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소개할 때는 늘 조심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일만큼이나 사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바로 독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꼭 책을 소개하게 된다.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저 애인이나 자식을 자랑하듯 사랑에 빠진 팔불출의 이야기를 너그럽게 들어주기 바란다.
어릴 때부터 대하소설을 좋아했다. 역사의 굽이굽이 곡절 속에서 다양한 사건과 인물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것이 영웅의 것이든 백성의 것이든 내게 모두 특별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땅에 분명히 존재했고 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민낯의 현실과 상처, 혹은 웃음과 희망 속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확신을 받곤 한다.
벽초 홍명희 작가의 소설 은 그런 확신을 더욱 현실로 믿게 하는 힘이 있다. 거창한 역사의 이야기나 의적의 영웅담이나 화려한 문학적 수사 때문이 아니라, 매우 솔직하고 적나라한 해학과 묘사로서 그때 그곳에 분명 그들이 살아 있었음을 생생히 전달한다.
인물들의 생사에 오금이 저리다처음 소설 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은, 1부 ‘봉단 편’에서 다루는 홍문관 교리 이장곤과 고리백정의 딸 봉단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 덕분이다. 연산군 시대의 기묘사화 당시 이교리는 유배지에서 탈출한 후 전국을 떠돌다 봉단을 만난다. 신분을 밝히지 못한 이교리는 봉단을 따라 고리백정의 사위가 되어 난리는 피했으나, 온 마을의 괄시를 받고 매질을 당하는 등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이교리가 마침내 중종반정이 이루어져 기세등등하게 처갓집은 물론 백정을 무시하던 온 고을을 호령하는 장면은, 마치 의 이도령이 암행어사 출두를 하듯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조정에 다시 등용된 그와 함께 고리백정의 딸 봉단 또한 ‘숙부인’에 봉해지는데, 파격적인 신분 상승을 시기하던 이들이 봉단의 품격과 권위에 순종하는 모습 또한 마음을 통쾌하게 한다.
작가의 사정으로 소설 은 총 열 권의 미완으로 남았는데, 그 열 권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감정이나 서사를 배배 꼬는 법 없이, 이와 같은 힘으로 쭉쭉 달려나간다. 혼자서 책에 코를 박고 앉아 있어도, 그야말로 소리꾼이 마주 앉아 완창을 들려주듯이 책 속의 글이 소리로 들리고 인물들의 생사에 오금이 저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든든한 서사와 다채로운 인물들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다양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인공인 임꺽정은 그저 선하거나 악하지만 않고, 때론 못되고 때론 정의로운 인물로서 소설이 아니라 현실 속 인물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 또한 각자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기적이고도 순박한 인간의 모순적 양면을 잘 드러내 마치 우리의 이야기인 양 뜨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첫 권을 읽기만 한다면짧은 소설이 인기가 많다. 긴 소설을 읽을 시간도 부족하다. 그래도 소설 의 첫 권을 읽기만 한다면, 반드시 전 권을 읽게 될 것이다. 한국 소설보다 외국 소설이 재밌다는 이가 많다. 서사의 힘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소설 을 생각한다. 한국 소설도 세계에서 당당히 평가받을 가능성과 저력이 있으며, 이미 그것을 20세기 초에 입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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