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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지 말아야 할 곳 오르지 말아야 할 말

등록 2019-07-23 03:17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국어사전을 많이 보는 편이다. 오랫동안 국어교사를 했고, 시와 소설을 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다. 그러다보니 국어사전이 지닌 문제점이 자주 눈에 띄어서 국어사전을 비판하는 책을 두 권이나 내기도 했다.

표제어로 올라와 있는 ‘단식투쟁’

국어사전에는 거의 고어가 되다시피 한 말도 있고, 그 분야 전문가나 알 수 있을 만큼 어려운 용어도 있다. 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지만 아직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한 말도 있다. 삼겹살을 먹을 때 곁들이는 ‘파채’ 혹은 ‘파절이’라는 말이 아직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했고, ‘앞접시’라는 말도 찾을 수 없다. 국립국어원의 주도로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서 만드는 에는 올라 있으므로 언젠가는 정식 국어사전에도 오르게 될 거라고 믿는다.

국어사전에 ‘단식투쟁’이라는 말이 표제어로 올라 있다. 표제어에 올랐다는 건 사용 빈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일정하게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말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만큼 지금까지 단식투쟁을 해온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을 방증하기도 한다. 단식투쟁의 역사는 저 멀리 구한말 최익현 선생까지 올라갈 정도로 유구하고, 최근에는 정치인들도 단식투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올 초에는 어느 정당이 국회 안에서 5시간30분짜리 릴레이 단식투쟁을 하는 바람에 뭇사람들의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자기 주장을 알리려는 수단으로 삼는 단식투쟁은 곡기를 끊는 방식으로 죽음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만큼 비장한 각오로 나서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의 단식은 30일 혹은 40일을 넘기는 일이 드물지 않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 김영오씨는 단식 46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단식투쟁이 일반화하다보니 그보다 강도 높은 투쟁을 선택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흔하게 되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법! 그래서 절박한 처지에 몰린 사람들은 고공으로 올라간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고, 언론사 기자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크레인 위로, 공장 굴뚝 위로, 도심 광고탑 위로 올라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서울 강남 한복판의 교통 관제탑 위에 삼성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했다고 주장하는 노동자가 수십 일째 올라가 있다. 고공농성 주인공인 김용희씨는 단식투쟁도 병행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김용희씨가 지상으로 내려오길

고공농성의 원조는 1931년 평양의 고무공장 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할 때 을밀대 지붕에 올라간 여성 노동자 강주룡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 신문은 강주룡에게 체공녀(滯空女)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 ‘체공녀’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강주룡 이후에 제2, 제3의 여성 노동자가 계속 고공으로 올라갔다면 국어사전에 체공녀라는 낱말이 실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고공농성’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오르는 날이 올까봐 두렵다.

고공농성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오르지 않게 하려면 고공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없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고공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드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 두렵다. 이 글이 인쇄되어 나갈 때는 김용희씨가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와 있기를 바란다.

박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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