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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중요한 사물, 마스크의 모든 것

[코로나 뉴노멀]
3부 - 한겨레21과 과학잡지 에피 컬래버레이션
등록 2020-05-30 07:34 수정 2020-06-13 04:42
5월26일 일본 도쿄 지하철 역사에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AP 연합뉴스

5월26일 일본 도쿄 지하철 역사에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AP 연합뉴스

지난 몇 개월 사이 마스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코로나19 대유행에 대응하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짚어볼 수 있었다. 마스크에 초점을 맞춰 정부 정책과 사회적 담론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새로운 바이러스라는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우선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한국 사회에서 마스크가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되짚어보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해보자.

마스크 역사는 적어도 150년이 넘었다. 지금 마스크와 유사한 형태는 1836년 영국 의사 줄리어스 제프리스(1800~1877)가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제프리스는 자신의 발명품을 호흡기(Respirator)라고 불렀는데,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폐 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호흡을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후 다양한 형태의 마스크가 개발돼 20세기 초 무렵에는 “전염병 대유행시 천으로 만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사가 점차 늘어났다. 예를 들어 1910년 만주에서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 중국 둥베이 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 방역 총의관을 맡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의사 우롄더(1879~1960)는 천마스크 착용을 강력하게 권장했다. 뒤이어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세계 각국에 퍼지자 전염병 감염과 전파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일이 일반화됐다. 20세기 초반, 마스크는 순면 거즈를 여러 겹으로 덧댄 단순한 형태였다. 당시 의사들은 이 정도 마스크로도 비말(침방울)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들어진 전통, 스페인과 일본의 차이

흥미롭게도 스페인 독감 유행이 지나간 뒤 서구 사회에선 마스크를 착용하는 일이 사라진 데 비해, 일본에선 20세기 후반 대규모 감염병이 퍼질 때마다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등 그 명맥이 이어졌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의식’이 공고해진 것은 1990년대 이후 ‘불확실성과 개별화가 강화되면서’부터다. 이는 마스크 착용에 관한 동아시아 사회의 습관과 일부 전통 관념에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일종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역사적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한국인들은 독감이 유행하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 마스크를 쓰는 것에 익숙한 편이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미세먼지가 시급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2009년 ‘황사방지용 및 방역용 마스크의 기준 규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KF(Korea Filter) 규격이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예보가 시작되고, 보건용 마스크를 생산하는 설비가 대대적으로 확충된 2016년 이후에야 마스크 착용이 보편화됐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5~2016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때 마스크를 썼다고 대답한 한국인이 35.3%에 불과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마스크 착용 비율이 81.2%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마스크 착용에 한정해본다면, 한국에서 미세먼지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를 예비하는 일종의 예행연습 구실을 하지 않았을까. 마스크 착용에 이미 익숙한 대다수 한국인은 정부에서 아무런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았을 때부터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5년 동안 (초)미세먼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던 경험에 바탕을 둔 ‘만들어진 전통’이었다. 이 배경 아래 2020년 1월20일 한국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겼다.

인스타그램 #수제마스크 이미지들

인스타그램 #수제마스크 이미지들


예행연습시켜준 미세먼지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질병관리본부(질본)는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마스크를 쓰는 것이 호흡기 질병의 예방 수칙이고, 의료인이 사용하는 KF94 등급 마스크가 바이러스를 “많은 부분 막을 수 있다”고 권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처장이 마스크 생산업체 현장을 방문해 “KF99와 KF94를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월 말이 되자 온라인쇼핑몰에서 KF94 마스크 판매량은 30배 이상 늘었다. 식약처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2월12일 ‘마스크 사용 권고사항’을 발표해 KF80 등급 이상의 보건용 마스크는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감염 의심자를 돌볼 때만 쓰면 된다고 명시했지만, 마스크를 사려는 기나긴 행렬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바이러스 확산을 지켜보는 세계 모든 정부와 기관에서는 공통으로 마스크 착용 기준과 물량 부족을 우려했다. 이들은 일반인이 지역사회에서 높은 등급의 보건용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월12일 한국 정부의 ‘권고사항’에서 중요한 근거로 삼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함께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만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다”는 기본 방침을 고수하고 있었다. 많은 의료계 전문가 역시 마스크 효능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다. 마스크는 방역망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 장비이지, 질병의 확산을 막으려는 대중적 예방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식약처가 의협 대신 질본과 함께 개정해 3월3일 발표한 ‘마스크 사용 권고사항’에서는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마스크의 종류를 KF94, KF80, 정전기 필터가 달린 면마스크로 다양화하고, 각 마스크의 재사용을 위한 이용 수칙을 안내했다. 모든 사람이 매일 새 마스크를 쓰기에는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한 조처였다.


미국 CDC도 번복해 “마스크 써라”

식약처 권고안의 개정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의협은 식약처·질본의 개정 권고안을 겨냥한 별도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을 권장한다는 점에서는 두 권고안의 내용이 일치했다. 하지만 의협은 정부 쪽 권고안과 달리 일회용 마스크의 재사용과 면마스크 사용이 문제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언론에 나온 의사 중 의협의 권고안과 사뭇 다른 어조로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의협과 마찬가지로 일반 면마스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면마스크를 보건용 마스크의 차선책으로 착용해 바이러스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공적 마스크 수급이 안정되고 확진자가 감소하면서 ‘마스크 대란’은 진정세를 보였지만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식약처가 인증한 보건용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면마스크로도 충분히 감염을 막을 수 있는지, 마스크 물량은 확보할 수 있는지, 마스크를 재사용해도 되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마스크를 우선 지급해야 하는지…. 마스크를 둘러싼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정부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권고안을 발표해 “한 사안에 대해 두 목소리를 낸” 위험 소통의 실패 사례로 평가했다.

완벽하지도, 무한히 많지도 않은 마스크를 두고 계속 논란과 마찰이 있었지만 마스크를 쓰는 것이 쓰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만큼은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특히 ‘한국 보건 당국의 마스크 대응과 마스크에 집착하는 시민사회의 모습에 대한 비평’에서 자주 언급됐던 미국 CDC도 무증상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이 불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해, 4월3일 공동체의 면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이렇듯 외국 학계와 기관의 입장이 지역사회에서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것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마스크에 집착했던 한국인의 선택을 확증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하는가? 높은 등급의 보건용 마스크를 쓸 필요가 있는가? 이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식약처와 질본을 비롯한 한국의 정부 기구와 전문가 집단인 의협, 세계 각국의 정부와 감염병 대응 기관들은 이 질문을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를 내놓았다. 그들의 논쟁 속에 한국 시민은 마스크 효능에 대한 나름의 ‘시민인식론’(Civic Epistemology)을 형성했다. 이 과정을 거쳐 2020년 5월 중순 현재 한국인들은 지역사회에서도 마스크를 꼭 써야 하며, KF94나 N95가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판단한다. 마스크는 단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됐다.

3월8일 투명 마스크를 쓴 수화 통역자가 중국 베이징 지방의회 회의에서 통역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3월8일 투명 마스크를 쓴 수화 통역자가 중국 베이징 지방의회 회의에서 통역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시민인식론 더하기 사회시스템

이 결과는 유독 성숙한 한국의 시민의식이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고품질의 마스크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제조업의 능력과 그것을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의 효과적인 작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초)미세먼지 문제를 겪은 뒤 광범위한 마스크 착용에 익숙해졌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그렇지만 마스크 착용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해당 사회의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문화근본주의적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마스크를 경원시해온 서구 문화권에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 결국 마스크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사물이 될 것이다.

김희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최형섭 <에피> 편집위원(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더 자세한 내용은 과학잡지 <에피> 12호(6월1일 발행)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잡지 ‘에피’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epi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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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뉴노멀
3부 한눈에 보는 코로나19

1. 바이러스와 인간, 그 기나긴 역사
2. [콩트] 나는 코로나, 우린 다시 꼭 만날 거예요
3. 코로나 시대의 중요한 사물, 마스크의 모든 것
4. [감염병 역사] 인류는 '질병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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