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다르지만 똑같은, 31명의 여자 이야기>, 엘렌 델포르주 지음, 캉댕 그레방 그림, 권지현 옮김, 밝은미래 펴냄, 2만5천원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된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엄마가 되기도 하고, 어쩌다 엄마가 돼버리기도 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은 엇비슷하지만, 엄마 되는 과정은 저마다 다른 사연이 숨어 있다. 나는 공부를 더 하려고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임신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막 태어난 아이는 내 옆이 아닌 신생아 중환자실에 눕고 말았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사이 11년이 훌쩍 지났다. 지난해 1월1일 아이는 내 곁을 떠났다.
집이 너무 조용했다. 나는 휑뎅그렁한 방에 앉아 커다란 그림책을 펼쳤다. 였다. 책장을 넘기며 그림을 하나씩 들여다봤다. 인물들의 표정이 생생했다. 아이와 함께한 순간을 몰래 포착한 사진 같았다. 색은 강렬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이랄까. 그런데 엄마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엄마? 엄마! 시쳇말로 여자 사람 모습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앞표지를 다시 봤다. 엄마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딸을 감싸안고 있었다. 뒤표지를 보니 ‘수억 명의 여성에게 붙여진 유일한 이름’ 엄마라니.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청바지를 입은 맨발의 엄마는 여행가방을 들고 기타와 아이를 메고 있었다. “난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네가 생겼어.” 엄마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가 엄마 대신 말했다. “엄마는 공부를 포기하고 나를 길렀어.” 엄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너와 함께, 너를 위해서, 네 덕분에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어.” 엄마는 히치하이킹(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는 일)을 하며 “너는 나에게 짐이 아니라 행운의 부적이야”라고 덧붙였다.
계속 책장을 넘겼다. 올리브색 드레스를 입은 우아한 후작 부인이 새끼 염소를 안고 있었다. 새끼 염소의 눈빛은 초롱초롱한데 젖병을 든 엄마의 눈이 슬펐다. “아기를 낳자마자 제게서 아기를 데려가요. (…) 우리는 귀족 부인이니까 한 달에 한 번밖에 아기를 못 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후작 부인은 가장무도회 가면을 집어던지려 했다. “혁명을 일으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인.”
2019년을 마무리하며 올해의 인물로 ‘엄마’가 선정됐다. 닫힌 세상을 향한 엄마들의 외침은 끝이 없었다. 김용균의 엄마, 아이를 잃고 어린이 안전 법을 위해 모인 엄마들, 세월호의 엄마들, 이한열의 엄마, 5·18 때 아이를 잃은 5월의 엄마들, 전태일의 엄마까지. 엄마는 아이를 잃고 결국 투사가 됐다.
그림책이 끝나갈 무렵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 하얀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이제 나는 엄마가 아닌 거야?” 덩그러니 앉아 있는 곰 인형은 주인을 잃었다. “아니, 너는 영원히 엄마일 거야.” 엄마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가 없는 엄마?” “아니, 그 아이의 엄마.”
그림책을 품에 안았다. 다행히 판형이 컸다. 작은 내 품을 꽉 채울 만큼. 문득 아이가 떠오르면 나는 입을 꼭 다물겠지만, 그때마다 31명의 여자, 엄마를 들춰보며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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