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손엔 저마다 삶의 궤적이 남아 있다. 화가의 손톱 사이엔 지워지다 만 물감이, 작가의 중지 손가락 마디엔 오랜 시간 펜을 잡아 생긴 굳은살이, 역도 선수의 손바닥엔 아무리 뜯어도 되살아나는 단단한 살갗이 있다.
노르웨이의 목수이자 기능장인 올레 토르스텐센의 손은 자재나 도구에 긁히고 찢겨 거칠고 두껍다. 그는 흔히 ‘노가다’라고 낮춰 부르는 일을 25년간 해낸 자신의 투박한 손을 사랑한다. “내 두 손은 내 나이는 물론 내가 하는 일과도 잘 어울린다. 큰 상처는 없지만 여기저기 다친 자국이 남아 있다. (…) 그 손은 바로 나, 목수의 손이다. (…) 내 삶의 증명서이자 이력서다.”
(손화수 옮김, 살림 펴냄)는 올레 토르스텐센이 130여 년 된 가정집의 다락을 방으로 고쳐달라는 주문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공사를 끝내기까지 약 8개월의 과정을 담았다. 나무 만지는 목수의 일은 일견 낭만적인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생계와 직결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난관이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다른 두 건축기사와 경쟁해야 한다. 견적을 너무 낮게 책정해선 안 된다. 공사부터 하고 보자고 덤볐다간 정말 공사만 하고 끝날 수 있다. 의뢰인의 마음을 얻을 전략도 있어야 한다. 일에 대한 열정을 지나치게 보이면 오히려 일을 얻기 어렵다.
공사 과정을 100분의 1로 축소한 설계도면엔 표시되지 않은 갈등과 허점, 위험으로 가득하다. 지은이는 통풍공사 사항이 설명서에서 빠진 걸 뒤늦게 발견한다. 그 탓에 의뢰인한테 비용이 추가된다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자재를 지붕으로 옮기는 날의 다짐은 하나다. “아무도 지붕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13m 높이에서 추락할 뻔한 적이 있어서다.
사는(buy) 곳이 아닌 사는(live) 공간을 만드는 그는, 먼지를 뒤집어쓰는 자기 직업을 자랑스러워하지만 미학으로 포장하진 않는다. “땀에 찌들고, 소음에 시달리고 (…) 멍이 들고 살이 찢어져 피가 흐르기도” 하는 일은 고되다. 하지만 “무거운 것을 맞잡고 함께 들어올리는” 배관공·벽돌공·전기기사·페인트업자 동료들이 있다. 분업이 미덕인 사회에서 이 협업 과정은 숭고해 보인다. “스스로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은 자기존중의 직업정신은, 육체노동을 지저분하고 하찮게 여기는 세태를 꼬집는다. 날씨와 생활이 직결된 노동자는 찬밥 취급하면서, 날씨가 휴가에 끼치는 영향에만 주목하는 일기예보를 언급하는 대목에선 뜨끔하다.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머리말과 맺음말이 없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 창틀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지은이는 책도 집 짓는 것처럼 썼다. 자신들의 침대와 욕실이 놓일 공간을 기대하며 다락을 오르내렸던 5살 프레드릭과 3살 옌스처럼 읽는 내내 마음이 두근댄다. 다락 밖으론 오슬로 토르스호브를 걷는 깐깐한 목수의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가 들릴 테다. “저 집 다락방은 내가 지어줬지. 사시나무로 만든 욕실은 아주 근사해.”
장수경 편집3팀 기자 flying710@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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