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이는 대중교통만 타면 울었다.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울음소리가 청명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에 올라타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까닭에 아내와 나는 목적지에 채 도착하기 전에 내려야 했다. 택시는 더했다. 운전에 방해될까 “거의 다 도착했어. 조금만 참아”라고 말하며 연신 달래야 했다. 매번 택시 기사는 말을 안 했을 뿐 아주 진땀을 뺐을 것이다(죄송합니다). 자가용이 없어 차가 익숙지 않은 까닭에 도담이가 무서웠나 싶었다. 이게 불과 한 달 전까지 겪은 일이다.
‘삑.’ 2주 전 택시를 탔는데 웬걸, 도담이가 울지 않았다. 아내 지갑에서 꺼낸 신용카드를 꼭 쥔 채 입을 꾹 다문 표정이 다소 결연해 보였다. 도담이는 손잡이, 앞좌석 카시트, 창문 등 택시 안 여기저기에 신용카드를 대었다. 마치 아내와 내가 계산하는 동작을 따라 하는 듯했다. 그날 도담이는 카드를 직접 결제 단말기에 댄 뒤 ‘삑’ 소리를 듣고 양손 높이 들어 ‘만세’ 했다. 이후 아이는 재미가 붙었는지 택시·버스·지하철 타기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고, 생협·편의점·식당을 갈 때마다 카드부터 챙겼다. 물건을 사려면 돈(카드)을 내야 한다는 경제 원리를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몸으로 익히는 걸 보면서 신기했다.
최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지면서 암호화폐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에 도담이를 데리고 간 적 있다. 카페 하나를 빌려 마련된 이곳에서 소비자와 판매자(창작자)는 암호화폐로 맥주, 초, 드립백커피, 닭강정, 정장, 가죽지갑 등 다양한 상품을 사고팔았다. 나 또한 방향 스프레이 하나와 맥주를 샀는데 도담이가 신용카드 대신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고 물건의 QR 코드를 직접 찍어 결제했다. 방향 스프레이를 살 때 도담이에게 신용카드 대신 휴대전화 카메라를 쥐여주니 신용카드를 다시 달라며 떼를 썼다. 하지만 금세 휴대전화 카메라로도 물건 사는 과정을 지켜보더니 맥주를 살 때 휴대전화 카메라를 꺼내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광고
사흘 전(8월14일), 도담이는 어린이집에서 시장놀이를 했다. 학부모가 과일·과자·장난감 등 물건들을 준비하면 아이들이 별 모양 스티커로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놀이였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토끼 인형, 젤리, 모형 망치, 보노보노 신호등, 과자, 가지 등 도담이가 사온 것들이 거실 바닥에 잔뜩 널려 있었다. 무엇으로 샀냐고 물어보니 도담이는 별 스티커를 들어 보였다. 어쩌면 도담이는 신용카드, 휴대전화 카메라(암호화폐), 별 스티커를 물건 사는 데 필요한 도구인 줄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지나치게 많은 기대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도로 집어넣었다. 이제 겨우 17개월짜리 아이가 상거래를 알까 싶었기 때문이다. 물은 물잔에 따라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그저 생협에 가면 물건을 고르고 카드를 꺼내 결제 단말기에 찍어야 나갈 수 있다는 과정을 알게 된 게 아닐까.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헌재는 윤석열을 파면하라” 탄원 서명…9시간 만에 20만명 동참
“나무 꺾다 라이터로 태우려…” 의성 산불 최초 발화 의심 50대 입건
한덕수 ‘마은혁 임명’ 침묵…민주 “윤 복귀 위한 위헌적 버티기”
전한길, 불교신자 후보에 안수기도…“재보궐서 보수우파 꼭 승리”
‘윤 탄핵’ 촉구 성명 추동한 세 시인…“작가 대신 문장의 힘 봐달라”
윤석열 탄핵심판 4월18일 넘기는 ‘최악 경우의수’ 우려까지
한덕수 권한쟁의심판이, 윤석열 탄핵 선고 압박용이라고?
챗GPT ‘지브리풍’ 이미지 폭발적 인기…“판도라의 상자 열었다”
산 정상에 기름을 통째로…경찰, 화성 태행산 용의자 추적
[속보] 최상목 “10조원 필수 추경 추진…여야 동의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