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위험한 만남

외계인을 대하는 두 개의 태도, 영화 <컨택트>와 <라이프>
등록 2017-04-07 19:11 수정 2020-05-03 04:28
딜라이트 제공

딜라이트 제공

“우리는 달에 갈 수 있을까?”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에서 일한 흑인 여성들의 실화를 영화로 그린 에서 우주탐사팀에서 계산원으로 일한 주인공 캐서린(타라지 P. 헨슨)은 나사의 책임자 엘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에게 여러 번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인간을 우주에 보내기 위한 모든 실험의 근거가 되는 수학 계산을 사람에게만 의존하던 그 시절, 계산원들을 부르는 이름은 ‘컴퓨터’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달 탐사를 하고, 인간을 우주선에 실어보내고,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는 기계를 컴퓨터라고 부르는 시대가 열렸다.

는 공상과학(SF) 영화는 아니지만, SF가 무엇인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가능한 미래, 현실이 될 상상. SF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장르다.

“외계의 존재, 우리를 비추는 거울”

이 광활한 우주에 과연 우리뿐일까. 최근 나사는 지구와 비슷한 외계 행성을 7개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3개는 지구 환경과 흡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기권 밖 어느 별에 우리 같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와 4월5일 개봉을 앞둔 는 현대 우주과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에 놓인 이야기를 한다.

두 영화는 인간이 외계 생명체를 처음 만났을 때 가능한 두 개의 시나리오를 그린다. 미국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책 [SF철학]에 이렇게 썼다. “SF 소설과 SF 영화의 중심이 되는 것은 외계인이라는 존재가 우리 자신을 더 명료하게 보기 위한 거울이라는 사실”. 와 모두 외계인과 조우하지만 이들이 낯선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매우 다르다.

먼저 . 어느 날 갑자기 하늘 위에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다. 영화에서 ‘쉘’이라 호칭한 이 UFO는 세계 12개국 상공에 자리잡았다. 쉘의 문은 18시간에 한 번씩 열린다.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쉘이 뜬 나라에서는 자국 전문가들을 모아 이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지구에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 애쓴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애덤스)와 물리학자 이안(제러미 레너)도 그런 이유로 쉘과 접촉해 외계인 ‘헵타포드’와 만난다.

헵타포드는 ‘7개의 다리’라는 뜻이다. 영화가 그리는 헵타포드의 모습은 거대한 연체동물 같다. 이들은 먹물 같은 잉크를 허공에 뿌리며 원형의 문자를 쓴다. 루이스는 이들의 언어를 해석하고, 인간이 쓰는 언어를 헵타포드에게 가르쳐주며 소통을 시도한다.

영화는 이들 외계인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금세 단정하지 않는다. 새로운 생명체와 최초로 서로의 마음을 읽는 데 다다르는 순간까지 얼마나 지난한 노력이 필요한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그리는 데 집중한다. ‘너’ ‘나’ ‘사람’ 등 한 단어 말하기에서 출발한 헵타포드와의 대화 끝에 루이스는 헵타포드가 지구를 찾아온 이유를 밝혀낸다. 헵타포드는 “무기를 주다”라는 말을 전한다.

애초에 외계인을 침략자 혹은 적군으로 상정한 몇몇 국가는 ‘무기’라는 단어에 흥분해 공격 태세에 돌입한다. 하지만 다시 더딘 소통을 시도한 루이스는 이들이 3천 년 뒤 인간의 도움을 받기 위해, 지금 먼저 지구에 도움을 주러 왔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헵타포드는 공격받고 지구를 떠난다.

침략당하거나 침략하거나
영화 <라이프>(위쪽)와 <컨택트>(아래쪽)는 인류가 우주 생명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가능한 두 개의 태도를 보여준다. 딜라이트 제공, 플래닛 제공

영화 <라이프>(위쪽)와 <컨택트>(아래쪽)는 인류가 우주 생명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가능한 두 개의 태도를 보여준다. 딜라이트 제공, 플래닛 제공

가 외계인을 만나는 방식은 비교적 떠들썩하다. 최초의 외계 생명체를 찾아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우주선을 타고 깊고 검은 세계를 항해한다. 이들은 화성에서 동면한 세포 상태의 생명체를 발견한다. 이 사실을 지구에 알리자 온 지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한 미국 초등학생의 제안으로 ‘캘빈’이란 이름도 얻는다.

잠에서 깨어난 세포 캘빈은 놀라운 속도로 자란다. 세포에서 촉수와 비슷한 형태로 자라더니 이내 불가사리 모양으로 진화한다. 우주선의 과학자들은 캘빈이 모든 신체가 근육이자 뇌세포, 시각세포인 단일 세포로 이뤄진 생명체라고 결론짓는다. 온몸이 뇌와 근육인 캘빈은 지능이 뛰어나고 위력적 힘을 가진 생명체로 진화한다.

온 지구가 캘빈의 발견을 그토록 반가워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캘빈을 깨우고 진화시킨 과학자 휴(앨리욘 버케어)의 속마음이 지구인들의 속내를 반영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주 생명체와 만나는 걸 고대한 휴는 생물학자로 성장해 우주선에 탑승했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무중력 우주에서 오히려 더 자유롭게 움직인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캘빈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그는 이 외계 생명체에게 애정을 느낌과 동시에 불편한 자기 다리를 고쳐줄 줄기세포 치료에도 획기적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들에게 캘빈은 소통하고 대화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캘빈을 제대로 ‘활용’해보기도 전에 캘빈의 위력에 압도당한 이들은 이제 그를 무찔러야 할 대상으로 삼고, 지구로 데려가면 절대 안 될 괴물로 단정짓는다.

인류가 우주개발을 하는 최대 목적과 새 생명체를 찾아헤맨 목적은 같다. 지구를 이미 다 갉아먹은 인류가 우주개발을 하는 목적은 고갈된 에너지를 지구 밖 행성에서 끌어오고, 외계 행성을 식민지화하기 위해서다. 침략당하지 않으려면 침략하라. 에는 인간 외의 모든 것을 수단으로 바라보는 현생인류의 문제적 시선이 고스란히 투영됐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에서 해리슨이 아득한 눈빛으로 “달에 갈 수 있을까” 물었던 것처럼, 비현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다가올까. ‘우주’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수십 년째 두드리는 인류가 드디어 그 뚜껑을 열었을 때, 우리의 선택지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