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시킬까? 퇴근길, 같이 사는 사람에게 저녁을 건너뛰어 출출하다고 하니 익숙한 듯 답변이 왔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퍼진 세계에서 나뉜 세계를 본다. 떼죽음을 당하는 한쪽과 별일 없이 돌아가는 대부분의 세계가 있다. 사상 최악의 AI 사태, 부끄럽게도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달걀 가격이 전에 없이 올라 조금 불편해졌다는 것 빼고는. 지금 이 순간 닭들은 영문도 모르고 숨이 붙은 채 거대한 구덩이 속에 던져지겠지만, 우리는 평소처럼 전화 한 통에 저렴한 가격으로 뜨끈하게 튀긴 닭을 얻을 수 있다.
분리된 지옥그들의 지옥과 우리의 일상은 분리돼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중순 AI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상향 조정했지만, AI는 꺾일 기세 없이 제주까지 번졌다. 살처분된 가금류는 3천만 마리를 넘어섰다. 예방적 차원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음을 당한 닭도 수백만 마리다.
끔찍한 지옥이 반복되는 가운데 인간의 세계는 평온하다. 농장의 닭들이 포대에 담겨 꺽꺽거리며 땅속에 묻히는 장면은 TV 채널만 돌리면 언제든 보지 않을 수 있다. 전화 한 통으로 치킨을 시켜 먹고, 마트 진열대에 깔끔하게 놓인 고기를 집어들면서 이들의 생산과정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도시인에게 축산 농가와 공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득히 먼 세계의 것만 같다. AI 원인으로 지적되는 공장식 축산의 잔혹성도 이 과정에서 함께 외면된다.
그러다보니 이 아비규환 속에 질문은 이런 것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AI’ ‘치킨’이라고 치면 ‘AI, 치킨 먹어도 되나요’라는 문장이 자동 완성되고, ‘굽네치킨 지금 시키려고 하는데요, AI 괜찮아요? 급해요’. 식욕의 간절함과 공포의 급박함이 뒤섞인 질문이 둥둥 떠다닌다.
정부의 대안은 어떤가. 올겨울 최악의 사태를 마주한 정부가 제시한 유일하고 새로웠던 대안은 해외에서 달걀을 수입해 오는 거였다. 값싸고 영양가 높은 식재료 공급 벨트의 차질을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렇게 한숨 돌리고 나면 더 잔인한 지옥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유례없는 전파 속도로 타격을 입은 피해 농가는 내년에도 위기에 노출될 수 있고, 인체 감염 공포에 떨었던 시민들은 똑같은 걱정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국고도 한정 없이 샌다. 이번 AI 사태에 투입된 세금이 2조원이라고 했는데, 이 지옥에 우리는 또 얼마를 퍼부어야 할까.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그의 첫 논픽션 에서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일관된 태도를 “탐욕과 지배”라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예의와 윤리 없이 생명을 상품으로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그런 거대한 탐욕의 트랙을 벗어나는 실험을 한 이가 있었다. 미국의 요리평론가 매니 하워드는 도시 한가운데 자신의 집 뒷마당을 갈아엎어 밭을 일구고 가축을 길렀다. 고기를 먹으려면 집 뒷마당에서 키우는 것을 직접 도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자 반짝이는 세계에 가려져 있던 비릿한 시간이 드러났다. 닭의 목을 비틀며 마지막 비명을 들어야 했고, 동물을 잡기 위해 칼을 갈면서 번뇌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는 이 시간을 통해 농·축산이 산업화·대형화하면서 발생한 ‘가려진 세계’의 거대한 막을 걷어치우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들은 물건이 아니다AI 사태를 맞아 농·축산의 대형화를 비판하며, 미국의 괴짜 요리평론가가 그랬듯 먹고 사는 일을 각자도생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조각난 고기가 만들어지는 분절된 노동의 세계, 가려진 시스템은 우리가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못하도록 한다. 동물을 포대에 담아 던져버리는 정부의 대처도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거기엔 병든 동물은 폐기해야 할 ‘물건’이라는 시선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공생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시작은 그들을 물건으로 보지 않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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