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면접관들이 처음 물은 질문은 지원자가 예상했던 것에서 멀지 않았다.
“지원자께서는 원서 접수를 제일 빨리 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지원자는 즉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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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감염병 대유행이 생각보다 오래갔지 않습니까? 특히 최고 경계 기간도 워낙 길게 잡혔고, 그래서 수많은 취업 일정이 확 밀렸습니다. 그렇다보니 저처럼 직장 구하는 사람들은 예상외로 몇 달씩 하는 일 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버티는 게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만큼 오래간만에 취업자 공고가 나온 걸 보자마자 기회가 왔을 때 혹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빨리 지원했습니다.”
“최고 경계 기간이 길어지면 면접이 몇 주일, 몇 달씩 밀리는 것은 요즘 자주 있는 일이지 않나요? 이번 대유행은 그중에서도 유독 힘들었나요?”
“일이 없어서 버티기 힘든 사람 입장에서는 설령 다른 때에 버텼다고 해서 이번은 버티기가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지난번에 공공 시한 특별법이 발효된 후에는 절대 안 바뀐다고 했던 일정도 바뀌면서 미뤄지는 것이 확 많아져버렸습니다. 옛날에는 이사한 지 14일 이내에 전입신고, 국회의원 임기는 4년, 경찰 구속 기한은 10일, 그런 것들처럼 법령으로 정해놓은 시간은 절대 바뀔 수 없다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특별법이 시행된 후에는 무슨 시한이든 감염병 대유행이 벌어지면 예외로 바뀔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취업 일정도 그런 사회 분위기에 맞춰서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원자는 가능한 한 취업의 기회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그 무엇보다도 이 직장을 바라는 사람의 애절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면접관들에게 자신이 대단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뿌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면접관들은 기분이 좋고, 기분이 좋아야 좋은 점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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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는 자신을 V세대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습니다.”
역시 예상한 질문이었다. 나이 많은 요즘 면접관들이 그렇게 하기 좋아하는 질문이라고 최근 정보 공유소에서 자주 떠도는 이야기 그대로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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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 대유행이 반복된 후에 세계적으로 크게 문화가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달라진 문화에 적응하고 그 문화 속에 다른 생활 방식과 생활 태도를 갖고 자라난 세대를 V세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가 경험하고 자라난 시대도 거기에 들어맞습니다. 저 역시 V세대라고 할 만합니다.”
지원자가 대답을 마치자마자 다른 면접관이 물었다.
“지원자께서는 V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지원자는 면접관이 질문하는 문장의 단어 사용과 질문이 나온 시점을 빠르게 따져보았다.
면접 준비를 하면서 계산해본 바로는, 이런 태도는 면접관이 지나치게 우월한 자세를 취한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면접관을 들뜨게 하려고 지원자는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전을 썼다. 그런데 면접관 중 하나가 그 효과를 너무 과하게 받았다. 자신은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쉽게 재단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고 그에 비하면 지원자는 너무 하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 것 같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되면 면접관은 자신이 너무 우월하다는 생각에 취한 나머지, 반대로 지원자는 능력이 없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감정을 무심코 느끼게 된다. 지원자는 이제 반대로 지원자 쪽이 자신만만하다는 느낌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V세대라는 말이 그렇게 뚜렷한 실체가 있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파벳 한 글자를 따고 그 뒤에 세대라는 말을 붙여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떻다, 저렇다 하는 것은 사실 90년대 언론사들이 일본 언론사들 따라 하면서 생겼던 관습입니다. V세대라는 말부터가 그 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실체를 놓고 보면 그냥 옛날부터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을 보고 요즘 어린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하던 말을 반복하는 것인데, 뭔가 논리적으로 체계적인 척하기 위해 V세대니 뭐니 하면서 괜히 별로 안 들어본 용어를 하나 갖다붙인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원자는 자기가 말하는 것이 조금 심했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빠르게 한마디를 덧붙인다.
“물론 세대 갈등 자체야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갈등을 알고 해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나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라는 틀 속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무슨 뜻이지요?”
“세상은 망할 것이고, 엄청난 위기가 올 것이다, 이제 예전처럼 자유롭고 평화로운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고, 다들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망조로 가득한 세대다, 대비하려면 내 말을 믿어라.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더 눈에 뜨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무섭게 말해야 더 주목받고, 그렇게 말해야 다른 사람들이 자기 뜻에 쉽게 따라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이 계속 변하고 달라졌을 뿐이지 뭔가 끝장나고 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다시 일상이 찾아오고 다음 세대가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면접관들은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 질문했던 면접관이 다시 물었다.
“V세대는 감염병 대유행을 워낙 어릴 때부터 많이 겪은 세대라서 사람들 사이에 거리두기를 상시로 겪었고, 그래서 직접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딪치며 어울려 지내는 경험이 적어서 훨씬 인간관계에 서툴다는 평이 있는데요.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못된 평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인공지능 분석 방식의 적응력 검사와 인성 검사를 해본 결과 통계를 보면, 오히려 요즘 세대가 대인관계에 더 좋은 점수를 보이고 있습니다.”
“V세대는 학교에 직접 가서 수업을 받는 것보다, 온라인으로 수업에 참여하거나 가상현실 기계 속 수업에 참여하는 때가 훨씬 더 많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그런 생활에서는 예전처럼 사람을 가까이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많으려야 많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예전에는 학교에 가면 항상 자기 동네에서 자기와 비슷한 환경의 또래 사람들과만 어울렸습니다. 그렇지만 원격교육이 점점 퍼지면서 이제는 꼭 자기 동네에서 매일 등교할 수 있는 곳의 학교에만 가는 게 아닙니다. 깊은 산골 마을의 학생과 도시 주변부 공장지대의 학생이 같이 가상현실에서 어울리는 게 요즘 수업이고 요즘 학교입니다. 오히려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직접 학교 급우와 함께 같은 공간에 있고 실제로 바로 옆자리에 친구가 앉아 있는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지 않나요?”
“그렇지만, 대신에 학생들끼리 주먹질하며 싸우고 집단으로 몇몇 학생을 괴롭히는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그런 만큼, 육체적 폭력 대신 심한 욕설이나 정신적 고통을 주는 괴롭힘이 학교에서 더 퍼져나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것도 예전 이야기입니다. 요즘에는 인공지능 안전 체계가 있습니다. 가상현실에서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하면, 그 말을 전달해주기 전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말을 감지해서 욕설이라면 전달하지 않고 교사에게 신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영상 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를 괴롭히기 위해 무섭고 흉측한 영상을 보내려고 하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그것을 감지해서 보내지 않도록 조처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교육받으며 자란 세대라면 그만큼 험한 세상을 모르는 나약한 사람으로 자라날 위험이 있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 욕 한마디 듣지 않고 자라난 어른이라니, 온실 속 화초 아닌가요?”
‘온실 속 화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지원자는 짜릿함을 느꼈다. 요즘 면접관들이 그렇게나 자주 인용한다는 비유법이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대답도 준비돼 있었다.
“옛날에는 학교랍시고 뭔가를 배워서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어린이가 기대를 품고 갔는데, 바로 그 학교라는 곳에서 별별 흉악한 소리를 들으며 구타당하고 고문당해서 평생 정신에 충격받은 채 사는 일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런 피해를 본 학생 수를 확 줄일 수 있다면, 살을 부딪히는 인간적인 느낌이 더하다는 막연한 장점 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가상현실에서 학교 수업을 받더라도 사람 사는 사회는 사람 사는 사회입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잡아내지 못하는 한계 안에서 친구들끼리 싸울 것은 싸우고 갈등을 겪을 것은 겪으면서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일은 언제나 벌어집니다. 가상현실 교육에서 학생들이 대놓고 욕은 못하지만 화나면 최대한 욕의 느낌을 전달하려고도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예전에는 그냥 ‘개자식’이라고 욕할 상황이었다면, 요즘 학생들은 인공지능 안전 체계가 감지하지 못하도록 ‘네 어머니와 네 아버지로부터 네가 물려받은 유전자는 놀랍게도 늑대를 3만3천 년 전에 인류가 가축으로 길들인 형태의 동물과 무척 유사하구나’라고 말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욕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인공지능 안전 시스템을 피하면서 최대한 상대방을 화나게 하기 위해 별별 다양한 수사법을 좋은 운율로 말하기 위해 힘을 기울입니다. 욕하면서 싸우는 모습이 서로 시를 지으며 대결하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지원자는 대답하는 동안 한 면접관이 질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정말로 대답이 끝나자 그 면접관이 질문했다.
곽재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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