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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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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도 존엄한 사람들

서산개척단 정영철, 루이스 세풀베다, 가네코 후미코의 공통점
등록 2019-01-19 17:20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경이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 바짝 마른 밭 위로 칼바람이 불 때였다. “여기서 서울시장 주례로 결혼해본 사람 있어요? 내가 했잖아.” 스무 살에 이곳 서산개척단으로 끌려온 정영철(77)씨가 우스개를 했다. 눈가 주름 고랑이 파였다. 우리는 그와 함께 웃고 말았다.

비명이 묻힌 곳에서 우린 다 같이 웃어버렸다. 전쟁고아인 그가 끌려오자마자 “인간 재생창”이라 쓰인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배고파 뱀·쥐를 잡아먹고, 친구가 맞아죽는 걸 보고, 그렇게 일궜으나 결국 빼앗겨버린 땅에서였다. 그곳에서 당한 ‘강제결혼’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지옥의 유머

1964년 정권 홍보용으로 까지 탄 서산개척단 350쌍 합동결혼식이 끝나고, 난생처음 보는 남자랑 살게 된 여자는 내내 울었다. 여자를 탈출시키고, 그는 이곳에 남았다. 그때 기억 때문에 그는 여전히 우는데, 지금 우리를 웃기려고 한다. 그 유머는 어디서 나오나.

어떤 정신은, 사람을 삼켜버리고도 남을 기억에서도 자신을 기어코 건져올린다. 그 기억을 몇 발짝 물러나 바라본다. 유머는 자기와 ‘객관적’ 거리 두기에서 나온다. 그 ‘거리’가 사람을 진짜 어른으로 만든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의 를 보면, 그곳에도 유머가 있다. 멀건 국물에 건더기는 냄비 바닥에 깔려 있다. 다들 국자로 냄비 바닥을 긁어 떠주길 소망한다. 목숨이 걸린 문제다. 바짝 마른 한 수용인이 말했다. “이러다 나중에 나가면 부인한테도 바닥까지 긁어달라고 하겠는걸.” 빅터 프랭클은 유머를 지킨 사람들은 더 오래 살아남았다고 썼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자전적 소설 는 웃기다. 그 첫 장이 작가가 경험한 “칠레에서 가장 비참하다는 곳” “가학적인 인간들의 국제 회의장”인 테무코 교도소를 그리는데도 그렇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정권에 맞선 사회주의자 세풀베다는 2년6개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하루는 45구경 권총, 탄창, 지휘자용 양날 칼, 수류탄 2발 등을 제복에 달아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이는 군인이 그를 부른다. 자기 시를 봐달라고 한다. 세풀베다는 고민에 빠진다. 순 표절인데 그대로 말했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군인 앞에 다시 선 날, 그는 “글씨 하난 정말 예쁘더군. 하지만 그 예쁜 글이 당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겠지요?”라고 말해버린다. 발톱이 뽑히고 가로세로 150㎝ 작은 방에 갇혀 3주를 보내며, 그는 이렇게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고 썼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문학 비평만큼은 절대 하지 않기로.” 그 문장을 읽었을 때처럼, 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몰라, 칼바람 부는 모월리 밭에서 씽끗 웃는 정영철씨가 나는 경이로웠다.

김정수(70)씨는 서산개척단원 중에서 젊은 축에 든다. 1963년 9월28일, 15살에 서울 아세아극장 앞에서 구두닦이를 하다 끌려왔다. 그는 그 나이에 “22명이 맞아죽는 걸 봤다”고 말했다. 키가 작고 말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밥을 안 줬다. 그곳에서 그는 기록을 남겼다. 뒷간에서 쓰라고 하루에 네 장씩 준 종이를 밥풀로 붙였다. 이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들통나면 또 잡혀갈지 모른다고 가족이 걱정해 태웠다. “못 배운 게 한”인 그는 대학노트를 사 이후 삶을 또 기록했다. 42권이다.

“참 기가 막힌 삶인데 거기서 살아 나온 거 보면 나도 참 대단한 놈이에요.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두려운 게 없어요. 어떤 일도 할 자신 있어요. 일단 나를 3일만 써보라고 해요. (서산개척단을) 창피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자식들도 다 여기 데려왔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남았다고. 지옥에서도 배움이 있었다고.” 명절이 되면 그는 홍삼 진액이며 막걸리며 사들고 모월리에 온다. 남아 있는 서산개척단 11명은 그에게 “나를 감싸줬던 사람들”이고 여전히 “마음 아픈 형님, 누님들”이다.

학대받은 운명에 감사한다

“내 가슴에 숨 쉬는 생명력은 그러한 것들로 위축될 만큼 연약하지 않았다. 생명의 의욕!” ‘박열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불필요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 수기 에 “불행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썼다. 아버지는 천하의 난봉꾼, 이모와 바람나 집을 나간다. 명문가 출신이라 거들먹거리며 제 자식은 호적에 올려주지도 않는다. 홀로 설 수 없었던 어머니는 어린 가네코를 유곽에 팔아넘기려고도 했다. 무적자인 탓에 정식 학교에도 다니지 못한다. 조선에 살던 할머니가 양딸이랍시고 데려가는데 노비나 다름없다. 젓가락만 부러져도 굶기고 때린다. 조선인 이웃이 불쌍하다며 밥을 주려 해도 무서워 받아먹을 수가 없다. ‘아랫것’들과 어울려 가문 이름을 더럽힌다며 할머니가 때리는 탓이다. 책을 보면, 친구와 말 섞으면, 머리빗이 부러지면, 맞았다. 학대를 견디지 못해 치마에 돌을 싸고 물에 빠져 죽으려 하다 아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에는 아직 사랑해야 할 것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다.”

7년 ‘노비’ 생활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와서도 배가 고프다. 비누 행상, 식모, 신문팔이를 해도 공부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을 수가 없다. 세상은 왜 그에게 이토록 모질까? 그런데 그는 자기 고통을 바탕 삼아 길거리 개에게도 공감하며, 어떤 권위나 권력에서도 자유로운 그 자신으로 끝까지 살다 23살에 감옥에서 숨졌다. “지금 나는 모든 과거에 감사한다.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학대받은 내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참할수록 존엄해지는 경이로움

무엇을 경험하건 생명력으로 바꿔버리는 이들을 보면,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에서 말한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을, 그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을, 그런 내면을 소유하고 있는 자의 힘. 비참해질수록 더 눈부셔지는 역설적인 그 힘”을 느낀다. 내가 입기는 거추장스럽고 버리기는 아까운 헌 옷 취급하는 삶을, 끝까지 자기 것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고, 그에 알맞은 낱말을 찾을 수 없다. 경이로울 뿐.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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