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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년이 되면 우린

10년 전 태교음악으로 ‘브로콜리 너마저’를 들은 아이와 같이 본 앨범 발매 기념 공연
등록 2019-06-04 15:45 수정 2020-05-03 04:29
브로콜리 너마저 3집 《속물들》 표지. 스튜디오 브로콜리 제공

브로콜리 너마저 3집 《속물들》 표지. 스튜디오 브로콜리 제공

이 글은 꼭 10년 전 에 쓴 칼럼의 후속편이다. 당시에도 ‘서정민의 뮤직박스’ 꼭지가 있었는데, 3주에 한 번꼴인 지금과 달리 매주 나가는 대신 분량이 4분의 1도 채 안 되는 미니 칼럼이었다. 2009년 새해를 열어젖힌 제743호에 쓴 글의 제목은 이랬다. ‘10년 뒤엔 그럴 줄 알았지’. 분량을 날로 먹으려 든다고 욕먹을 걸 각오하면서도 그 글을 그대로 옮기겠다. 믿거나 말거나, 이건 오로지 독자들이 인터넷으로 과거 글을 뒤져보는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함이다.

10년 뒤엔 그럴 줄 알았지
1999년 말은 두려움과 설렘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밀레니엄 버그’라는 세기말적 묵시록에 대한 두려움과 리셋 버튼을 누르듯 모든 게 새로 시작될 것만 같은 설렘. 그 시절 난 다른 종류의 두려움과 설렘에 몸을 떨었다. 신문사 최종 시험 낙방 뒤 절망에 허덕대고 있을 즈음 낭보가 날아왔다. 보결로 합격됐으니 새해부터 출근하라고.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짜고짜 새벽 4시까지 경찰서로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공포의 수습훈련이구나, 싶었다. 두려움을 떨쳐낸 건 엉뚱한 상상 덕이었다. 10년 뒤의 난 뭘 하고 있을까? 노련한 민완기자가 돼 있겠지?
“그때는 그럴 줄 알았지 2009년이 되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너에게 말을 할 수 있을 거라/ 차가운 겨울의 교실에 말이 없던 우리/ 아무 말 할 수 없을 만큼 두근대던 마음/ 우리가 모든 게 이뤄질 거라 믿었던 그날은/ 어느새 손에 닿을 만큼이나 다가왔는데/ 그렇게 바랐던 그때 그 마음을 너는 기억할까/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2009년의 시간들”
새해가 밝은 요즘 ‘브로콜리 너마저’의 이란 노래를 즐겨 듣는다. 모든 게 이뤄질 것만 같았던 2009년이 왔건만, 난 노련한 민완기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행복하다. 브로콜리 너마저 1집 《보편적인 노래》의 예쁜 노래들을 들으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그 어떤 민완기자도 누리기 힘든 호사니까.

당시 난 브로콜리 너마저 1집에 푹 빠져 있었다. 그건 임신한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산부인과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카스테레오에선 브로콜리 너마저 시디가 돌아갔고, 아내는 솟아오른 배를 두드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해 3월 딸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카시트에 누이고 산부인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어김없이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가 흘렀다. 태교음악으로 익숙한 선율 덕이었을까. 눈감고 자는 아이 얼굴이 왠지 평안해 보였다. 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10년 뒤인 2019년이 오면 이 아이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2019년이 됐다. 팔뚝보다 작던 신생아는 이제 키 140㎝가 훌쩍 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이른 사춘기가 왔는지 요즘은 엄마 아빠보다 친구랑 어울리는 걸 더 좋아하고, 집에 있을 때도 헤드폰을 끼고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 지내곤 한다. 딸아이는 걸그룹 노래를 좋아한다. 특히 트와이스 노래를 줄줄 꿴다. 언젠가 노래방에 같이 갔을 땐 트와이스 단독 콘서트를 보는 줄 알았다. 초딩이 랩까지 줄줄 읊는 걸 보며 트와이스 대세론을 절감했다.

얼마 전 브로콜리 너마저가 3집 《속물들》을 발매했다. 2집 《졸업》(2010) 이후 무려 9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반가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새 앨범 발매 기념 공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여느 때처럼 혼자 가려다 문득 딸아이와 함께 가고 싶어졌다. 10년 전 산부인과에서 집으로 오는 차에서 들었던 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태교음악 들으며 잠든 아이

“혜원아, 아빠랑 같이 공연 갈래?” “무슨 공연?” “브로콜리 너마저.”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너 배속에 있을 때 많이 듣던 음악이거든. 아, 네가 즐겨 보는 방송 에 나오는 아저씨도 나와.” “그래?” “공연 같이 가면 전에 갖고 싶다고 한 그 장난감 사줄게.” “좋아.” 거래가 성사됐다.

5월19일, 딸과 함께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로 가는 차 안에서 브로콜리 너마저 3집을 틀었다. “그래 우리는 속물들/ 어쩔 수 없는 겁쟁이들/ 언제나 도망치고 있지만/ 꽤 비싼 연극은 언제나 빈 자리가 없고/ 어쩔 수 없는 일도 너무 많다네” 타이틀곡 을 들려주며 물었다. “노래 어때?” “좋아.” “진짜 좋아?” “응.” 그냥 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무의식 저 깊은 곳에 잠재돼 있던 태교음악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연장 근처 이탈리아 식당에서 리소토를 먹고, 3집 앨범 표지를 커다랗게 키운 포토월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공연 초반 을 연주하자 딸아이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아까 들은 노래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의 집중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1시간이 넘어가자 “언제 끝나?” 하고 계속 묻더니 어느 순간 눈을 스르르 감고 잠들어버렸다. 어깨에 기대 잠든 아이가 깰까봐 나는 박수도 치지 못했다. 아이는 앙코르를 할 때에야 깼다.

공연장을 나왔다. 공연장 앞에선 3집 앨범 표지 사진을 찍으려고 만든 동전 ‘브로코인’(브로콜리 너마저+코인)을 팔고 있었다. “아빠, 저거 사줘.” 1만원을 내니 브로코인 하나와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줬다. ‘9900원짜리 동전, 으음….’ 한정판이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혜원아, 비싼 동전이니 잃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 무대 뒤 대기실로 가서 밴드 멤버들과 오랜만에 인사했다. 딸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배 속 아기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태교음악의 주인공과 사진 찍는 날이 오다니. 덤덤한 아이 대신 내가 더 감격했다.

‘2019년의 우리들’이 봉인된 브로코인

내색은 안 했지만 딸아이도 꽤나 좋았던 모양이다. 다음날 미술학원 선생님께 브로콜리 너마저 멤버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며 자랑했다고 한다. 브로코인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10년이 또 흘러 2029년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나는 환갑을 바라볼 테고, 딸은 성년이 되어 있겠지? 브로콜리 너마저가 그때도 노래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딸과 공연장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브로코인의 값어치가 팍팍 올랐으면 좋겠다. 속물 같다고? 사실 브로코인의 가치는 이미 따질 수 없을 만큼 올랐다. 거기엔 억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2019년의 우리들’이 봉인돼 있기 때문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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