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맹렬한 슬픔을 느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이가 자기 덩치만 한 가방을 엉거주춤 메고 초등학교 교문을 들어가는 뒷모습을 봤을 때다. “코찔찔이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다니!” 하는 흥분에 들떠 교문 앞에 도착할 때만 해도 나는 “하늘에 영광, 땅엔 평화로구나” 하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24시간 돌봄노동에 저당 잡혀 살던 때라 아이가 점심도 해결하고 방과 후 프로그램까지 듣고 오후 3시에 귀가한다니 나로선 ‘쇼생크 탈출’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목이 메는 슬픔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아이가 이렇게 품을 한 발자국 떠나가는구나. 지금은 학교로 떠나고 더 자라선 직장으로 떠나고 그 후엔 자기만의 가정을 만들어서 떠나고 그리고 먼 훗날에 죽음으로 완전히 이별하게 되겠구나.’ 생각지도 못한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그날의 해방감은 짧고 상실감은 길었다.
읽어주고 함께 읽고 따로 읽던 책아이를 낳고 키우고 떠나보내고 결국 부모도 떠나고 언젠가는 아이 역시 은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떠난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과정을 한 편의 시처럼 그려낸 그림책이 이다. 엄마는 갓 태어난 아이의 열 손가락에 경탄해 입을 맞춘다. 아장아장 걸으며 첫 외출길에 나선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지만, 몇 년이 지난 뒤 아이는 더는 엄마 손을 잡지 않고 수영장에 뛰어들고 숲속 탐험에도 나선다. 상상치 못한 발견에 두 눈이 반짝이기도 하지만 깊은 좌절에 온몸을 웅크리기도 하는 시절을 지나 아이는 부모에게 손을 흔들며 자기 길을 떠난다. 떠나는 날 멀리서 돌아본 집. 그토록 크게 느껴지던 집은 이상하게도 작게 느껴진다. 아이는 이제 자기 등에 온몸을 맡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먼 훗날 은발이 된 아이는 흔들의자에 몸을 맡기고 세상을 떠난 부모와 자기 품을 떠난 아이들을 추억한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내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친구가 선물한 이 책은 아이가 중학교 입학을 앞둔 지금까지도 아이 책장에 그대로 있다. 남자아이의 책장이 그림책에서 글자책으로 바뀌고 또 무기 백과사전과 역사 시리즈물로 들고 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13년간 제자리를 지킨 책이다. 젖먹이 때부터 읽어주고 함께 읽고 또는 따로 읽었던 이 책에 아이는 “어린 시절 냄새가 난다”며 코를 킁킁대고 냄새를 맡고 인형처럼 껴안는다.
이별의 순간이 기쁨이 되는 방법아기 새는 언젠가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어떤 어미 새도 그때 눈물을 흘리거나 가지 말라고, 조금 더 있다 가라고 붙잡지 않는다. 새끼를 낳고 품고 키워서 떠나보내는 거대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할 뿐이다. 거스를 수 없는 그 이별의 순간이,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상실이 아닌 충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책은 묻고 고민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캐나다 출신 피터 레이놀즈의 이 책은 35쪽에 불과한, 글자도 거의 없는 그림책이지만, 한 권의 그림책이 아름다운 시가 될 수도 있고, 가슴 먹먹한 인생 드라마가 될 수도 있고, 위대한 철학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명작이다.
김아리 객원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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