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구에서 ‘성공’한 지금까지의 과정을 그린 저작 가 등장했을 때 그는 이미 역사학과 과학, 인류학 등 여러 학문에 걸쳐 세상을 보고 있었다. 과학계가 이 책에 뜨겁게 반응한 이유도 역사학자로서 과학기술이 가진 의미를 짚은 그의 통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호모’ 뒤에 라틴어로 신을 의미하는 ‘데우스’를 붙인 속편을 쓸 정도의 야심을 기대한 사람은 그의 열혈 독자 중에도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말 그대로 과학기술을 통해 신이 되려는, 그리고 그렇게 되어갈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부제로도 붙어 있듯이 이런 시도는 기존 사학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미래의 역사’다. 그리고 그렇게 펼쳐질 미래는 우리가 지금껏 과학기술로 기대한 장밋빛 낙원은 물론 영화 등에서 묘사된 디스토피아와도 다르다.
‘불멸·행복·신성’ 그 후에 찾아오는 것역사학자로서 그는 중세의 기독교적 도그마를 극복하고 근대와 현대의 자유주의 시스템을 끌어낸 인본주의에 주목한다. 특히 20세기 전반에 걸쳐 사회주의와 전체주의 등과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인본주의적 자유주의는 과학기술 발달에 힘입어 이 책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열쇳말인 ‘불멸·행복·신성’을 극한까지 추구하도록 인류를 부추긴다. 자신의 존재와 의미에서 신을 떼어낸 인간은 결과적으로 이 세 목표를 이루고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은 신으로서 인류의 영원한 지배가 아니라 이를 위해 만든 시스템인 인공지능과 만물인터넷에 의한 인류의 종말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세계관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 새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 등의 개념이 나왔고 그렇게 기계와 섞인 인간이나 아예 기계화된 존재가 현재의 인류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학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문과’ 출신으로 과학을 이야기하는 다소 특이한 자리에 있는 내게 가 가진 의미는, 인문학자인 저자가 근대 이후 인류에게 가히 절대적 가치였던 인본주의의 결과가 필연적으로 그러한 미래를 그려간다고 지적하는 점이다. 즉, ‘이과’적 관점에서 예견이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발전이라는 테크놀로지에 방점을 둔다면 하라리는 지난 수백년간 인간이 만들어온 문명과 그 바탕의 세계관, 그에 따른 역사 흐름에 더 큰 방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판단이나 노동을 대신하게 하고 유전자공학 등 다양한 기술로 무병장수와 즐거움, 여유를 얻어내려는 인류의 바람이 그저 욕망 충족이나 편안함의 동경이 아니라 불멸·행복·신성을 얻어내려는 인본주의적 숙원에 뿌리박고 있다는 더 근원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그 숙원이 인류를 아예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결론의 역설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함께 풀어갈 숙제를 던져준다이는 어떤 의미에선 우리에게 더욱 곤란한 숙제를 던져준 셈이다. 지고의 이상으로 철두철미하게 믿고 있던 인본주의의 결과가 그런 것이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인으로서 불멸·행복·신성을 내려놓을 사람은 있겠지만 종족으로서 인류가 그것을 포기한다면, 이제 신도 내세도 없는 세상에서 과학기술과 문명 발전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론 하라리는 시원한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그저, 그럴 능력이나 권리를 가진 개인은 아무도 없지만 한편으로 우리 모두 함께 이 질문을 풀어갈 의무가 있다는 사실만을 느끼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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