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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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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콘텐츠 탄생? 또 다른 열정페이?

영화와 예능의 콜라보 <전체관람가>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새 장르 개척 호평 뒤로 제작비 3천만원 논란에 취지 변질 비판도
등록 2017-11-30 03:20 수정 2020-05-03 04:28
JTBC 화면 갈무리

JTBC 화면 갈무리

JTBC 주말 예능 가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인지를 설명하자면 얘기가 길어진다. 프로그램 소개글도 좀 장황하다. 공식 누리집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대중매체인 영화와 방송”이 만난 “최초의 콜라보 블록버스터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쓰여 있다. 구태여 풀어쓰자면, 충무로 대표 감독 10명이 각각 12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찍는 동안 방송 카메라가 그 제작 과정을 요즘 유행하는 ‘관찰예능’ 형식으로 담아낸 뒤, 감독과 진행자가 다 함께 스튜디오에 모여 제작기와 영화 본편을 보며 감상을 나누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마치 영화와 풍성한 ‘서플먼트’(감독 등이 영화 뒷얘기를 하거나 편집 중에 삭제된 영상을 보여주는 것)를 한 장에 꽉 채워 담은 DVD를 제작 뒤풀이 현장에서 같이 보는 느낌이다. 분명 전대미문의 버라이어티한 협업임이 틀림없다.

전대미문의 버라이어티 협업

그러나 의 화려한 수사와 형식은 역으로 현재 방송과 영화가 놓인 위기를 말해준다. 지금은 한국 영화계의 거장 봉준호 감독이 최근작을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고, 방송사의 간판 제작진이 대형 연예기획사로 빠져나가 자체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영화와 방송이 아직까지 “가장 영향력이 큰 대중매체”인 것은 맞지만 그 권위는 과거보다 눈에 띄게 약해졌다. 굳이 극장을 찾거나 본방 사수를 하지 않아도 영화와 방송 콘텐츠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고, 웹툰과 게임처럼 그 못지않게 재미있는 콘텐츠가 날마다 쏟아져나온다. 는 말하자면 올드 미디어가 되어가는 두 매체가 급변하는 콘텐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제휴이자 공존의 모색이다.

협업 결과는 꽤 흥미롭다. 영화와 방송이 전통의 강자로서 본래 지니고 있던 강점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먼저 각 단편영화 제작기를 상세하게 담아낸 관찰예능 부분은 한정된 예산과 시간 때문에 과정이 상당히 축소됐음에도, 영화가 각 분야에서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종합예술임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가령 이원석 감독의 제작기에서 팝아트풍 포스터로 빈 공간에 생기를 주면서 김구라 카메오 미션까지 해결한 미술감독의 센스나, 무술과 춤의 결합이라는 낯선 풍경을 간단한 동작으로 단숨에 구현해내는 안무팀의 활약 등은 영화 본편만큼이나 인상적인 순간들이다.

박광현 감독의 제작기에서도 스태프들의 역량이 눈부셨다. 상징을 담은 조명으로 풍부한 드라마를 만들어낸 조명감독, 수작업으로 거미맨의 독특한 수트를 완성해낸 의상감독 등은 ‘단편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라는 기적의 장르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른바 ‘생방 촬영’이 일상화된 졸속 제작 환경 안에서 스태프들이 개성과 장기를 발휘하기 어려운 방송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방송의 경우 단편, 제작기, 스튜디오 토크 등 다른 성격의 구성 요소들을 매끄럽게 연결하면서 ‘콘텐츠 조립 공장’의 능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오랫동안 다양한 콘텐츠를 납품받으며 축적해온 콘텐츠 큐레이팅과 가공의 능력이다. 최근의 대표적 사례로 1인 방송 콘텐츠를 끌어안은 (MBC)이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방송을 발굴하고 선별하는 (MBC) 등을 들 수 있다. 의 제작기 부분만 봐도 이는 잘 나타난다. 사전회의, 캐스팅, 대본 리딩, 촬영 등 모든 제작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내면서 순간순간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의 서로 다른 캐릭터를 파악해 흥미진진한 장면을 뽑아낸다. 그 위에 스튜디오의 리액션을 덧붙여 풍부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더 흥미로운 건, 이 협업 과정이 방송과 영화의 약점도 적나라하게 비춘다는 것이다. 한국 예능계와 주류 상업영화계는 공통적으로 다양성 부족 문제를 드러낸다. 특정 소재의 작품이 성공한다 싶으면 유사한 이야기가 우르르 쏟아져나오고, 일명 ‘대세’로 분류되는 소수의 중년 남성이 조합만 바꿔가며 중요한 역할을 독점하고 있다. 역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두 매체가 공유하는 한계까지 고스란히 이어받아 문제점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예능계에서 남성 기득권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인 김구라와 윤종신이 문소리의 양옆에 포진한 것이나, 이경미 감독 외에 중년 남성이 절대다수인 감독 구성부터가 단적인 사례다.

협업 과정에 드러난 속살
주말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JTBC)는 사전회의, 대본 리딩, 촬영 등 영화 제작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JTBC 화면 갈무리

주말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JTBC)는 사전회의, 대본 리딩, 촬영 등 영화 제작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JTBC 화면 갈무리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가령 3회 봉만대 감독 편의 사전회의 장면에서 김구라와 윤종신은 이야기 방향을 계속 봉만대 감독의 에로영화와 성적 농담으로 연결하며 그 자리의 유일한 여성이던 문소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문소리가 “자꾸 ‘19금’ 얘기를 하려 해서 이야기를 전체관람가로 하느라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순간에는 그가 연출한 영화 에서 소수자 여성을 소외시킨 술자리 에피소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충무로 안에서 상대적으로 개성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감독들의 단편에서도 같은 한계가 드러난다. 6회까지 오는 동안 장르적으로는 판타지·휴먼가족극·뮤지컬·슈퍼히어로물·스릴러 등 다양한 데 반해 정작 이야기 면에선 유사한 주제를 반복했다. 2017년을 대표하는 다른 키워드를 주제로 했지만, 전도연 주연의 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을 위로하는 가족애를 그린 것이다.

영화와 방송은 첫 단편 제작 때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열정 페이’ 문제까지 공유한다. 3천만원의 제작비로 단편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감독들은 인맥을 총동원하고 때론 사비까지 들여 모자라는 예산을 충당한다. 이 장면은 어쩔 수 없이 노동의 정당한 대가에 의문을 키운다. 노동력 착취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병폐로 남아 있는 영화계에서 독립영화를 지원한다는 좋은 취지의 방송에서도 ‘열정 페이’를 합리화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작진이 더욱 조심했어야 하는 지점이다. 최근 정윤철 감독이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직접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련 글을 올렸으나, ‘후반 작업’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부분 때문에 논란이 더 커졌다. 영화계 쪽만 언급되지만, 방송계의 노동력 착취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낮은 보수와 부당한 대우도 감수하라는 이른바 ‘열정페이’가 만연하고 그것이 관행처럼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단편영화 가치의 재탄생

그럼에도 의 미덕은 적지 않다. 비주류 장르인 단편영화의 가치를 새로운 시대의 대안적 콘텐츠로 재평가하고, 스태프들의 노고를 가시화한 점은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호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 프로그램에는 전통매체로서 영화와 방송이 오래전에 지녔던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과 향수가 있다. 그것은 단독 개봉과 본방 사수의 개념이 거의 사라지고, 콘텐츠를 단편적인 ‘짤’이나 ‘엑기스’ 영상으로 가볍게 ‘소비’하는 시대에 갈수록 잊히는 ‘관람’의 의미다. 옛날 극장을 재현한 스튜디오에서 창작공동체가 만들어낸 노동의 결과물에 같은 애정을 지닌 이들이 모여 울고 웃으며 감상을 공유하는 풍경은 이제는 사라진 진지한 관람의 태도를 환기한다. 그래서 는 대안 콘텐츠의 탄생이자, 관객의 재탄생이기도 하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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