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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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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주전부리 마른오징어튀김

마른오징어 튀겨야 맛볼 수 있는

열광적 맛이 못 견디게 그립구나
등록 2017-05-06 16:30 수정 2020-05-03 04:28
오징어튀김은 마른오징어를 불려 튀기는 게 제일 맛있다. 박미향 기자

오징어튀김은 마른오징어를 불려 튀기는 게 제일 맛있다. 박미향 기자

나의 오징어튀김 애착은 유서 깊다. 요즘 웬만한 호프집에 가보면 안주 메뉴에 오다리튀김이 있다. 번번이 시켜먹고 번번이 실망한다. 대부분 냉동이나 선동 오징어다리를 튀긴 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튀김은 마른오징어를 불려서 튀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대로변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다리튀김은 마른오징어를 불린 것이지만 보통의 귀여운 오징어가 아닌 대왕오징어 다리를 말려서 불린 것이라 맛도 별로고 무엇보다 다리 크기가 어마어마한 탓에 거기 돋은 빨판 크기도 어마어마해 얇은 손톱 조각을 씹는 것 같은 이물감을 준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한 주전부리는 마른오징어구이였다. 마른오징어는 비싸고 식구는 많으니, 큰마음 먹고 두 마리를 구워도 한 사람당 반 마리도 못 먹었다. 막내인 나는 빨리 먹지 못해 더 적게 먹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배려로 오징어 입은 내 차지였다. 나는 손과 이를 동원해 단단한 오징어 입을 까서 뾰족한 오징어 이를 빼내고 살만 발라 먹었다. 오징어 입은 단단한 만큼 살도 쫄깃했다. 요즘도 나는 오징어 입을 버리는 사람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안주로 오징어 입만 모아주는 술집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사정이 이러하니 어머니는 어떻게든 마른오징어를 늘려 먹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마른오징어를 불려 튀기는 조리법이 등장했다. 반죽을 씌우니 양이 늘어나고 기름에 튀기니 느끼해서 많이 먹을 수 없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양을 떠나 우리 가족은 그 맛에 열광했다. 그 후로 마른오징어를 구워는 먹지 않고 튀겨만 먹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굽는 건 곧바로 구우면 되지만 튀기려면 일단 마른오징어를 반나절 이상 불려야 하니 기다림이 필요했다. 불린 후에도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고 반죽을 입히는 번거로운 과정에다, 무엇보다 엄청난 기름이 들었다. 기름은 어찌어찌 재활용한다 쳐도,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아무리 마른행주질을 꼼꼼히 해도 오징어 살점 속에 밴 물기 때문에 튀길 때 기름이 뻥뻥 튄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큰 기름방울이 튀어 볼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어머니는 그것을 핑계로 마른오징어 튀기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다시 마른오징어를 구워 먹는 원시시대로 돌아갔다.

이십대 중반이었을 무렵 집 근처 백화점 지하 튀김코너에서 오징어튀김을 사먹었는데 놀랍게도 어머니가 어렸을 때 튀겨준 것과 똑같은 맛이 났다. 다만 몸통은 없고 다리만 있었지만 그게 어딘가. 한때 거기서 오징어다리튀김을 사먹는 재미로 살았는데 멀리 이사를 하고는 다시 가보지 못했다.

가끔 못 견디게 마른오징어튀김이 먹고 싶으면 내가 직접 튀겨먹는 수밖에 없다. 일단 마른오징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불리는데, 이때 적당량의 소금과 설탕과 맛술을 넣으면 좋다. 불린 오징어는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하고 밀가루를 빈틈없이 묻히고 반죽을 입혀 식용유 500㎖ 정도를 프라이팬에 붓고 튀긴다. 예고 없이 기름이 뻥뻥 튀니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직접 해보면 마른오징어튀김은 절대 집에서 해먹을 게 못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어머니가 이걸 안 해주게 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래도 안 파니 어쩌랴.

1년에 몇 번밖에 못해먹는 그 소중한 마른오징어튀김을 나는 5월9일에 해먹으려 한다. 투표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살림 매장에 들러 두 마리씩 포장된 마른오징어를 사다 튀길 것이다. 오징어 입도 잘 발라내 튀기면 세상에서 가장 쫄깃한 오징어볼이 된다. 개표 방송을 보며 맥주에 곁들여 먹으면 무척 맛있을 것이다.

권여선 소설가

*소설가 권여선씨의 음식 칼럼 ‘권여선의 오늘 뭐 먹지?’가 3주에 한 번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권여선씨는 추억의 음식을 둘러싼 다양한 사연과 간단한 조리법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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