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을 하지 말라. 집에서나 식당에서나 우리 부부의 식사 불문율이다. 도담이가 언제 징징거릴지 모르니 후닥닥 음식을 씹어 넘기고 잽싸게 먹고 육아 태세를 갖추자는 강한 의지다. 집에선 울어도 달래면 그만이지만, 밖에선 다른 손님과 식당 주인의 눈치 보랴 양해를 구하랴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완 기자와 밥을 먹다가 최근 ‘노키즈존’이 유행한다는 말을 듣고 동네 제과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 제과점은 매일 아침 8시부터 시작되는 조식 뷔페를 먹기 위해 7시30분부터 줄을 설 만큼 자리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그날은 외출 준비로 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여러 명이 모여 앉는 큰 테이블에 빈자리가 없는지 둘러보았는데, 아이를 동반한 한 가족이 의자 하나씩만 당겨 앉으면 우리 가족까지 식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의자 하나씩 옆으로 이동해주실 수 있냐”고 양해를 구했더니 “이 자리가 좋은데 왜 그래야 하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말문이 탁 막혔다. 입맛이 달아나 “당신도 아이를 키우니 잘 알지 않냐”고 말하고 제과점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등 뒤에서 “이 사람 많은 곳에 왜 유모차를 끌고 오냐”는 빈정거림을 들어야 했다.
유모차를 끌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벌레’(충) 소리까지 듣지 않은 것이 다행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카페를 찾았는데, 근처에 울고 떠드는 아이들이 있으면 불쾌해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부모들은 공공장소에서 방방 뛰어다니거나 떠드는 아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 커피 한잔 시켜놓고 몇 시간씩 떠드는 아줌마나 아저씨들 때문에 카페 물이 흐려질까 걱정하는 카페 사장님들의 심정도 잘 알겠다. 그럼에도 ‘노키즈존’ 딱지까지 붙여 유모차의 출입을 제한하는 현실은 그저 씁쓸할 뿐이다. 엄마든 아빠든 육아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건 매우 지루한 일이다. 집 가까운 카페나 식당에 가는 것도 기분 전환하기 위해서인데 카페조차 마음 편히 찾지 못하게 된 거다.
마을 초입에 다다르자 문 닫은 마을카페 ‘작은나무’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1994년 아이들의 아토피를 걱정한 주민들이 함께 만든 유기농 아이스크림 가게가 2008년 카페로 재탄생해 얼마 전까지 성미산 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해왔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과 건물주의 재계약 거부 탓에 수차례 사라질 위기에 처하다 지금은 아예 문을 닫은 상태다. 어린이집과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고, 육아하는 엄마·아빠들이 바람 쐬고, 성미산 마을 투쟁 당시 마을 사람들이 회의하던 작은나무의 풍경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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