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년차. 일주일을 닫는 ‘의식’은 언제나 같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의 행동으로 부모의 참을성을 ‘무한’ 경신시키는 두 사내아이들의 ‘도전’이 끝나는 일요일 밤, 우리 부부는 조용히 의식을 준비한다. 북어포를 굽고, 간장에 청양고추와 참기름을 섞는다. 이 순간을 위해 차게 마련해둔, 만원에 4캔 하는 ‘편맥’도 꺼낸다. 그러곤 PLAY를 누른다. VOD 다시보기. 딱 2번 정도 예외가 있었다. 첫 시즌을 할 때와 얼마 전 할 때. 그때는 가능한 한 ‘본방’을 사수했다. 아이들과의 옥신각신이 힘들어 떼어버릴까 늘 고민하는 거실 TV가 용케 매달려 있음이 다행스런 시간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마봉춘’ 가문의 최종 유산 </font></font>
.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에서 거의 1위를 놓치지 않는 프로그램. (최근엔 좀 밀리기도 한다) 11년째 당대의 가장 ‘핫’하다는 프로그램들과 늘 변함없이 치열하게 경합해온 ‘광복 이후 최고의 TV 프로그램’. (한국갤럽 조사. 이 12.7%로 1위. 참고로 2위는 6.5%로) 지난 11년간 딱 2번을 제외하곤 언제나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무소불위의 절대급 예능. 여하튼 모든 TV 예능이 을 따라 ‘리얼 버라이어티’화된 이후에도 여전히 독단자로 존재하는 전무후무한 쇼. 사실 이런 설명도 거추장스러운 그냥 그 프로그램 .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만이 유일한 미덕으로 강조되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그 경쟁이 가장 치열해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안녕’을 고해도 그러려니 하는 방송가에서, 하나의 형식이 이토록 오랜 시간 유의미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에 가깝다.
물론 그런 프로그램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MBC의 간판 예능이라고 할 은 1981년부터 시작해 곧 불혹을 앞두고 있다. 은 1980년부터, 역시 1984년부터 지금까지 쭉 방송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과 은 정체성과 현재성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갖는다. 의 경우 롤러코스터 같은 부침을 겪어왔고, 그 사이 무수한 프로그램이 그 이름 안에서 생성되고 명멸해간 일종의 울타리였다.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형식에선 일관성을 유지해왔지만, 처럼 프라임 타임에서 각축해온 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시간이 흐르며 뚜렷한 ‘타깃 오디언스’(Target Audience)만을 염두에 둔 채 언저리 시간대를 채우는 프로그램으로 작아졌다.
‘무도빠’라면, 2012년 MBC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이 6개월 가까이 장기 결방됐을 때를 기억할 것이다. 이 없는 일주일을 분투처럼 삼켜야 했을 때, 누군가는 삶이 권태로워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레전드’로 회자되는 상당수 특집들은 그때 열렬한 다시보기를 통해 한층 뿌리가 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메워지지 않는 공백을 버티면서도 어떤 이들은 의 외주화를 시사한 ‘김재철을 암살해야 한다’고 비분강개했다. 제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버틸 테니 그 PD와 출연자들을 온전히 돌려달란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소비자 운동’이었다.
거대한 방송사의 위상과 역할이 한 예능프로의 방송 여부에 견줘졌던 당시의 상황은 전례가 없다고 할 정도로 희귀한 일이었다. 이후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MBC는 이제 파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직이 망가진 방송사가 됐고, ‘ 외엔 볼 게 없는 방송’이란 조롱을 듣고 있다. 그나마 몇몇 프로그램들의 분전으로 버티고 있지만 우리가 알던 그 MBC는 이제 없다. 은 말하자면 몰락한 ‘마봉춘’ 가문의 최후 품격이자, 최종 유산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토요일 저녁 6시30분, 집에 가고 싶다 </font></font>안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을 설명하는 게 진부하단 걸. 누군가에게 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고, 이번주는 필연적으로 다음주로 넘어간다는 변하지 않는 점진성의 여러 증거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일요일 낮 12시가 되면 변함없이 송해 할아버지가 나와 구수한 목소리로 ‘해외 동포’까지 두루 찾아 위문하는 쇼가 시작되고, 어느 평일 밤에는 김동건 아저씨가 자분자분한 말투로 이름 모를 가수들을 소개하는 트로트 한마당이 벌어지는 것처럼, 토요일 밤에는 그냥 그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다. 홍석재 기자는 “토요일에 외출하면 무의식적으로 저녁 6시30분을 귀가 시간으로 잡는다”고까지 했다.
의 현재가 과거 최고의 영광에 있던 시절만큼 반짝반짝하거나 폭발적이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의 몇몇 에피소드들은 너무 짙은 자기복제 혐의로 이 쇼의 생명력이 어쩔 수 없이 쪼그라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두근두근 다방구’편은 협찬받은 IT 장비를 최대한 노출시키는 것(PPL·간접광고)을 목표로 하는 것인가 싶은 ‘추격전’의 아류였다. 멤버들은 여전히 계략을 짜고 합종연횡을 시도하며 본인의 기량을 쇼에 최적화하기 위해 분투했지만, 추격전을 처음 접했을 때의 생경함과 카타르시스는 이제 뽑아지지 않는다. ‘미국 특집’ 롤러코스터 편 역시 비슷했다. 정준하의 개인기가 빛나긴 했지만 그건 그간 예능에서 무수히 해왔던 안전한 몸개그의 반복이었다. 과연 그런 도전을 위해 굳이 미국까지 가야 하는가의 안일함은 끝까지 떨쳐지지 않았다.
에 대한 그런 의구심조차 이제 수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녀석’과 ‘그 전 녀석’이 하차한 이후 아니 그 이전에도 이 위기라는 지적은 언제나 있어왔고, 그 호들갑스런 위기론은 언제나 위기를 과장해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위기론의 끝에서 은 언제나 수작의 특집들을 내놓거나 그 위기론 자체를 웃음 소재로 활용하는 영리한 전략으로 상황을 뛰어넘거나 봉합해왔다.
김태호라는 최고의 ‘오거나이저’와 유재석이란 최강의 ‘툴’이 존재하는 한 에 대한 걱정은 TV쇼에 대한 가장 쓸데없는 걱정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자기복제가 거론되는 올해만 하더라도 은 ‘히트다, 히트’ 같은 최고의 유행어를 길어올렸고, ‘미국 특집’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서는 MBC의 어떤 시사 프로그램도 만들어내지 못한 사회적 파급력을 선보이며 존재 가치를 증명해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무한상사’의 확장성</font></font>그리고 이제 대망의 프로젝트 ‘2016 무한상사’가 시작됐다. 멤버들의 콩트 실력을 겨루던 별 볼일 없던 코너가 어느새 시즌제로 정립되며, 장항준-김은희 부부를 연출자와 작가로 두고 김혜수, GD, 이제훈, 구니무라 준 같은 배우들을 조연으로 참가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로 확장된 것 자체가 이 이룬 성취이자 지평이다.
2014년 MBC 연예대상을 받은 유재석은 울먹이며 “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의 바뀐 인생을 지켜봐온 누군가에게 은 어쩜 인생의 시간 그 자체일지 모른다. 동시대에 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그 프로그램으로 한 주를 닫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이란 변치 않는 세계가 거기 있어줘서. ‘리얼’은 아니지만 그 멤버들과 나의 청춘이 컬래버레이션될 수 있어서.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font color="#00847C">※‘김완의 본방회피’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 달에 한 번, TV를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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