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은 마음을 사로잡아 꼼짝 못하게 하고, 낼 수 있는 힘 이상을 무리해 끌어낸다. 나는 종종 디테일 때문에 사랑 혹은 사람, 때론 양쪽 모두에 빠졌다. 초겨울의 어떤 날, 무심코 마주친 상대의 속눈썹에 마음이 걸려 넘어지던 날 절감했다. 어떤 책에 매료되는 사건의 문법도 사랑의 인력과 유사하다. ‘최고의 논픽션’이라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책, 에 빠진 것도 디테일 때문이었다. 치밀한 만듦새에 매료됐기에 무려 680쪽에 이르는 논픽션을 한달음에 읽어 내려가는 ‘무리’를 기꺼이 해낼 수 있었다.
세심한 주석은 책의 백미세기말 가장 충격적인 테러로 꼽히는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이 책은 다양한 결로 읽어 내려간다. 사건을 중심으로 던져진 질문들은 새롭고 유효하다. 언론이 행했던 실수, 종교단체들의 광기, 살인자들의 동기, 유가족 간 충돌…. 물론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그때 급박했던 상황이 담긴 통화 내역이나 총성이 포함된 오디오파일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꺼운 논픽션에는 그 이상의 긴장감이 있다. 경찰이 증거로 내놓은 2만5천 쪽 넘는 문서와 영상, 음성 자료를 수없이 검토한 다음 저술된 이 전서(全書)를 완독하고 나면 경탄이 터진다. 큰 비극은 단 하나의 교훈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데이브 컬런은 10년간의 저술로 증명해낸다. 저널리스트의 일이 얼마나 대단하며, 얼마나 훌륭해야 짊어질 수 있는 업인가 하는 깨달음은 덤이다.
엔 살아남은 자들이 내뿜는 생에 대한 의지가 촘촘히 묻어 있다. 사건이 있기 일주일 전 담담한 얼굴로 진심이지만 약간은 관습적인 사랑을 학생들 앞에서 고백하는 프랭크 교장의 얼굴(1999년 4월16일)에서 출발한 책은 600여 쪽을 달려 사건을 문자 그대로 ‘몸으로 통과한’ 생존자가 콜럼바인 추모비 제막식(2007년 9월)에서 발언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다리 마비를 겪고 머리 부상으로 인지능력을 잃었던 패트릭 아일랜드는 “이 사건은 나를 바꾸지 못했다”는, 겪어낸 자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을 담담히 해낸다.
80쪽에 이르는 부록, 세심한 주석은 책의 백미다. 정황이나 상상에 기대어 썼을 것으로 짐작되는 문장도 사실관계 위에 있다. 각주는 치밀하다. 이를테면 “두 아이는 평소처럼 일찍 일어났다”는 문장에서, ‘평소처럼’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빼놓지 않고 설명하는 식이다. 부모와 이웃의 증언, 시간이 찍힌 영수증, 학생식당의 감시카메라를 살핀 끝에 평소에도 그들이 일찍 일어나 활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주석으로 달렸다.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기에 한 쪽도 대충 넘길 수가 없다.
사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애쓴해서, 은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결론이 나와 있는 사건임에도 한 챕터(장)를 읽으면 그다음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비극을 놓고 촘촘하게 사실을 쌓고, 그 위에 확실한 문장을 써냈다. 사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애썼기에 명료한 문장들은 아름답다. 훌륭한 논픽션은 많지만 문장마저 아름다운 작품은 흔치 않다. 은 그걸 해낸다. 일독, 아니 완독을 망설이지 않고 권할 만하다. 어머님, 이 작품을 책장에 들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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