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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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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득삐득’ 말려야 제맛

반건조 고등어ㆍ조기ㆍ박대ㆍ가자미…

말린 생선의 오묘하고 야릇한 감칠맛
등록 2017-07-06 18:59 수정 2020-05-03 04:28
고등어는 생물도 좋지만 삐득삐득 말려야 제맛이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고등어는 생물도 좋지만 삐득삐득 말려야 제맛이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늘 먹을 안주는 반건조 고등어로 결정됐다. 생선이라면 무조건 싱싱한 생물이 맛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겠지만 반건조 생선의 야릇한 감칠맛은 먹어본 사람들만 안다. 요즘 흔히 쓰는 ‘반건조’란 말을 내가 어릴 때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지역마다 표현이 달랐겠지만 우리 집에선 ‘삐득삐득’ 말린다고 했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시장에서 생선을 사다 소금을 뿌리거나 소금물에 담갔다 건져 채반에 널어 말려 먹었는데, 우리 집에선 바짝 말려도 안 되고 덜 말려도 안 되고 반드시 삐득삐득 말려야 했다.

오늘 오후 나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는데,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선물은 절대 아니라는 걸 미리 밝혀둔다. 얼마 전에 나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수산물 사이트에서 반건조 고등어와 조기, 박대, 가자미 등을 파는 걸 알게 되었다. 그곳 사장님이 1980년대 ‘삼민투 위원장’이었던 분이라는데, 뭐 자세히 광고할 수는 없으니 편의상 그곳을 삐득삐득 수산이라고 하자. 나는 심사숙고 끝에 우선 반건조 고등어 다섯 마리만 주문해서 먹어보기로 했다. 맛있으면 다른 생선도 주문할 생각이었다. 말린 생선은 각기 그 맛이 얼마나 오묘하게 다른지. 신생 사이트라 카드결제가 안 되고 통장이체만 됐지만 그 정도 수고로움이야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주문 이틀 만에 스티로폼 상자에 포장된 고등어가 왔다. 배송 한번 빠르네, 감탄하며 고등어를 차곡차곡 냉동실에 쟁여두었다.

언제 고등어를 구워 밥에 얹어 먹나, 언제 고등어를 조려 술 한잔 할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던 중 놀랍게도 오늘 똑같은 스티로폼 상자가 배달돼 왔다. 지난번에 덜 온 게 있나 싶어 냉동실에 있는 고등어 마릿수를 세어보았지만 정확히 다섯 마리였다. ‘원 플러스 원’인가 싶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보드라운 양심을 가진 나는 박스를 뜯지 않고 삐득삐득 수산에 표시된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한참을 걸어도 받지 않더니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그제야 확인해보겠다는 답장이 왔다. 역시 신생 사이트라 일이 체계가 없군, 이러다 망하면 큰일인데, 걱정하면서도 일말의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리라. 역시 내가 기대한 대로 잠시 뒤 “저희 잘못으로 두 번 발송됐습니다. 반송하실 필요는 없고 맛있게 드시고 많이 이용해주십시오”라는 문자가 왔다. 이게 내가 오늘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사연의 전말이다.

나는 떳떳하게 선물 상자를 뜯어 늠름한 고등어들을 꺼냈다. 문제는 우리 집 냉동실 공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 고등어 세 마리는 어찌어찌 쑤셔넣었으나 남은 두 마리는 어쩌겠는가. 맛있게 드시라 했으니 한 마리는 굽고 한 마리는 조려 밥과 술과 함께 맛있게 먹는 수밖에. 생선요리엔 된장국이 어울리니 그 전에 얼른 시장에 나가 아욱이나 근대를 사올 수밖에.

그리하여 오늘 저녁 나는 심심하게 된장을 풀고 국물용 흑새우 몇 마리와 아욱, 두부 몇 점 넣어 된장국을 끓였다. 삐득삐득 고등어 중 한 마리는 바작바작 굽고 한 마리는 감자 깔고 땡초(청양고추) 넣은 양념에 맵게 조렸다. 생선을 말리면 살이 단단해지고 깊은 맛이 난다. 뜨거운 밥 한술에 구운 고등어살을 뜯어 먹는 맛은 기름지고 고소하고, 소주 한 모금에 땡초 곁들인 쫄깃한 고등어살을 먹는 맛은 배릿하고 칼칼하다. 고등어조림의 감자를 잘라 먹거나 아욱된장국을 떠먹으면 그 달고 구수한 맛에 입안의 비린내가 싹 가신다. 참 맛있게 먹고는 있지만 한편으로 좀 불안하다. 이 자리를 빌려 삐득삐득 수산 사장님께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음에 주문하면 제발 두 번 발송하지 마세요. 망하면 안 되니까요!

권여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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