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촌 갈무리
여름엔 밥해 먹기가 쉽지 않다. 불 앞에서 일하기도 힘든데 기껏 만들어놓은 음식은 빨리 상한다. 의기소침해진다. 나는 주로 아침엔 간단히 국에 밥 말아먹는데 여름엔 더운 국이 싫으니 찬물에 밥 말아먹는다. 그러자니 곁들여 먹을 밑반찬이 몇 가지 있어야 한다. 덥고 만사가 귀찮을 때 냉장고에서 꺼내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여름 밑반찬(이라 쓰고 안주로 읽는다)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더위에 몸이 휘지지 않으려면 단백질 보충이 필수적인데, 가장 요긴한 밑반찬은 소고기장조림이다. 나만의 비법 같은 건 없고, 여름이니 좀 짭짤하게 조리고 삶은 달걀과 꽈리고추를 넉넉히 넣는다. 장조림을 꺼낼 때 접시에 잘 나눠 담으면 세 가지 반찬을 꺼낸 착시효과가 난다.
영양보충에 도움이 되는 또 다른 밑반찬으로 명란젓이 있다. 솔직히 사시사철 먹고 싶지만 비싸서 못 먹고 여름에라도 먹어보자는 마음이다. 나는 명란을 살 때 백명란과 파지명란, 두 종류로 주문한다. 가격도 다르고 먹는 방식도 다르다. 비싼 백명란은 한 쌍씩 랩으로 곱게 싸서 유리그릇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먹고 싶을 때 바로 꺼내 사각사각 썰어 다진 파와 참기름을 뿌려 구운 김에 싼 밥 위에 얹어 먹는다. 이때 밥은 아무리 여름이어도 따뜻해야 한다. 따뜻한 밥 위에 셔벗처럼 섞이는 명란 맛이 기가 막히다. 저렴한 파지명란은 깨진 명란을 말하는데, 기왕 깨진 것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다진 파에 매운 고추를 왕창 다져 야무지게 섞어놓는다. 찬물에 밥 말아먹으면서 젓가락으로 조금씩 떼어 먹어도 좋고 달걀찜이나 달걀말이를 할 때 한 숟갈씩 넣어도 좋다. 주로 파지명란은 반찬으로 먹고, 백명란은 안주로 먹는다. 안주는 소중하니까.
오이지무침도 여름 내내 떨어뜨리지 않고 해먹는다. 오이지무침의 생명은 탈수인데, 어지간한 여자 악력으론 절대 꼬들꼬들한 오이지 식감이 안 나온다. 옛날 우리 어머니는 죽을힘을 다해 오이지를 짜다 “아이고, 이러다 홀목(손목의 방언) 다 나가겠다”며 음식용 짤순이가 있는 작은어머니를 그렇게도 부러워했다. 나도 늘 시장에서 오이지를 보면 살까 말까 망설이며 ‘홀목’이 시큰거리는 증상에 시달렸는데, 어느 날 꾀를 내어 오이지를 짜던 베보자기를 그대로 펼쳐 냉장고에 넣어 서너 시간 말렸다 무쳤더니 제법 꼬들해 요즘엔 그렇게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장의 밑반찬 가죽장아찌 얘기를 할 차례다. 가죽은 가죽나무(또는 참죽나무)의 순이다. 깨끗이 씻어 연한 소금물에 절였다 지그시 눌러 짜 그늘에서 반나절 이상 꾸덕꾸덕 말려 고추장에 차곡차곡 박아놓으면 장아찌가 된다. 가죽은 정말 오묘한 맛과 향을 내는데, 나무와 쇠와 흙의 맛이 골고루 나서 나는 그 맛을 ‘목금토의 맛’이라고 부른다. 찬물에 밥 말아 가죽장아찌 한 오라기 얹어먹으면 ‘수목금토’의 맛이 난다. 사등분한 김에, 참기름에 비빈 밥과 가죽장아찌 한 줄기씩을 넣어 꼬마김밥처럼 싸먹어도 맛있고, 대접에 보리밥 담고 가위로 잘게 자른 가죽장아찌와 오이지와 열무김치를 넣어 들기름 한 방울 뿌려 비벼먹어도 맛있다. 가죽을 박아놓은 고추장에도 특유의 향이 배어 듬뿍 넣고 비비면 가죽 향이 사무치도록 짙다.
이걸 보고 너무 궁금하다며 부랴부랴 가죽장아찌를 만들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가죽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반짝 따고 억세지면 못 먹는다. 나는 이미 제철에 가죽을 사서 여름 안주로 먹으려고 이 모든 준비를 해놓았다. 두 달쯤 된 지금이 딱 맛있도록 말이다.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니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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