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보도가 공정(fair)한 것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다. 누구나 언론이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공정에는 이미 ‘가치’가 포함돼 있다. 추상적이다. 무엇이 공정하고 어떤 것이 불공정한지 합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질문을 바꿔볼 수는 있다. 저널리즘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문제의 답은 비교적 간명하다. 저널리즘은 공동체 건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MBC의 ‘탄핵’ 방송 불방
MBC가 3월13일 방송 예정이던 <mbc스페셜> ‘탄핵’ 편을 ‘불방’시켰다. 3월10일 헌재의 탄핵 인용 선고 이후 보도 기능을 가진 모든 방송사가 탄핵 관련 다큐멘터리,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특집’으로 특별 편성했지만 MBC는 사실상 전무하다. 뉴스를 제외하면 <100분토론>에서만 탄핵을 다뤘을 뿐이다. MBC가 ‘탄핵’ 대신 택한 소재는 ‘탈북자의 귀농’이었다.
이 사태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 절차에 의해 파면된 역사적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는 방송 제작자의 당연한 의무를 MBC가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MBC가 ‘탄핵’ 다큐멘터리 방송을 포기한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제작진은 지난해 12월부터 방송 제작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김현종 당시 편성제작본부장(현 목포MBC 사장)은 “승인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언론노조 MBC본부에 따르면, 후임자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역시 “인수인계받은 것이 없으며, 이 아이템의 방송을 승인할 수 없다”고 했다.
MBC 쪽 설명은 사전에 제작을 승인한 바 없으니 제작이 됐더라도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시의적절하게 미리 제작을 준비해온 해당 PD를 칭찬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MBC는 불방 결정과 함께 그 PD를 ‘좌천’시켰다.
‘탄핵’ 편을 제작한 이정식 PD는 불방 결정 직후 이근행 전 노조위원장, 한학수 <pd수첩> PD 등과 함께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이후 MBC에서 계속되는 ‘부당 전보’ ‘업무 배제’다. MBC 내부에서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는 유배지다. 예산도 배정되지 않은 부서다.
두 번의 탄핵, MBC 보도는 어떻게 달라졌나
MBC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공영방송 MBC의 탄핵 보도는 ‘어떤 공동체, 어떤 시민, 어떤 민주주의’에 복무했을까. 탄핵 기간 중 MBC 보도를 분석해봤다. 탄핵 인용 선고일인 3월10일(금)부터 3월16일(목)까지 MBC <뉴스데스크>의 탄핵 관련 보도는 총 74건이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일주일 동안 <뉴스데스크>는 180여 건의 탄핵 관련 보도를 했다. 그때보다 보도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2004년 탄핵 국면에서 MBC는 일주일 동안 전체 뉴스 시간의 절반이 넘는 50.7%를 탄핵 관련 보도로 채웠다(‘대통령 탄핵 관련 TV 방송 내용 분석’, 한국언론학회, 2004, 이하 탄핵 방송 보고서). 하지만 이번에는 탄핵안이 가결된 날, 특집 편성으로 33개 리포트를 배치했을 뿐, 이후 뉴스에서는 탄핵 관련 보도 자체를 현격히 줄였다.
2004년에는 탄핵 발의 당일 74개의 아이템을 보도하고 이후 30개, 23개, 20개, 14개, 11개, 8개 순이었는데 이번 탄핵에선 가결 당일 33개의 아이템을 편성하고 이후 8개, 11개, 7개, 4개, 5개, 3개 순이었다. 종합편성채널 등장 등 방송 뉴스 환경이 변화했지만, ‘심층성’ 측면에서 후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뉴스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탄핵 방송 보고서를 보면 2004년 MBC 탄핵 보도 내용은 ‘①탄핵 정치 과정(20.8%) ②시민 여론 반응(19.7%) ③정부 대응(17.2%) ④전문가 대응(12.4%) 순이었다. 당시 MBC 보도는 탄핵 찬반 입장이 있음에도 ‘갈등적 이슈’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주로 비판됐다. KBS가 전체 기사 가운데 20.8%를 갈등적으로 보도하고 SBS 역시 16.4%를 갈등적 이슈로 다룬 데 반해, MBC는 갈등적 이슈로 다룬 보도가 12.4%뿐이란 것이 보고서의 분석 결과였다. 결론적으로 ‘지상파방송의 탄핵 관련 보도가 불공정했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당시 굉장한 논쟁을 불렀다. 국민의 70%가 탄핵에 반대했던 상황에서 ‘공정성’을 기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대세를 이뤘다. MBC·KBS·SBS 등이 포함된 한국방송협회는 언론학회의 탄핵 방송 보고서를 비판하는 논평에서 “산술적 균형보다 지배적인 의견을 더 비중 있게 다루는 게 공정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언론노조는 “정·언·학의 수구 복합체가 ‘언론 개혁 물타기’를 목적으로 ‘청부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탄핵을 ‘갈등적 이슈’ 넘어 ‘편향적 이슈’로 본 MBC
당시 언론학회는 양적 균형을 바탕으로 한 ‘정량적 분석’이라고 맞섰다. 탄핵 방송 보고서는 보수적 관점의 평가였고 지표 역시 보수적 입장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당시 보수적 분류법에 따라 이번 MBC의 탄핵 방송 뉴스를 분석해보면 어떨까.
이번 MBC의 탄핵 관련 보도 74건을 분석해보니, 그때와 마찬가지로 ‘탄핵 정치 과정’ 보도가 23건(31%)으로 가장 많았다. ‘시민 여론 반응’이 22건(29%), ‘정부 대응’ 15건(20%), ‘전문가 대응’ 7건(10%) 순이었다. 탄핵 과정 보도와 여야 정치권 반응을 묶어 보도하는 ‘탄핵 정치 과정’ 보도의 비중이 좀 늘어났고 탄핵 정치 과정에 대한 시민의 반응과 대중 집회에 관한 ‘시민 여론 반응’ 보도가 늘어났음이 확인된다. 다른 항목은 2004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양적 측면에서 보도를 절반 이하로 줄였지만, 보도의 내용적 구성은 얼핏 큰 변화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다만 결정적으로 달라진 게 있다. 문제를 ‘갈등적 이슈’로 본 비율이다. 2004년 MBC는 찬반 입장이 있음에도 문제를 갈등으로 본 비율이 현격히 낮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7년엔 아니다. 2017년 MBC는 탄핵을 철저히 ‘갈등적 사안’으로 봤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건 ‘시민 여론 반응’ 부분이다.
2017년 MBC 보도에서 ‘시민’으로 집중 조명을 받은 이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온 시민’이었다. 촛불집회가 20차에 이르는 동안 MBC는 어떤 경우 수십만 명이 참석한 집회를 단신 처리하거나 누락했다. 하지만 ‘태극기집회’는 달랐다.
집회 도중 경찰차를 탈취한 집회 참가자에 의한 사망 사고가 일어나는 등 사망자 3명이 나온 3월10일, <뉴스데스크>는 ‘보수 세력 결집… 태극기 집회 새바람’ 리포트를 보도했다. 3월11일에는 태극기집회 관련 보도를 2건 배치하고, 탄핵 찬성 집회 관련 보도를 1건 배치하여 ‘기계적 균형’마저 포기했다.
박근혜가 사택으로 돌아간 3월12일에는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과 ‘눈물의 송별’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삼성동 사택 앞에 모여든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착잡하고 마음 아파한다”고 전하며 박근혜가 이들을 향해 “엷은 미소를 띠며 지지자들의 연호에 화답했다”고 리포트를 이어갔다.
이후에도 MBC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시민들’의 동정과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반면 ‘탄핵 찬성 시민들’ 보도는 3월11일을 기점으로 아예 사라졌다.
이러한 보도 태도는 2004년 탄핵 방송 보고서의 결론을 빌리면, ‘아무리 느슨하게 봐도 편향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탄핵을 둘러싼 여론 지형은 2004년에 탄핵 반대 70%, 찬성 30% 안팎이었다. 2017년에는 완전히 뒤집어져 탄핵 찬성 80%, 반대 20%였다. 2004년 MBC 뉴스는 30%에 이르던 탄핵 찬성 목소리를 12.4% 정도 반영해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2017년 MBC 뉴스는 20%에 그치는 탄핵 반대 목소리를 아예 ‘메인’ 뉴스로 삼았다.
“애국 시민들은 MBC만 본다”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고영주 이사장은 상반기 MBC 업무보고를 받는 공식 자리에서 “애국 시민들은 MBC만 본다”고 발언했다.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종편에도 뒤지는 상황인데 고영주 이사장은 “태극기집회에서 MBC는 절대적 환영을 받고, MBC만 차량에 탑승해 취재가 가능하다”며 구성원들을 격려했다. MBC 앞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극우파 변희재는 공공연히 “MBC 보도국 간부가 먼저 달라고 해서, 태블릿PC 조작 자료를 다 가져갔다”고 발언하며 적극적 ‘공조’를 밝혔다.
“우리는 편들지 않는다”(We don’t take side). 영국 공영방송 BBC의 모토다. 1987년 확립된 이 모토는 이후 공정 보도의 경구처럼 사용되곤 한다. 공정성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 △갈등 사안은 다양한 사회계층의 의견을 포괄적으로 보도하며 △어떤 의견이 상당한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 이를 정당하게 반영해 다루며 △비록 지지 정도가 약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의견은 균형 있게 처리한다는 것이다.
BBC의 공정성 기준을 적용하자면, MBC 탄핵 보도는 ‘특정 계층의 의견만 구체적으로 보도하며,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의견은 정당하게 반영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주장을 불균형적으로 부각’했다고 볼 수 있다. 혹시 지금 MBC의 모토는 ‘우리는 편든다’인 것일까.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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