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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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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일] 모든 일이 급하다

도서 등록, 문자메시지, 앱 푸시 등 베스트셀러 도서가 입고되면 하는 일들
등록 2021-03-13 23:55 수정 2021-03-19 10:25
박태근 제공

박태근 제공

보람찬 일주일을 보내지는 못했으나 마무리하지 못한 일은 이미 마음속에서 다음주로 넘겨버린 금요일 오후 5시30분, 평화를 깨는 전화벨이 울린다. 기대작 관련 자료를 조금 전에 보냈으니 확인과 등록 그리고 예약판매를 진행해달라는 요청이다. 이 정도로 급박한 도서라면 대체로 큰 판매량을 기대하는 상황이니 높아질 매출을 기대하며 가슴이 뛸 법도 할 텐데, 담당자의 표정은 좋지 않고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다. 남은 30분 동안 펼쳐질 일이, 그러니까 실행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퇴근을 앞두고 마음을 내려놓은 다른 이들까지 분주하게 만들어야 하니 심신이 편할 리 없겠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먼저 ①도서정보팀에 관련 도서 자료 등록을 서둘러달라 요청하고, ②서버의 정기 업데이트 전에 해당 도서의 정보가 바로 올라가도록 개발 부서에도 말해둔다. 도서 정보가 등록되는 동안, 그러니까 몇 분을 활용해 ③해당 도서의 구매 예상 독자에게 보낼 문자메시지와 앱 푸시 문구를 정리하고 발송 시스템에 등록한다.(사진) 돌아서면 ④도서 등록이 마무리되니 적절한 분류에 자리했는지, 내용은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앞서 준비한 내용을 발송한다. 이 와중에 ⑤예약판매 기간에 진행되는 이벤트 등록을 담당자에게 요청하고, 등록이 완료되면 ⑥이벤트 안내 문구를 점검한 뒤 홍보 전자우편을 보낸다. ⑦분야 페이지와 전체 페이지의 적절한 자리에 도서를 배치하면 일단락된다.

10~20분 동안 이뤄지는 일인가 싶을 정도의 가짓수이지만 해내지 않을 도리는 없다. 경쟁하는 다른 온라인서점도 마찬가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큰 판매량이 기대되는 도서의 경우 출판사와 사전 협의를 할 때 월요일에 판매를 시작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일이란 게 뜻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각자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라 생각할 따름이다.

문제는 소통이 아니라 속도다. 온라인서점에선 모든 일이 급하다(급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일이거나 불가능한 일일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이라고 해서 실물의 이동을 전제하지 않는 게 아니지만, 데이터로 처리되는 영역이 적지 않아 많은 일이 순식간에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연관된 모든 이가 이 속도에 익숙해져 느림의 미학은 상상할 수 없게 돼버렸다.

다시 한번, 어쩌면 모든 문제는 속도다. 앞서 큰 판매량을 기대하는 도서의 사례를 들어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알리는 과정을 대략 살펴봤는데, 이런 책은 예외일 테고 대다수 책은 이보다 적은 가짓수의 일을 거쳐 천천히 독자에게 전달될 거라 예상했다면 틀렸다. 모든 일을 같은 속도로 해내는 게 이곳의 미덕이다. 가짓수가 다르다 해도 같은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동일하게 관리된다. 책의 판매량, 의미, 가치, 평가 등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다. (어쩌면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은 방향이다. 이렇게 속도를 끌어올려 확보한 시간을 앞서 언급한 책의 의미와 가치를 살피고 나름의 평가를 거쳐 적절한 홍보 방안을 궁리하는 데 쓰는지 말이다. 생각할 시간을 늘리지 않고 가짓수를 늘리는 쪽으로만 움직이며 모든 시간을 사라지게 하는 건 아닌지, 잠깐 시간 내어 생각해보는 오늘이다.

박태근 인터넷서점 알라딘 도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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