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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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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

등록 2018-12-22 14:42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압착기와 컨베이어벨트 사이에 목과 가슴이 끼었어. 아아, 소리를 질렀어. 아아, 온 힘을 다해 내질렀어. 그런데 소리가 울리지가 않아. 누구도 없어. 너무 아픈데 너무 조용해. 검붉은 피가, 뚝, 뚝, 파란 작업복, 파란 기계, 초록색 바닥으로 흘러내려. 비릿한 냄새가 나.

*

경호야, 아니? 네가 3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건 네 아버지 덕분이었어. 어느 일요일 아버지가 날 찾아오신 적이 있었어. 5층 교무실에 들러 다음 날 있을 선도위원회 공문을 마무리하고 내려오는 길이었어. 웬 중년의 남자분이 느릿느릿 계단을 오르고 있었어. 머리카락 절반은 하얗고 다리를 절뚝거렸던 것 같아. 낡은 쥐색 셔츠에 약간 구겨진 면바지를 입고 계셨지. 내 앞에 이르자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어. 안녕하세요, 라는 형식적인 인사말도 없이 대뜸 물으셨지.

“혹시 원예과 2학년 3반 담임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일요일에 텅 빈 학교를 무작정 찾는 마음을 헤아릴 생각은 못했어. 간절한 마음은 모르고, 일요일에 학교를 찾아와 담임을 찾는 무모함에 놀라기만 했어.

“제가 원예과 2학년 3반 담임입니다만?”

그분이 찾는 대상이 나여서 이런 우연도 있나 싶어 놀랍기도 했지만 다행이었어. 특성화고에서 일요일에 학교 나오는 사람들은 기능반 선생님과 행정실 일직을 제외하곤 거의 없고, 나 역시 일요일에 학교 가는 일은 좀체 없었으니까.

“아, 선생님이십니까? 저는 경호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아, 경호 아버님이시군요.”

언젠가 네가 병원에 있다고 했던 아버지가 거기 서 계셨어. 어찌된 영문인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싶었어.

“병원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어쩐 일로?”

“네, 잠깐 나왔습니다.”

머뭇거리며 말하는 나와 달리 아버지는 애써 또박또박 말씀하셨지. 뭔가 각오를 한 사람처럼 망설임이 없는 말투였어.

보라색 국화 기억나? 가을날 실습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어. 우리 반 아이들이 어떤 실습을 하는지 궁금했고, 원예과 선생님과는 친해서 수업 중에 들어가도 오히려 반기는 사이였지. 비닐하우스에 참 여러 종류의 국화들이 있었어. ‘노을’이니 ‘다홍빛 정염’이니 이름만큼 신기하고 예쁜 국화가 많아서 한참을 구경했지.

“리비히 최소량의 법칙이란 식물이 자라는 건 가장 적은 양으로 들어 있는 무기성분의 양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으로….”

선생님은 높이가 다른 작대기들을 돌려 붙인 물통 그림을 보여주면서 열심히 설명하고 계셨는데, 네가 내 옆으로 왔어.

“서언생님, 제에가 키운 구욱화예요.”

너는 늘 약간 더듬으며 천천히 말을 했지. 평소에 말이 없기에 드물게 말을 할라치면 단어가 목과 입을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어. 네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짙은 보라색 국화 꽃망울들이 이제 곧 피어날 것처럼 모여 있었어. 피면 정말 예쁘겠다, 해 질 녘 하늘만큼 예쁜 보라색이다, 생각하는데 네가 말했어.

“이이거, 서언생님 드릴 거예요. 저엉성 드을여서 키웠어요.”

매일 새벽같이 학교에 올 만큼 성실하고, 누가 부탁하면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너이기에 국화를 예쁘게 길러내었을 거야. 배시시 웃는 네가 꽃망울보다 예뻤어.

봄에 학교 텃밭에서 키운 거라며 여러 종류의 상추를 가져온 적도 있었지. 마침 청소시간이어서 깨끗이 씻어주면 더 좋겠다고 했더니, 너는 신이 나서 교무실 세면대에서 상추를 씻기 시작했어.

“서언생님, 다알팽이가 세 마리나 따아라왔어요.”

너는 신기해했어. 따라온 달팽이 세 마리를 적상추 한 장에 옮겨서 세면대 옆에 두었어.

“정말이네, 얘네 자기 집을 이고 다니는 거 신기해.”

너는 상추를 씻고,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세면대로 가 달팽이를 구경했어. 전에 읽었던 어떤 책의 구절이 떠올랐어.

“얘네 기억력이 있대. 우리 좋은 기억만 만들어주자. 야야, 이것 좀 봐봐.”

달팽이는 상추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두리번했지.

“서언생님, 얘에네 여기서 우리가 준 사앙추나 머억고 있기 시잃은가 봐요. 그냥 여기 이있으면 펴언할 테엔데, 나가고 시이픈가?”

너는 다 씻은 상추를 봉지에 담아서 내게 주고, 달팽이가 올라앉은 상추를 들고 나가 텃밭에 놓아주었어.

종례 후 나를 다시 찾아와 전했지. 달팽이가 사라졌다고 했어.

“사상추만 나암아 이있더라구요. 떠나가았어요.”

그때 우리는 함께 키운 자식을 떠나보낸 부부처럼, 상추에 머물지 않고 미지로 당당히 모험을 떠난 달팽이를 대견해하면서도 걱정하고 그리워하며 같은 마음이 되었던 것 같아.

너는 조용했고 조용한 것을 좋아했어. 사람들과 부딪히기 싫어 사람들이 드문 시간을 골라 조금씩 천천히 움직였어. 새벽에 학교에 왔어. 그 시간이 거리나 버스에 사람이 적으니까. 다른 아이들은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 무섭게 급식실로 달려가는데, 너는 혼자 때로는 지민이와 교실에 남아 있었어. 아이들이 빠져나가 식당이 한가해지면 천천히 밥을 먹으러 갔어. 수업시간에는 교실 앞자리에서 마치 진흙 속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말을 잘 들어주었지. 고개를 끄덕이고 잘 웃어주고 선생님들 말을 잘 따르는 아이였어. 종례 후에도 다른 아이들이 서둘러 쌩하니 사라지면 너는 그제야 느릿느릿 일어나, 시킨 것도 아닌데 교실에 있는 쓰레기를 줍고, 담임이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물으면 성심껏 대답하려는 다정한 아이였어.

네가 처음 결석했을 땐 몸이 안 좋으려니, 내일은 나오려니 가볍게 생각했어. 그런데 결석이 계속되었어. 너, 국민기초생활 수급 자녀도 아니어서(왜 아니었지?) 밥값 내고 점심 먹어야 했는데 급식 신청도 안 했어. 학교에 와도 밥을 못 먹으니까 더 안 오고 싶었던 거였니?

결석하는 네가 걱정이 되었는데 너는 휴대전화가 있어도 불통이고 집전화도 없었잖아. 지민이한테 물어봤어. 지민이, 네 유일한 친구는 너와 달리 성격이 활달하고 급해서 둘이 친한 게 신기했지. 중학교 때부터 친해서 부러 같은 학교로 왔다지.

“지민아, 경호 왜 안 나와?”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어요. 아침에 갔더니 자고 있더라고요. 밤새 게임하고 지금도 자고 있을걸요.”

“부모님이 안 깨워?”

“없어요. 아빠는 병원에 있고, 엄마는 집 나갔어요.”

마음이 쿵, 했지만 상황 파악은 되지 않았어. 지민이에게 부탁했어.

“그럼, 네가 책임지고 깨워서 끌고 와. 너희는 ‘베프’(best friend)고, 집도 가깝잖아.”

결석을 막아보려 수업이 빈 시간을 이용해서 너를 찾아갔지. 그 동네는 처음이었어, 사람이 많은 것을 꺼리는 네가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살고 있어서 놀랐고, 값비싸다는 주상복합아파트들 틈에 그런 집들이 있어서 놀랐어. 비좁은 골목에 쓰레기봉투가 쌓여 있고, 상한 음식물 냄새가 나고, 날파리가 윙윙댔어. 한쪽 날개만 달고 쓰레기봉투 위를 기어가고 있는 파리를 본 것 같기도 해. 모퉁이를 돌았을 때 뭔가가 휙 달아났어. 고양이 같았어. 어마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위층으로 난 좁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돌아 올라가니 네 방과 툇마루가 보였어.

툇마루에 일단 앉아 숨을 골랐어.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일 줄 알았는데 회색 슬레이트 담이 막아서더라.

“경호야.”

담을 등지고 너를 불렀어. 대답이 없었어.

“경호야.”

몇 번을 부르니, “네” 눈을 비비며 네가 미닫이문을 젖혔어.

“잤어?”

“네.”

헝클어진 머리, 푸석푸석한 얼굴, 방은 지저분하고 컵라면 껍데기가 겹쳐 있는 게 보였어. 마음이 심란해졌고 화를 내고 싶었어. 밥, 동생, 결석 등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가자.”

“네.”

나는 다짜고짜 학교에 가자고 했고 너는 순순히 내 말에 따랐어. 네가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담벼락을 봤어. 그거 말고는 눈을 둘 데가 없었지. 일어나서 멀리 보면 다른 게 보일까 했는데 역시나 회색 담만 보이더라. 그 봄에 우리를 따라왔던 달팽이처럼 고개를 길게 빼니 담과 지붕 사이 하늘이 살짝 보였어. 잿빛 하늘이었어.

너를 차에 태우고 학교로 오면서 나무라듯 내가 물었지.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학교에는 왜 안 오는 거야?”

너는 말이 없었어.

“부모님은 어디 계셔?”

지민이에게 들은 게 있어서 조심스러웠지만 물었지. 뜻밖에 네가 술술 이야기를 했어.

“어, 어엄마가 지이입을 나가았어요.”

‘아버지 과실로 교통사고가 났고, 손해배상비로 전 재산이 들어갔다. 같은 사고에서 아버지도 다쳐서 병원에 있다. 치료를 멈추면 죽는데 치료비가 많이 든다. 사고 후 몇 년 동안은 엄마가 요양간호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 아버지 병원비를 대고 살았다. 남자가 생겨서 얼마 전에 짐을 싸서 나갔다.’ 이런 이야기였어. 너는 아무렇지 않고 아프다는 생각도 없는 투로 말을 했어.

“그 아저씨, 흐음….”

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어.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었던 거야? 너는 엄마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이해하고 싶었던 거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그런데 그때 내가, “그래, 엄마는 엄마 인생이 있으니까”라고 했지. 그 말은 너무 쉬웠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말처럼. 네 마음을 끌어안지 못하고 오히려 떠난 엄마를 대변하며 냉정하게 말했던 거,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어.

그리고 우리, 학교 오는 동안 말이 없었지.

경호야, 네 아버지를 만난 일요일 오전에 마무리한 공문 퇴학자 명단에 네 이름이 들어 있었어. 3일 동안 너를 데리러 집에 갔지만 넌 학교에 나오지 않았지. 난 널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어. 절차대로 내교통지서, 선도위원회 개최 알림 공문 그리고 퇴학처분 예고통지서를 보냈어. 아무런 말이 돌아올 수 없는 걸 알면서. 그러던 때 아버지를 뵈었던 것이지.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됩니다. 경호 작은아버지가 조경 쪽에 일을 합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받아준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네.”

“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퇴학시킬 수 없지 않습니까?”

“네, 그래요. 아버님, 알겠어요. 제가 책임지고 퇴학을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단 몇 마디 나누고 아버님을 보내드렸어. 아프다고 했는데, 연명치료를 받는다고, 중단하면 곧 죽을 거라고 했는데 멀쩡해 보이셨어. 너처럼 선량해 보이긴 해도, 단호한 표정이셨어. 돌아서서 가시는데 너무 기분이 이상했어. 갑자기 회복하신 걸까? 내 어머니는 암 말기로 병상에 계셨는데 하루는 갑자기 일어나셔서, 건강한 사람처럼, 이불을 꺼내어 솜을 넣고 바느질을 하셨어. 그런 후 자리에 눕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일어나지 못하셨어. 네 아버지도 그런 건가, 생각했어.

너는 가까스로 3학년으로 진급했고 나는 계속 2학년 담임을 맡았지. 1학기가 끝나갈 때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어.

“이경호, 인제 학교 잘 나오는 거지? 학교생활은 어때?”

“서언생님, 이인제 하악교 안 빠지고 자아알 다녀요.”

다행이다, 했어. 퇴학을 막고 진급시켜서 잘했다, 했어. 지금에 와선, 모르겠어.

“그런데 경호야, 아버지는 어떻게, 잘 계셔?”

그제야 알았어, 네 아버지가 나를 만나고 몇 달 만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아버지는 삶을 정리하시면서 마지막 최선을 다하기 위해 나를 찾으셨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치료비 때문이었을까? 아버지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잘 부탁드립니다, 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어. 그 순간 너희 집 골목에서 한쪽 날개를 잃고 엉금엉금 기어가던 파리가 두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것을 본 것도 같아. 아버지를 잃고 너는, 그 회색 옥탑방을 나와, 조경 일을 하신다는 작은아버지 댁으로 들어갔다고 했어. 그런저런 일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면서 내가 너무 무심했어.

“쌤, 저희 이제 실습 가요. 둘이 같은 업체로 가는데 같은 공장에서 근무할지는 모르겠어요.”

네 옆에 있던 지민이가 말했어. 너희 좀 떨어져 지내, 라고 내가 농담을 했던가? 사실은 지민이처럼 우정을 소중히 하는 애가 늘 네 곁을 지켜서 얼마간 마음이 놓였어. 발랄한 지민이, 거친 인상을 노리고 기름을 발라 머리를 넘겼는데도 전혀 거칠어 보이지 않았어.

“벌써? 2학기 때 가는 거 아니야?”

“방학하자마자 기숙사 들어가요.”

“그래, 어느 회사?”

“경호 작은아버지가 필요하다고 해서, 농기계과 쌤한테 물어서 지게차 자격증을 땄어요. 실력 좀 발휘했죠. 그래서 좀 좋은 데 가요.”

“지게차 자격증을? 대단한걸! 좋은 데로 가? 잘됐네.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하고 잘 다녀와. 언제 밖에서 밥 한번 먹자. 연락해, 꼭!”

취업하려고 미리 자격증까지 딴 너희가 대견해서 지민이한테 헤드록을 걸었더니 녀석, 기름 바른 헤어스타일 망가진다고 싫어했지. 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걱정이 되면서도 이제 학교생활은 끝났구나, 현장실습만 마치면 아버님 소원대로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는구나, 안심이 되는 것 같았어. 성급했지.

“네에엡!”

돈 벌 생각에 벌써 신이 난 듯 대답하는 너희한테 “너무 돈 많이 벌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일해”라고 나는 말했던가? 적당히 일하라는 걸 받아들이기에는 형편이 너무 안 좋은 걸 알기에 말하지 않았던가?

매번 실습을 내보낼 때마다 한편으로 마음이 짠했어. 아이들이 못 견디고 학교로 돌아와서 하는 말을 들었거든. 먼지 나고 살벌한 작업환경은 그런대로 참을 만해도, 주야 맞교대 해가며 일주일에 70시간씩 밤에도 휴일에도 일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했어. 실습생은 하루 7시간·주 35시간 일하는 게 원칙이고, 야간이나 휴일의 실습은 금지되어 있잖아. 그런데 회사는 현장실습도 근로계약이고 근무시간도 서로 합의하면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어. 아이들은 돈이 필요하고 아직 배우는 입장이고 계속 거기서 일해야 하니까 회사가 하라는 대로 했어. 그런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날이 왔던 거야. 돈 많이 주는 큰 회사로 간 선배들일수록 돈이고 뭐고 못 견디고 몸도 마음도 푹푹 썩고 찌들어 돌아와서는 말했어.

“쌤, 제일 싫은 말은요, 그래도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 하는 거예요. 지들이 한번 해보라 그래요.”

“좀만 더 해보지, 좀만 더 참지, 그런 말 들으면 열 받아요.”

어쩌면 그렇게 못 견디고 돌아오는 아이들이 현명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리고 네 사고가 있고 나서는 이런 생각도 했어. 너도 못 견디고 돌아왔으면 좋았겠다.

네 사고 소식을 들은 건 일요일 아침이었어. 정신은 말짱한데 왠지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뒤척이고 있을 때, 전화가 온 거야.

“김연수 선생님, 저 신정섭입니다. 잘 지내시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부에서 정책국장을 맡아 일하는 선생님이었어. 조합원 중에 한 명이라 나한테 전화를 한 거였어.

“사건 알고 계시죠? 언론에서 전교조 입장을 묻습니다. 먼저 학교 측 입장을 알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렇게 네 사고를 알게 되었어. 이야기를 듣고 주저앉았어.

“선생님,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죄송해요.”

아무것도 몰랐다니….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오후가 다 갔어.

어둠이 안팎을 가리지 않고 내렸고 네가 있다는 병원을 찾아갔어. 사방은 황량하고 어두운데 병원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은 왜 그렇게 많은 건가, 왜 그렇게 환한 건가 싶었어. 네가 있다는 병동 앞을 오래 서성였어. 그런데 결국 그냥 돌아섰어. 볼 수가 없었어. 겨우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이런 모습이 싫었어. 살아서 제대로 만날 거라고 생각했어.

다음 날, 몸에 열이 나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종일 누워 있었어. 신문에서 읽었던 네 사연이 영상이 되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 되풀이해서 나타났어.

너는 손수건을 담그면 파랗게 물이 든다는 바다 한쪽에 자리한 생수 공장으로 실습을 나갔어. 초록색 바닥에 놓여 있는 컨베이어벨트와 파란색 거대한 기계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어. 그 넓은 공간에 단 한 사람 너만 있었어. 어둠이 내려도 혼자 남아서 일을 했어. 세상에서 까맣게 떨어진 곳에서 혼자 기계를 만지고 있었어.

원예과 현장실습인데 웬 생수 공장이야? 나는 특성화고에 있으면서도 3학년 담임을 못 해봐서 원예과는 꽃 같은 거 기르고 파는 곳으로 실습 가는 줄만 알았어. 원예과가 프레스기 다루는 공장으로 실습 나갔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어. 지게차 자격증이 있어서 포장 묶음을 지게차로 옮겨 쌓는 일을 하기로 하고 간 것이었다지. 전공과 무관하게 오라는 곳, 돈 준다는 회사로 실습 나가는 일이 많다지. 지민이가 말한 ‘좋은 데’란 무엇보다 돈을 많이 주는 회사를 말하는 것이라지.

여름은 더웠어. “사알려줘… 너어어무 더워” 중얼거리며, 너는 숨이 컥컥 막히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43도의 실내를 오갔어. 12시간 내내 단 1분도 앉지 못하고 계속 오가야 했어.

7월에 회사 기숙사에 들어간 후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어. 아침 일찍부터 일하고 밤에도 일하고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일을 했어. 7시 반에 출근해서 오후 6시 정시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10시 반까지 기계를 지켰어. 생수 발주량은 맞춰야 하고 기계는 자꾸 고장 나고 기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너 하나였으니까.

기계를 보는 일은 정규직원 업무였어. 그 정규직원이 실습생인 너에게 단 5일 기계 고치는 법을 알려주더니 퇴사했어. 이제 회사에서 기계 고치는 법을 아는 사람은 너 하나가 되었어. 지도자도 없는 현장실습을 너는 해야 했어. 넌 아직 학생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학생이 아니라 노동자일 뿐이었어. 어디에도 교육은 없고 일만 있었어.

너는 기계를 싫어했어.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줄줄 흘러내리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싫어하는 기계와 밤늦게까지 혼자 씨름했어. 그래도 돈이 들어오니까 적금을 붓기 시작했으니까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어. 처음이라 힘들지 적응하고 익숙해지면 점점 좋아질 거야, 하면서 그냥 참았어.

어느 토요일, 이미 퇴근해서 실컷 게임이나 할까 하는데 회사에서 불러냈어. “와서 기계 좀 봐줘야겠어.” “씨이바알, 조올라…” 하면서도, 네가 학생이라 초과실습(근무)을 시키면 안 되고 신고하면 회사가 불리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는 회사에 들어갔어. 너무 피곤해서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놓쳤는데 액정이 깨졌어. 회사에서 당연히 줄 수밖에 없는 액정 수리비 정도 받는 것에 만족했어.

하루는 기계를 고치러 1.5m를 올라갔어. 공간이 부족해서 휘청하는 순간, 바닥으로 떨어졌어. 안전장비 같은 것은 없었어. 등을 모서리에 부딪쳤고 갈비뼈에 금이 갔어.

병원에 가니 1주간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입원을 했어.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

“경호야, 기계 고장 났어. 이거 어떻게 만져야 되는 거야? 뭐라고? 말해봤자 모르겠어. 네가 와서 고쳐. 와라, 너 없으니까 회사 올 스톱이야. 생산라인 기계 고칠 사람이 너밖에 없어. 생산라인 스톱되고 며칠 발주량 못 맞추면 회사 끝이야. 퇴원해. 어서 들어와, 기계 좀 고쳐.”

그래서 치료를 끝내지도 못하고 사흘 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왔어.

사고 소식을 듣고 담임이 찾아왔어. 교직 2년차의 젊은 담임은, “괜찮아? 무리하지 말고 학교로 돌아와” 했어. 너는 괜찮다고, 계속 해보겠다고 대답했어.

다친 너를 보고 속상해서 지민이가 물었어.

“야, 새꺄. 네가 거길 왜 올라가서 다치고 지랄이야?”

“개애새끼, 내가 오올라가고 시잎어서 오올라갔냐. 아안 오올라갈 수가 어없다구. 하알 사라암이 어없어. 씨이바알, 아파서 호온자 못하니까 한 놈 부으쳐여다알라고 해앴다구. 어디 마알을 드을어 쳐머억냐구.”

너는 혼자서 기계 수리를 도맡는 것은 도저히 힘들어서 할 수가 없을 것 같았어. 회사 임직원에게 여러 번 문자를 보냈어.

“공장장님, 팰리타이저 혼자 보고 있습니다. 한 명 더 부탁드립니다.”

“이사님, 저 이경호입니다. 간지 공급 장치가 간지를 공중에서 그냥 놔버려서 기계가 자꾸 멈춰버립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조용했어.

11월, 나라의 여기저기에서 땅이 흔들리더니 급기야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일어나 전격적으로 수능일 연기가 발표된 날이었어.

너는 점심 식사도 못하고 기계 사이를 오갔어. 1시30분쯤, 생수를 쌓아 누르는 압착기가 멈추었어. 생수를 쌓을 때 중간에 종이를 넣는 기계도 멈추었어. 너는 기계로 들어갔어. “또 뭐어가 무운제지, 씨이바알?” 네가 문제를 해결하고 나왔어. 그 순간 압착기가 움직였어. 우우웅, 압착기가 내려와 네 머리를 덮쳤어. 너는 앞으로 쓰러졌어. 압착기와 컨베이어벨트 사이에 목과 가슴이 끼었어. 네 파란 작업복에 검붉은 피가 번졌어. 파란 기계와 초록색 바닥으로 피가 흘러내렸어. 비릿한 냄새가 났어. 아아, 너는 소리를 질렀어. 아아, 온 힘을 다해 내질렀어.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나, 소리가 울리지가 않아. 누구도 없어. 너무 아픈데 너무 조용해.

너에게는 영원 같았을, 몇 분이 지나 직원들이 모여들었어. 너는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어. 심폐소생술을 받고 다시 심장이 뛰었어.

회사는 네가 정지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고 설비 내부로 들어갔다며 사고의 책임을 너에게 물었어.

열흘 뒤, 19살이 되기 나흘 전, 너는 숨을 멈추었어.

너는 이 세상에서 잿빛 가루가 되었어.

화장터에서 지민이를 만났어.

“선생님, 그 새끼…. 그냥 으레 힘들다고 하는 줄 알았죠. 다들 그러잖아요. 또 야근이야, 힘들어, 장난 아냐…. 잔업이라 게임 같이 못할 때도 있었고, 카톡 반응이 없으면 아직 야근하나 했어요. 그런 줄 몰랐죠….”

지민이는 울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어. 머리에 기름도 안 발랐고 실습 몇 달 만에 살이 좀 붙었어. 제때 못 먹고 야근 끝나고 밤에 라면 같은 거 먹으니 일이 힘든 만큼 오히려 살이 붙고 몸은 안 좋아진 것 같았어.

“선생님, 왜요? 왜 실습하다 죽어요? 왜 실습하다가 죽어야 합니까?”

지민이는 물었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그렇지만 언젠가 결석한 너를 데리러 갔던 날처럼, 쉬운 말은 하지 않았어.

네가 떠난 뒤에 연이어 사고가 있었어. 아마 늘 있었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안산 반월공단 플라스틱 제조공장에 현장실습 나갔던 학생이 투신했고, 인천 특성화고 학생이 돈가스 제조업체의 육류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렸어. 안전교육은 없었는데 사고 후 업체가 남은 실습생들에게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일지에 서명하라 했다고 해. 이래저래 억울한 친구들이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찾기 모임을 꾸렸고, 지민이도 들어갔어.

나도 뭔가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난 맨날 이래. 당당하게 못 나서고, 그냥 숨어서 남 탓이나 하고.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자동차 공장에서, 통신사 고객센터 해지 방어 부서에서 참 많은 특성화고 친구들이 죽어간 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네 사고를 막지 못했어.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막지 못하고 있어.

경호야, 미안하다.

경호 아버님, 경호 졸업 못 시켰네요. 죄송합니다.

*

마음으로 수십 번 쓰고 지워야 했던 이 편지를 이제 부치려는 오늘 나는 전태일 다리에 서 있어. 한 번도 곁을 지켜주지 못했던 널 보내면서, 이제는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되길 바라.

네가 떠난 지 1년, 전태일이 죽은 지는 48년이 흘렀어. 아아, 네가 온 힘을 다해 내지를 때는 울리지 않았던 소리가, 네가 떠나고 울리기 시작했어. 그 소리는 오래 살아서 계속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거야, 우리가 있는 한.

지민이를 만났어. 졸업하고 거긴 아무래도 있을 수 없다면서 실습했던 회사를 나와, 일자리가 많은 서울 경기를 떠돌며 지내고 있었어.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했던 선배처럼 외주업체 비정규직으로 적은 돈 받고 위험하게 일하기도 했고, 지금은 인천에서 지게차를 몰고 있어. 거기도 계약직이라 계속 정규직을 알아보고 있긴 한데, 나중에 돈 모으면 자기 포클레인을 사서 운영하고 싶대. 다치지만 않아도 좋겠어.

지민이, 길던 머리를 짧게 잘라 추워 보이길래 모자 사러 요 앞 평화시장에 들어갔어. 와, 수만 개의 모자가 있더라. 지구 사람 다 써도 남을 만큼 엄청나게 많아. 그 모자들 다 누가 만들고 누가 사고 누가 쓰는 걸까? 일할 때 쓰기 좋다고 지민이는 비니(모자)를 골랐어. 여러 개도 필요 없고 하나면 된다나. 자식, 소박하긴. 아무튼 지민이가 일할 때 오늘 산 비니가 좀 역할을 하길 바라.

청계천이 흘러가는 걸 보고 있었어, 다리 위로 11월의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어.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손 같고 누구의 귀에도 이르지 못했던 목소리 같아, 생각하는데 갑자기 마른 잎들이 쓸려가며, 소리가 들려왔어.

서언생님, 저어 가알게요.

너는 지금 여기 없지만, 있어. 우리가 기억하는 한 너는 여기 있어. 이건 좀 네가 생수 공장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좋은 면 같기도 한데 생수병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날 것 같아. 사는 동안 늘 생수를 마실 거라서 사는 동안 널 기억할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 죽을 때까지 같이 있는 거야, 괜찮지? 하긴 너를 기억하는 게 내 일이고 내가 사는 건 널 기억하는 거란 생각이 들어.

그럼, 아안녕.

장임혜경 * 임지영 기자의 ‘보이지 않는 학생들, 특성화고의 삶’(2017년 11월23일 발행 제531호), ‘죽음이 도사린 현장실습 제도’(2017년 12월4일 발행 제533호), ‘현장실습생 연이어 사고’(2017년 12월7일 발행 제534호)와 전혜원 기자의 ‘현장실습생 이군의 마지막 문자 “내일 집에 간다”’(2017년 12월5일 발행 제534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현장실습생 이민호군의 죽음을 계기로 2018년부터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은 폐지됐습니다. 현장실습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안전관리 등이 가능한 ‘학습 중심 현장실습’은 가능하고, 기간도 6개월에서 최대 3개월로 줄었습니다.

가작 수상자 장임혜경씨 수상 소감


더는 ‘김용균’이 나와선 안 된다


요즘 국화 키우고 달팽이 아끼는 고등학생이 어딨냐고? 없을 것 같은가?
한동안 특성화고 교사 생활을 했다. 내가 있던 공업고는 지역에서 성적이 제일 안 좋은 곳이었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순박하고 착했다. 특히 사랑스러웠던 한 친구의 특징을 ‘경호’에게 실었다. 어눌하고 착하고 성실했고 이런저런 아픔에도 꿋꿋한 친구였다. 그도 졸업하고 사고를 당했다. 늘 마음에 걸렸다.
며칠 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스물네 살 김용균씨가 숨을 거두었다. 이런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덜컹한다. 내 제자 같다. 졸업한 아이들은 전국을 떠돌며 일하다 다치고 더 가난해졌다. 더는 실습하다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다 감당하고 있는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인간으로 대우받고 처지가 나아져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멈춰라.
꿈과 희망을 찾으려 노력했던 ‘경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원고지 몇 장으로 덜어내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부끄러웠다. 마음 빚 갚으려 했는데 오히려 큰 선물을 받았다. 초라하지만 체온을 유지해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다치는 걸 막아주는 비니 같은 사람으로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부단히 노력하겠다.
손바닥문학상이 용기를 주었다. 과 허윤희 기자에게 고맙다. 초고를 읽어준 사람들 모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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