수상 트로피 수는 손에 꼽기 힘들다. 그런데 막상 김보라 감독의 집에는 그 성과를 과시할 트로피가 눈에 띄질 않는다. “다 서랍장에 넣어놨죠. 집은 군더더기 없는 게 좋아요. 맹신하는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 식으로 집을 정리해요.(웃음)” 쏟아지는 찬사와 호평을 서랍장에 고이 넣어두겠다는 의지처럼 들린다. 대신 그의 집은 딱 필요한 것만 두어 깨끗하고 단출하다. 담백하고 솔직한 김보라 감독을 꼭 닮은 공간이다.
<벌새>를 통해 김보라라는 사람을 알게 된 지도 이제 3년이 됐다. 그간 만남을 통해 느끼는 건 언제나 솔직하며, 그 태도가 타인을 향한 사려 깊은 마음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김보라 감독은 그런 점에서 내가 아는 누구보다 찬사받는 것에 당당하고 자신 있는 사람이다. 한번은 사양 없는 그 태도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30대를 바쳐서 만든 영화가 부끄럽지 않고 그에 맞는 표현은 하고 싶다”고 했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온 힘을 다한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이다. 그를 통해, 그의 영화를 통해 내 자리에서의 시간을 충실하게 사랑할 힘을 배운다. 앞으로도 그 긍정의 에너지를 자주 전달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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