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너의 외로움은 나의 수익

데이트앱 중독기 ② 성범죄를 품은 미필적 고의
등록 2020-12-23 08:04 수정 2020-12-25 01:22
상대방의 프로필을 더 보려면 과금을 하라는 안내문. 앱 화면 갈무리

상대방의 프로필을 더 보려면 과금을 하라는 안내문. 앱 화면 갈무리

데이트앱을 통해 쬐었던 가벼운 관심들은 꽤 따뜻했지만, 크고 작은 불똥이 튀었다. 상대방에게서 겪은 무례한 말들, 잠수 타기, 성희롱이 그랬다. 운 좋게 그 불똥들은 불길로 커지지 않았지만 흉터를 남겼다. 그 흉터가 ‘쉬운 여자’라는 낙인으로 읽히기도 했다. 혹은 왜 그렇게 불똥이 튈 것이 분명한 곳에 있었냐고, 그 흉터는 불나방처럼 쉬운 관계에 달려든 대가가 아니냐는 소리가 만져지는 듯했다. 채팅앱으로 만난 여성을 모텔에서 살해한 남성의 사건이 보도되면 기사 댓글에는 ‘채팅앱으로 만나서 모텔 가는 게 정상인가요?’라며 피해자를 탓하는 반응이 쏟아졌다.

데이트앱은 설치만 하면, 심지어 설치 뒤 몇 초 만에 이상형과 매칭될 수 있다고 광고했다. 하지만 이상형에게 ‘까이는’ 경우도 꽤 됐다. 또 대화하거나 상대방 프로필을 더 보려면 결제하라는 팝업창이 떴다. 데이트앱 리뷰에도 “매칭이 너무 안 돼요” “과금 유도 심하네”라는 평가가 많았다. 매칭이 거의 되지 않는다는 평가에 앱 관리자의 답변 중 하나는 ‘매력적인 사진과 성의 있는 프로필’을 올리라는 조언이었다. 매칭에 외모, 프로필 연출 등 사용자 역량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처음엔 데이트앱 관리자의 답변에 수긍이 갔다. “다들 게임의 규칙을 알고 시작한 것 아니야? 어떻게 앱 하나로 이상형을 만나. 화장품 하나면 피부가 완벽해진다고 믿는 사람이 바보지. 그리고 데이트앱 회사도 먹고살려면 과금은 당연하잖아.”

하지만 의심은 쌓여갔다.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사용자는 ‘쉬운 여자’라는 낙인을 무릅쓰고 사용료를 내는데, 왜 데이트앱은 성폭력이나 성병, 피임 문제에는 침묵하는 걸까? SBS 스페셜 <채팅앱에서 생긴 일> 다큐멘터리에서 한 채팅앱 개발 전문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의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랜덤채팅앱이) 일부러 (불량한 내용에 대해) 필터링을 안 하는 거겠죠. 자신의 수익을 위해서 관리를 안 한다고 보면 되죠.” 수익을 위해 필터링하지 않는 ‘미필적 고의’는 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이어졌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는 사용자 나이를 인증하지 않는 앱을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했다. 이들 앱은 채팅앱의 90% 가까이 되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하자 데이트앱 사용량이 세계적으로 폭증했다고 한다. 모바일 분석기업 아이지에어웍스에 따르면, 국내 데이팅앱 ‘스카이피플’의 2020년 5월 총이용시간(안드로이드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94% 증가한 11만 시간을 기록했다고 한다. 데이트앱 시장이 사회적 외로움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데이트앱은 여전히 사적인 수익, 사적인 관계의 영역으로만 여겨진다. 현재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돌봄이 가족에게만 부담되거나, 민간 요양 업체에 비용을 지급하며 감당하는 일과 겹쳐 보였다.

지금 바라는 것은, 불면이 다시 잦아질 때, 연결하는 데가 데이트 앱이 아니면 좋겠다.

도우리 작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