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치를 19대 대선은 여러모로 기록적인 선거지만, 동물의 시선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이슈가 있다. 결이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유력 후보 모두 ‘동물 복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선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각 후보의 공약을 나열하면 △헌법에 동물권 명시 △유기동물 재입양 활성화 △취약계층 반려동물 예방접종 비용 감면 △개농장 불법 운영 근절 등이다.
한국에서 동물은 민법상 ‘물건’으로 분류된다. 한국 사회가 동물을 주체적 권리를 가진 ‘생명’이 아닌 ‘인간의 소유물’로 여긴다는 뜻이다. 5월, 누군가 새 대통령이 되면 동물의 세계에도 훈풍이 불어올까. 지난해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고 올 6월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는 동물보호 인식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냉혹한 현실에 놓인 한국 길고양이들을 들여다본다.
낙후된 마을에 숨을 불어넣은 고양이영화 속에서 카메라는 때때로 사람 무릎 아래보다 더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낮은 시선으로 본 세상은 익숙하고도 낯설다. 귀에 익은 자동차 소음은 위협적이고, 바로 눈앞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 오토바이 바퀴 따위는 거대하고 공포스럽다. 번쩍이는 간판 불빛은 별처럼 아득하다. 높고 빛나는 도시에서 길고양이의 삶은 고단하다. 제 몸을 안전하게 누일 곳을 찾고, 깨끗한 물과 먹을거리를 구하는 일은 매번 고난의 행군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시멘트 벽 사이에 들어갔다가 입구가 막혀 꼼짝없이 갇혀버리는가 하면, 아무리 애써도 한기가 드는 어두운 밤거리에서 따뜻한 엔진 열기가 남은 자동차 밑에 앉아 있다 비명횡사하기도 한다. 쓰레기봉투 찢는다고 욕먹고, 누군가에게 겨우 밥을 얻어먹고 있으면 그 밥그릇을 잽싸게 걷어차는 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견디다 못한 고양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도시의 밤, 어둡고 좁은 뒷골목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나는 길고양이입니다. 어디를 가야 허기를 채울 수 있을까요. 이 길의 끝에선 잠시 추위를 피할 수 있을까요.” 고양이는 ‘헬조선’을 떠나 봄볕 같은 고양이의 천국으로 답사를 떠나보기로 한다.
고양이는 이웃 사람과 길에서 사는 동물들이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 일본과 대만으로 긴 여정을 떠난다. 흡사 마이클 무어의 와 같다. (마이클 무어는 이 영화에서 수준 높은 사회복지제도를 갖춘 국가들, 이를테면 한 달치 급여를 휴가비로 주는 이탈리아, 잘 짜인 식단의 학교 급식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프랑스, 숙제는 구시대적 발상임을 강조하는 교육의 나라 핀란드 등을 여행하고 각 국가의 장점을 설파한다.)
고양이 눈에 비친 공존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대만의 낙후된 폐광촌 허우통. 이곳에서 고양이들은 오래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은 존재로 대우받는다. 허우통은 한때 대만의 최대 광산촌이었지만 폐광이 되면서 사람들이 떠난 빈집만 남은 동네다. 마을은 주민이 200명 정도로 황폐해지는데 느는 건 빈집에 터를 잡은 고양이뿐이었다.
지엔페이링은 우연히 그곳을 찾았다가 ‘고양이마을’의 사진을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를 본 사람들이 고양이가 점령한 마을이 궁금해 그곳으로 관광을 오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은 마을을 살린 고양이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길바닥에 아무런 긴장감 없이 철퍽 주저앉은 허우통의 고양이들은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고양이와 다른 눈빛을 갖고 있다. 고달픔과 공포가 사라진 눈빛과 몸짓은 보는 이의 마음도 온화하게 다독거린다. 사람을 보면 도망가기 급급한 대신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애정을 표현한다.
한국에도 ‘고양이의 섬’으로 많이 알려진 일본 후쿠오카의 작은 섬 아이노시마. 이곳 고양이들의 하루 일과는 인간이 보기에도 부럽다. 고양이들은 해안가 볕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먹이를 찾으러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가는 길에 낚시하는 주민이라도 만난다면 기대를 해도 좋다. 가만히 곁을 지키고 앉아만 있어도 작은 물고기 한 마리는 떨어지니까. 부른 배로 기분 좋게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산책하다 친구를 만나면 해가 질 때까지 나무를 타며 놀고, 낙조를 뒤로한 채 한참 몸단장을 하다 푹신한 흙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동물을 대하는 방식=인간을 대하는 태도이외에 일본 도쿄의 오래된 마을 아나키긴자, 오사카 니시나리 마을 등에서 인간과 평온하게 공존하는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영화는 단순히 고양이들의 천국만 그리지 않는다.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을 위해 TNR(포획-중성화수술-방사) 등을 통해 고양이의 개체 수를 조정하는 방식도 소개한다. 번식력이 왕성한 고양이는 그냥 두면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개체 수가 급증하고, 영역 동물인 만큼 고양이 자체도 싸움을 반복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웅크린 삶을 사는 이 땅의 고양이들은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의 삶을 대변한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국에서 사람과 마주치면 늘 어두운 구석으로 숨기 바빴던 고양이는 묻는다. “이런 모습이 부러운 건 왜일까요. 어째서 우리는 항상 도망쳐야만 하는 걸까요.”
고양이와 인간이 어울려 살아온 역사는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수천 년 동안 고양이는 인간에게 신묘한 존재 혹은 가장 일상적이고 친근한 존재, 때때로 인간 능력 밖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이야기 가운데 인간과 일상을 공유하며 위로하는 ‘프로힐러’ 고양이들이 출연한 영화를 모았다.
(영국·2017) 잘 팔리지 않는 버스킹 뮤지션 제임스(루크 트레더웨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병든 고양이를 만난다. 제임스는 고양이에게 ‘밥’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공연을 다니기 시작한다. 밥과 다니면서 예상치 못한 인기를 얻게 된 제임스. 제임스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돼준 밥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이들의 공연은 지금도 실제 진행 중.
(일본·2016) 아마추어 복서 출신 미츠오(가자마 스케)는 우연히 작은 고양이 ‘친’과 ‘쿠로’를 만나 함께 살게 된다. 꿈이 좌절된 백수를 위로하는 고양이 두 마리가 만드는 좌충우돌 동거기. 일본 아마존에서 30만 부 판매를 기록한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한국·2011) 한국 길고양이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길에서 여정을 이어가는 고양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봤다. 곱지 않은 시선 속에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조명했다. 고단한 삶 가운데서도 고양이 특유의 나른함과 여유를 즐기는 모습에서 오히려 위로를 얻는다.
(일본·2008) 천재 만화가 아사코(고이즈미 교코)는 13년 동안 키우던 고양이 사바가 죽고 실의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활발하고 자유분방한 새끼 고양이를 만나고, 아사코는 그에게 ‘구구’란 이름을 지어준다. 구구와 함께 생활하며 다시금 일상의 활기를 찾았지만 더할 것 없이 순조로운 나날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병을 얻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일본·2003) 지브리스튜디오가 그린 고양이 왕국. 17살 평범한 고등학생 하루. 어쩐지 잘 풀리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는 길에 트럭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한다. 덕분에 천국 같은 고양이 세계에 초대받은 하루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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