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으로 ‘대세론’이 유지될 때 언론은 별로 할 일이 없다. 특히 대통령을 만든다고 굳게 믿는 어떤 언론일수록 그 상황을 못 견뎌 한다.
한국 정치에서 ‘대선’이란 무대는 정책과 노선의 대결이 아니다. 한국에서 정책과 노선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러본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1987년 이후 인물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구도’ 선거를 오랫동안 해왔고, 그 뒤 바람과 지저귐(SNS)에 기대는 ‘이미지’ 선거를 몇 차례 경험했다. 그 와중에 언론의 구실은 언제나 절대적이었다. 구도와 이미지는 결국 언론이 어떤 인물에게, 어떠한 화제성을 부여해, 어떻게 기사화하는지에 따라 결정됐다. 그 어마무시한 자의적 결정을 언론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절대적 위치에서 수행해왔다.
갑작스런 양강 구도박근혜 시대의 몰락이 가시화하며, 언론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정치적 질서와 지형을 먼저 말하고 그 나머지를 얘기하는 방식으로 미래 권력을 논해왔다. 문재인 대세론에 동의했건 아니었건 모두 그랬다. 여당이 마땅한 후보를 내놓지 못하던 상황에서 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했고, 촛불의 의지가 공론장을 장악했기에 불가결한 흐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심 그 대세론이 한 번은 흔들리길, 아니면 깨져버리길 바랐다. 이는 얌전한 장사는 흥행에 실패함을 아는 언론 기업의 속성이기도, 실제 문재인의 대세론이 어떻게든 실패했음을 바라는 ‘어떤’ 언론 종사자들의 의지이기도 했다.
대세론을 깨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프레임(frame)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선거에서 프레임을 흔들 수 있다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프레임을 교체하는 데 기본적으로 후보의 역량이 필요하지만, 언론도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컨대,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던 경선에서 승리한 것뿐인데 갑자기 언론에 의해 ‘양강’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처럼. 안 후보의 등장을 두고 몇몇 언론은 잠재적 가능성만으로 여겨지던 ‘보수 연합 후보’에 의한 문재인 대세론 붕괴 가능성을 가시적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 여론조사를 통해 단숨에 ‘문재인 대세론’을 무너뜨렸다. 그 과정은 최근 몇 번의 대선 역사에서도 가장 빠르고 극적인 것이었다. 몇몇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문재인 대세론 붕괴가 기정사실화됐다. 한국 사회에서 한 번도 대선이 순탄하게 치러진 적 없다는 ‘근거인 듯 근거 아닌 근거’가 그 논리를 견인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자면 자신들이 여전히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어떤’ 언론들의 판짜기가 이번에도 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숫자는 의지를 싣고몇 년 전, 책 에서 안철수 후보의 미래를 예측하며 그가 보수언론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썼다. 틀렸다. 그는 지금 보수언론과 교묘한 공생을 하며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 자체를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활용에 다소 책략(trick)적 요소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책에서 안철수의 미래를 내다보며 했던 우려를 그대로 옮겨보자면, 언론에 여론조사는 단순히 조사된 수치를 종합해 보여주는 무엇이 아니다. 언론에 여론조사는 자신의 의지를 숫자에 실어 대중에게 전파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설명에 따르면, “질문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질문함으로써 존재하게끔 만들어지는 것이며 질문하지 않는다면 표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를 통해 ‘어떤’ 언론들이 대선 과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지나친 지적일까. 그리고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누군가’를 떨어뜨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이 칼럼에는 공저자로 참여했던 (메디치미디어 펴냄, 2011)의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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