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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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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직립보행

생후 16개월 만에 드디어 첫발 내디딘 도담이
등록 2018-06-26 16:30 수정 2020-05-03 04:28
도담아, 천천히 걸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김성훈

도담아, 천천히 걸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김성훈

도담이는 느리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출산 예정일을 보름이나 지나도 나올 기미가 없었다. 출산할 때 제 엄마가 아무리 힘을 줘도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 아내도,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기진맥진했다. 아내는 힘은 힘대로 빼고 고통은 고통대로 느낀 뒤 수술을 받았다. 태어나 16개월이 지난 지금도 도담이는 변함없다. 소처럼 되새김질하는 까닭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우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린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또래 친구들과 달리 도담이는 여전히 기어다닌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우리 부부는 도담이가 걷지 못하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기는 것도, 앉는 것도 또래 아이들보다 늦었으니 천성이려니 했다. “둘째는 걷기까지 17개월이나 걸렸어. 때가 되면 다 걷는다”는 육아 선배 장조이 누나의 말을 위안 삼았다. 아무렴, 도담이도 도담이만의 속도가 있는 거지. 그런데 16개월에 접어들자 조바심이 슬슬 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어린이집이 날마다 보내오는 알림장에서 도담이가 기거나 누워 있는 사진을 보며 때때로 속상해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게 의미 없는 줄 알면서도 행동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하나 걱정했다. 당장 걷기 연습이라도 시켜야 하지 않나 싶어 돌잔치 때 후배 기자에게 선물받은 걸음마 연습용 장난감을 꺼냈다. 하지만 도담이는 장난감 손잡이를 잡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연습이고 뭐고 “인생은 실전”이니 “걸을 때가 되면 걷게 될 거”라는 두 아이 아빠 김완 기자의 말이 맞나보다.

누구보다 빨리 기어다니고, 반찬통에 있는 블루베리를 곧잘 꺼내먹으며, 퍼즐을 정확한 위치에 놓는데다 앞집 개 브라우니를 만날 때마다 ‘안녕’ 인사하는 등 여러 행동을 이리저리 놓고 봤을 때 도담이는 못 걷는 아이가 아닌 듯했다. 행동이 느리지만 조금씩 발달하고 있기에 지금은 굳이 걸을 필요를 느끼지 못해 안 걷는 것 같았다(고 믿고 싶다). 도담이 편에선 빨리 기어다닐 수 있는데 굳이 걸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우리가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괜한 욕심과 기대를 앞세운 게 아닌가 싶어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우리 걱정을 알아챘는지 며칠 전 도담이가 소파를 짚고 일어서는 게 아닌가. 맙소사, 박수! 그러더니 어느새 소파와 침대 위를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내 손을 잡고 한 발짝씩 내딛기 시작했다. 역시나 우리 걱정은 기우였다. 도담이가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면 손잡고 마을 한 바퀴를 돌고 싶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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