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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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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사랑의 힘

두 여자 미셸과 줄리엔의 삶…

결혼의 틀 밖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풍요롭게 함께 있음
등록 2017-06-22 16:53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늦여름의 금요일 밤, 아홉 시를 넘기고도 밖이 환했다. 넓게 트인 테라스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여자는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미셸은 캘리포니아의 여름을 마흔 번째 맞는 중이었다. 홍콩계 미국인으로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유치원 교사로 지내다 지금은 정보기술 관련 조그만 회사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줄리엔에게는 스무 번째 여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과 함께 정착한 도시는 1년 만에 남편과 헤어진 뒤에도 그녀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른 결혼과 잇따른 이혼은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 한국 사회로 돌아가 재진입하는 삶보다 혼자됨의 자유로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동시에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이어서 방송국 리포터, 파티업체의 매니저를 거쳐 유치원 교사로 근무했다.

혼자 또 같이 사는 데 슬기롭게 적응한 사람들

그곳에서 미셸을 처음 만났다. 한때 룸메이트로도 생활했던 그들은 비슷한 교육관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함께 어린이집을 열었다. 프로그램은 함께 짰지만 운영은 줄리엔이 도맡기로 했다. 미셸은 새 직장을 LA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글렌데일에 얻었고 근처 아파트로 옮겨 나갔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함께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때때로 만나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였다. 둘 다 긴밀한 관계의 친구를 여럿 두고 한 명에게만 집중하지 않는 생활을 했다. 그들은 혼자 또 같이 사는 데 슬기롭게 적응한 사람이었다.

독립은 현명한 분산의 힘으로 이뤄진다. 교류는 잦지 않지만 멀지 않은 곳에 부모가 살고 있는 미셸과 달리, 줄리엔은 미국살이에서 친족관계로 묶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결핍에 시달리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훌륭한 용병술 같은 친구 활용 능력이었다. 필요할 때면 친구가 있었다. 각각의 상황마다 단 한 명이 아닌, 몇 명의 친구가 번갈아 있어줬다. 그녀 또한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다자가 다자로 연결되니 의존이 전면적이지 않았고, 함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니 외롭지 않았다. 독립성은 혼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함께 있음으로 얻어진다는 것을 배우고 살아냈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미셸이 말했다.

“나도 이제 곧 마흔이야. 결혼에 대한 미련은 없는데, 아이는 아직 모르겠어.”

“이제 어쩌다 아이가 생기면 마지막 기회라는 걸 떠올릴 수밖에 없겠지?”

취기에 무심히 오간, 가벼운 웃음으로 버무려진 언급에 불과했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줄리엔이 한창 그녀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을 때였다. 미셸이 찾아왔다. 그녀에게도 근무가 한창일 시간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얼굴이 심상찮았다. 미셸이 입을 열었다.

“나, 좀 자고 싶어.”

줄리엔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무작정 그녀를 맞았다. 아이들에게는 개방되지 않는 자신의 방으로 그녀를 들여 침대에 누였다. 미셸은 두 시간이 넘는 오후의 긴 잠을 줄리엔의 소란스러운 어린이집 구석 작은 방에서 잤다. 아이들과 동료 선생들을 다 보내고 저녁의 정적이 찾아올 무렵 방문을 열고 미셸이 나왔다.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하려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둘 사이로 스며드는 깨달음

“임신이야.”

건조하고 무심하게 들리다 못해, 어딘가 냉소적인 기분이 드는 말투였다. 일어서려다 그대로 동작을 멈춘 줄리엔은 미셸의 임신 소식보다 양 눈가로 뜨겁게 흐르는 자신의 눈물이 더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 너머로 미셸의 차분한 얼굴이 보였다. 줄리엔의 머릿속에서는 그녀가 며칠 전 한인타운 중심가의 술집에서 내뱉은, 마지막 기회라는 구절이 뱃속의 태아처럼 강력하게 제 존재를 드러내는 중이었다.

“아직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 뱃속에 이물질 하나가 침범한 느낌이랄까. 당장은 괴이하고 불편할 뿐이야.”

그녀는 2주 뒤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을 앞둔 상태였다.

“1년을 준비해온 여행이라고. 아이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어. 계획대로 떠날 거야. 유산이 된다면 두통거리를 해결하는 셈 치지, 뭐.”

줄리엔은 별다른 의견을 보태지 않았다. 미셸이 어떤 결정을 내리건 그녀를 지지할 이유는 어디든 충분했다. 다음달 미셸은 줄리엔을 학교 근처 식당으로 불러냈다.

“아이를 낳겠어. 어쩐지 이 결심은 너한테 제일 먼저 전해야 할 것 같았어. 너라면 믿고 이 여정을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직관이 들더라. 어때?”

줄리엔은 어느새 미셸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그리고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대답했다.

선언으로만 끝나는 말은 흩어지기 마련이다. 구체적인 계획과 행동이 따라야 함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정기검진을 함께 가서 태아의 초음파 영상을 보고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다. 산모의 1차 보호자로서 줄리엔의 이름을 병원 서류에 적었다. 아이를 낳을 병원에서 마련한, 출산 및 육아 교육 프로그램에도 파트너로 참여했다. 아기 인형을 앞에 두고 기저귀 채우는 법, 편안하게 안는 법, 수유법 등을 배우는 자리에 둘은 함께 있었다. 배가 제법 불러오른 미셸 옆에 줄리엔이 앉아 있는데, 어느 순간 둘 사이로 스며드는 깨달음이 있었다.

아이는 믿을 수 없이 작고 뜨거웠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일상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가 인정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라고 해도, 병원의 출산 교육 프로그램에서 상정되는 양육자의 기본값은 아버지와 어머니로 이루어진 결합체였다. 이성애자 커플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는 이들은 성적 결합을 바탕으로 한 관계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싱글의 삶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한 그들의 조금 다른 조합을 두고 찾아오는 질문은 대개, 미셸과 줄리엔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줄리엔이 미셸을 향해 연정을 품고 있기에 모든 과정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여기저기 제기됐다. 두 사람은 거듭되는 질문에 곤두서지 않았다. 그들만의 특별한 여정을 개척해나가는 중이었고 둘 사이의 지지는 출산을 통해 더 돈독해졌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아이 아빠에게 임신 사실과 출산 결정을 알리는 것도 두 사람은 상의해서 결정했다. 아이 아빠는 미셸의 직장 동료이자 가끔씩 만나 잠자리를 같이 하던 대니라는 청년이었다. 알고 지낸 지는 1년가량 되었지만, 연인이나 공식 교제 상대로 서로를 여겨본 적은 없었다. 미셸은 출산 계획을 알리면서도 대니에게 자기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를 양육에서 완전히 제외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의 관계 변화를 아이를 통해 이끌어낼 의도는 없다는 것, 그의 도움 유무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 것을 밝혔다. 초반의 혼란을 대니 역시 그들과 함께 조금씩 극복해갔고 그들의 여정에 제3자의 입장으로 참여했다. 미셸의 베이비 샤워에는 줄리엔과 대니, 미셸의 부모님 모두 참가했다.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그들의 관계에는 어떤 강요나 무리함은 없었다. 느슨하게 지지하고 서로의 존재에 감사했다.

5월30일 화요일은 미셸의 출산 예정일이었다. 미셸과 줄리엔은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 시간으로부터 두 시간 전 미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저녁은 못 먹을 것 같아. 오늘 밤 병원에 가야 할지도 몰라.”

줄리엔은 수없이 가상으로 되풀이한 과정을 실행에 옮겼다. 그녀만의 출산 준비를 시작했다. 동료 선생들에게 내일부터 이틀 정도 결근할지 모른다고 양해를 구했다. 간단한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겼다. 미셸의 집에 도착해서 상태를 확인했다. 줄리엔을 기다리는 동안 진통은 4분 간격으로 좁혀졌다. 잠시 후 대니도 도착했다. 미셸은 대니에게 그녀가 집을 비울 동안 자신이 기르는 개들을 친구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그사이 줄리엔은 미셸을 데리고 예약한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출산이 임박한 순간에도 미셸의 보호자로 자신의 이름을 적는 기분은 더욱 특별했다. 이후 지난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본격적인 진통은 시작되지 않은 채 하룻밤을 지새웠다. 개를 맡기고 입원실에 찾아온 대니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몸을 들썩였다. 세 사람은 병원 직원 몰래 음악을 틀어놓기로 했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음악에 맞춰 건들건들 춤도 추었다. 오전 10시가 지나서야 양수가 터졌고 본격적인 출산 과정이 시작됐다. 줄리엔은 바로 미셸 곁에 있으면서 그녀의 아들 와이어트가 산도를 비집고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을, 엄마도 직접 보지 못하고 아빠는 두려워서 거울로 엿본 광경을 두 눈으로 목도했고 마침내 아이가 세상을 향해 힘찬 주먹질을 내지르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미셸은 덤덤한 표정으로 아이를 품에 안았고 잠시 후 곯아떨어졌다. 진통 과정 내내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던 그녀는 아이를 안고도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떠올릴 뿐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감격스러웠지만, 생을 두고 이루어질 감동이라 믿었기에 다가옴은 묵직했다. 아이는 믿을 수 없이 작고 뜨거웠다.

생명을 맞이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아이가 태어난 자리에는 대니의 부모님도 찾아왔다. 한국인 이민 1세인 대니의 어머니는 짧은 영어를 한탄하며 줄리엔에게 한국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우리 대니가 너무 철이 없어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결혼도 안 하고, 이를 미안해서 어째요?”

줄리엔은 애써 그녀의 착각을 수정하진 않았다. 결혼을 거부한 건 미셸이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걸 결혼의 틀로부터 분리시키자 미셸에게는 더 큰 선택의 여지가 주어졌다. 넉넉한 경제력은 없지만, 아이에게 안정적 환경과 지속적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십 년 넘도록 유기견 단체에서 활동하며 세상의 버려진 개들을 돌보고 입양하고 함께 살아오며 그녀가 체득한 건 생명을 맞이하고 사랑하고 기꺼이 이별하는 과정이었다. 그녀가 알고 꿈꾸는 사랑은 구체적이었다. 막연한 낭만과 행복으로 점철되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이 익힌 돌봄과 나눔과 책임의 감각을 믿었고 그녀를 지지해줄 주변의 힘을 신뢰했다.

며칠 전 줄리엔은 와이어트를 위한 작은 학자금 펀드를 들었다. 아직 미셸에게 소식을 알리지는 않았다. 다음주에 있을 미셸과 와이어트를 위한 파티에서 선물로 안겨줄 생각이다. 줄리엔과 미셸, 그들은 관계는 책임임을, 그러나 자유롭고 창조적인 책임임을, 구체적으로 성큼성큼 살아내는 중이었다.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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