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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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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만 보지 말고 마리아도 보라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 다룬 <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
등록 2019-12-20 11:28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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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에게 같은 학문을 가르치고 동등한 대접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1897년 12월 완공된 개신교 최초의 서양식 교회 정동교회에서 ‘양성평등’을 주제로 청년토론회가 열렸다. 남성 연사와 여성 연사의 치열한 찬반토론이 이뤄졌을까? 남성들끼리 찬성과 반대로 나눠 토론했고, 당사자인 여성들은 가림막 뒤에서 듣는 것만 허용됐다. 하나님이 아담을 먼저 만들었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으며 하와가 먼저 죄를 지었다며 여성 교육과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주장이 버젓이 지지를 얻었다. 윤치호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여성 교육 자체가 맹랑한 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윤치호가 누구인가. 독립협회 원년 멤버로 조선 근대화에 앞장섰던 개화파 지식인이 아닌가.

근대화를 부르짖으면서도 여성에 대한 전근대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한 지식인 남성의 모순, 이중성, 표리부동에 일침을 놓은 건 가림막 뒤 여성들이었다. “마리아가 아니면 예수께서 어떻게 세상에 나오고 인간의 죄를 대속했겠는가! 하와만 보지 말고 마리아도 보라!” 교회는 근대 여성들의 인큐베이터였다.

(효형출판)는 20세기 초반 활동했던 ‘근대적 여성’과 그들이 탄생하고 성숙하고 자립한 ‘근대적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한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세운 차미리사의 상동교회,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의 보구여관, 최초의 미용사 임형선의 화신백화점,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의 조선일보… 교회와 병원, 백화점과 언론사 등 근대적 공간에 아로새겨진 여성들의 분투를 보다보면, 민족 차별에 가려진 내밀한 성차별의 역사가 보인다. 조선 여성을 근대로 이끈 공간으로 병원도 빼놓을 수 없다. 스크랜턴 여사가 이화학당을 만들었을 때, 의사인 아들 윌리엄은 병원을 세웠다. 서양인 남자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에 여성 환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결국 이화학당에 여성 전용 병원 보구여관이 생겼다. 바로 여기서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가 나왔다.

초기 병원은 간호사 양성 교육 기관이기도 했다. 보구여관은 1903년, 세브란스병원은 1906년부터 간호사 교육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간호사라는 ‘프로페셔널’이 출현했다. 1907년 정미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때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이다 다친 이들을 여성 간호사들은 남자가 아니라 환자로 치료했다. 이후 여성 간호사가 남성 환자를 기피하는 일이 사라졌다. “조선의 여성 간호부가 남성 환자를 돌보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자조하던 의사들을 무색하게 한 사건이었다. 세브란스 간호사 양성소 학생이던 정종명은 한발 더 나아가 간호사 처우 개선과 민족 차별 철폐를 외치며 동맹 휴학을 일으켰다.

100여 년 전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는 자주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백화점이 고학력 여성들을 뽑아서 엘리베이터걸·마네킹걸·데파트걸이라는 업무를 주었다는데, 그러고 보면 엘리베이터걸이라는 직군은 일종의 ‘일제 잔재’였던 것이다. ‘조혼 풍습’ 때문에 보구여관이나 세브란스 간호사 양성소에서 전문 인력으로 크던 여성들이 갑자기 부모에게 끌려가 사라지는 일이 잦았다는 대목에선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이 여성에게 갖는 사회적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싶다. 그리하여 21세기 한국 여성들은 ‘비혼’을 창안한 것일지도.

진명선 기자 팀장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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