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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동물에게 권한다

레이철 카슨의 첫 작품 <바닷바람을 맞으며>
등록 2017-11-11 02:00 수정 2020-05-03 04:28

영화 에서 지구 대신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우주를 탐사하는 ‘인듀어런스호’ 승무원들은 바다가 있는 행성을 보자 탄성을 지른다. 물이 있는 곳. 그곳엔 반드시 생명이 있을 터이니.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의 심각성을 고발한 으로 잘 알려진 레이철 카슨의 첫 작품 (1941년 발간)는 이 생명의 원천, “마지막 바람의 숨결이 이 모든 것을 날려버릴 때까지 요동칠” 바다에 대한 관찰기다. 와 함께 ‘바다 3부작’으로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변변한 직장을 찾지 못했던 젊은 카슨은 미국 어업국에서 청탁받은 라디오 원고를 쓰는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어업국이 만드는 새 브로슈어에 들어갈 서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카슨은 ‘해양 세계’라는 에세이를 썼는데, 이 짤막한 글은 이후 를 빚어낸 모태가 됐다. 카슨은 바닷가를 밤낮없이 걸으며 관찰하고 사색하면서 작고 검은 수첩에 바람의 소리, 나무의 냄새,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 시시각각 변하는 수면의 색깔, 갖가지 동물들의 행태를 빼곡히 적었다. 자연에 대한 풍부하고 정확한 지식을 지닌 과학자이자 서정적 문장력을 가진 카슨은 이 메모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어낸다.

카슨이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생태계의 순환 구조였다. 생존 본능을 놓지 않는 한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포식자인 동시에 피식자(먹이)로서 삶을 살아간다. 카슨은 이들의 일상을 촘촘하게 전하면서, 자신을 매료시켰던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뷰퍼트 해안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1부 ‘바다의 가장자리’를 펼치면 당신은 밀물이 들어오는 바닷가에 서서 바닷물이 차오르기 전 모래벼룩이 해초 잎에서 튀어오르는 장면을 포착한다. 그 순간 옆에서 기다리던 유령게가 커다란 집게발을 내밀어 벼룩을 잡아먹는다. 벼룩 사냥에 정신이 팔린 유령게가 해변을 걷는 사람의 기척에 화들짝 놀라 파도에 몸을 실으려는 찰나, 가까이 있는 커다란 홍민어가 입을 벌린다. 그날 오후 홍민어는 상어의 공격을 받아 해안에 주검으로 남았다. 그러자 해안의 청소부, 모래벼룩이 모여들어 민어의 흔적을 없앤다.

2부 ‘갈매기의 길’은 고등어 ‘스콤버’를 주인공으로 넓은 바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고, 3부 ‘강과 바다’에선 뱀장어 ‘앤귈라’가 등장한다. 뱀장어는 성체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강가에서 보내다 산란지를 찾아 바다로 나아가 알을 낳곤 생을 마칠 더 깊은 바다로 향한다. 카슨은 “바다의 생명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깊은 확신에서 우러나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수백만 년의 세월을 견딘 바다야말로 육지 동물인 인간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연속성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의 생명체를 알기 위해선 상상력을 발휘해 인간의 잣대가 아닌 빛과 어둠, 밀물과 썰물 같은 물의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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