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헌책방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손님이 이런 말을 했다. “어려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어요!” 그때 나는 우스개로 이렇게 받아쳤다. “영혼까지는 필요 없지만 오늘 제가 추천하는 책을 구입해주신다면 어려운 책을 즐겁게 읽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과연 그 손님은 무슨 책이든 사겠노라고 했다. 그때 내가 꺼내 보여준 책이 다. 이 작품은 내게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을 주었던 책이다. 물론 읽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어려운 책 즐겁게 읽는 방법는 1947년 발표된 토마스 만 최후의 명작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은 예술가가 정치적 입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중편 을 보면 작가의 그런 철학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너무나도 유명한 에선 후반부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견해는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나치가 정권을 잡고 조국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토마스 만의 생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대중 강연과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전쟁을 비판했고, 자신의 철학을 오롯이 담아낼 대작을 썼다. 이것이 를 쓰게 된 배경이다.
그때 내가 손님에게 알려줬던 어려운 책 즐겁게 읽는 방법이란, 대작이라고 알려진 책일수록 줄거리나 주제는 의외로 단순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도 그렇다. 재능을 인정받는 음악가 레버퀸이 더욱 높은 수준의 곡을 만들어내기 위해 악마와 영혼을 담보로 거래한다는 이야기가 전체 내용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는 과연 레버퀸이 어떻게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지게 됐는지 궁금할 만도 한데, 제목에서 이미 그 해답을 제시해버린 셈이다. 그러니 집중해야 할 것은 레버퀸이 어떻게 악마와 거래했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는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작가 토마스 만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최고의 예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그의 일대기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글을 쓰는 레버퀸의 친구 차이트블룸이 처한 현실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차이트블룸은 레버퀸에게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면서 한편으로는 조국 독일의 역사와 정치적 국면, 그리고 지도자의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지도자는 다름 아닌 ‘총통’, 즉 나치 히틀러인 것이다.
토마스 만 평전부터 아도르노 음악 에세이까지나는 이 책을 한창 직장생활을 할 때 읽었다. 방대한 분량은 둘째 치고 그 안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독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음악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담스러워서 몇 번이나 읽기를 포기했다. 결국 이 책을 읽기 위해 토마스 만 평전은 물론 독일 근현대사 책도 보았고,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쓴 음악 에세이도 읽어야 했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특히 이 책 읽은 것을 계기로 더욱 폭넓게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며 듣게 된 것은 너무도 큰 선물이다. 토마스 만의 이 어려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쇤베르크의 음악을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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