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와 무녀. 정교일치 시대에 어울릴 법한 단어 조합이지만, 2016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단어가 칭하는 당사자들은 스스로 연관성을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으나, “미끼를 물어분” 미디어·네티즌의 상상력은 무한확장하고 있다. 소설 ‘공주전’, 한시 ‘박공주헌정시’, 인포그래픽 ‘헬조선 계급도 ver.1026’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인기몰이 중인 풍자 콘텐츠 다수는 이같은 캐릭터 설정이 주축이다.
진지한 비판에도 빠지지 않는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10월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샤머니즘 무당 통치국을 만든 대통령”이라 썼고,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10월28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게 뭐냐 하면 무당이 공수(신령의 말을 전하는 행위)하면서 탁탁 내뱉듯이, 정치인의 행태가 아니라 하나의 무당춤을 춘 거예요.”
<font size="4"><font color="#C21A1A">‘진짜’무녀는 어떻게 생각할까</font></font>“만약 (무당이 아니라) 유명한 교회 목사님이었거나 스님이었다면 어땠을까?” 11월3일 서울 성북구 자택에서 만난 정순덕 무녀는 ‘속상함’부터 토로했다. 1975년 내림굿을 받은 정씨는 8살 때부터 40년 이상 무당의 삶을 살아왔다. 1980년대 전국을 돌며 민주열사들의 진혼굿을 했고, 1996년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에서 양민 학살 피해자 진혼굿, 1998년 제주에서 4·3 희생자 진혼굿을 주관했다. 정씨는 ‘무속은 종교가 아닌 미신’이라는 사회적 냉대를 수없이 겪어왔지만, 이번만큼은 “(무속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종교학자이자 무속연구자인 김동규 박사는 ‘무속=미신’이란 인식의 역사성부터 짚었다(김씨는 정씨와 부부 사이다. 제824호 레드기획 <font color="#C21A1A">‘무녀의 남편, 학자의 아내’ </font>참조). 무속이 오랜 기간 당대의 지배적 세계관을 공고히 하기 위한 ‘타자’로서 기능해왔다는 것.
“한국에서 ‘미신’이라는 말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적 의미의 ‘종교’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나서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나머지들, 그렇다고 과학에도 포함될 수 없는 것을 모아 부르면서 나타났다. 식민지 근대 시기 종교에서 가장 ‘진화’한 형태가 그리스도교로 여겨지면서 무속은 ‘원시·민속신앙’ 영역에 갇혔다. 해방 이후에도 교과서에서 ‘근대화의 장애물’로 서술됐다.”
특히 일제는 1915년 이른바 ‘공인 종교’의 범위를 불교·기독교 등에 한정했다. 무속을 포함한 60여 개 종교는 ‘유사 종교 단체’로 분류돼 경찰 단속을 받아야 했다. 식민 당국은 군중이 모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산신제, 기우제, 별신제 같은 제의를 위생과 치안을 이유로 금지하거나 해산시켰다(박일영, ‘한국 근대의 샤머니즘과 인권’).
‘무속은 귀신을 믿는 미신’이란 오해도 일제강점기 굳어졌다. 무속은 하늘의 신령, 바른 신(正神)을 모시고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잡귀, 잡신은 풀어먹인다(귀신의 배고픔을 달래서 멀리 내보내는 것을 말함). 기독교에서 타락한 천사인 악마가 인간에게 해를 입힐 때 기도의 힘을 통해 이를 쫓아내는 논리 구조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무속의 내적 논리로 봤을 때 최태민·최순실씨는 무당이 아니다.” 김씨가 평가했다. 정씨가 이를 받았다.
“무당은 상식에 어긋나는 공수를 내리지 않는다. 비이성적 공수가 있다면, 그건 ‘허주’라고 부른다. 잡귀, 잡신이 말하는 걸 의미한다. 바른 신은 이성적이다. 하늘의 신령님들이 함부로 쉽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무속 전통에 따라 정상적으로 학습한 무녀들은 신의 이름을 빌려서 함부로 떠들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한 말. 40여 년 동안 무당으로서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여 실천하려 했다. 내림굿은 무당의 길에 들어서는 초입일 뿐이다. 정씨는 14살에 국가무형문화재인 김금화 만신(큰무당)의 신(神)딸이 되어 무당 수업을 받는 등 10년 이상 교육을 받았다. ‘성숙한 무당’이 되려면 끊임없이 기도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제주 4·3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굿은 준비하는 데만 1년을 보냈다. “희생자들 넋이 수만을 넘으니까, 준비도 철저히 해야 했다. 준비 기간에 신령님이 ‘이 굿을 왜 하는 거냐, 너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냐?’라고 수천 번 물어볼 때마다 ‘아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 여전히 살아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다’라고 답했다. 신령님은 ‘만약 거짓이면 상상할 수 없는 벌을 받게 된다’고 했다.”
‘세월호 7시간 굿판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정씨는 “진짜 무당이면 그런 걸(비상식적 일임을) 미리 알기 때문에 (굿을)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젊은 시절 경험도 들려주었다. “‘돈이 안 들어온다’고 고민하는 대부업자 신도에게 천제를 모시자고 권한 적이 있다.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무릎 꿇고 빌었는데 (신령이) 안 내렸다. 신령님이 ‘천제를 모실 때는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사람을 위해서 해야지, 한 개인이 피 빨아먹는 돈을 받아주겠다고 천제를 지내느냐’면서 내리지 않는 거다.” 그는 “단순히 개인을 위해서 천제를 지내면 안 되겠구나” 배웠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무속 폄하와 여성 비하가 만나면</font></font>
김씨는 ‘무속 폄하’와 ‘여성 비하’를 결합한 인식도 100여 년 묵은 사회적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무속은 어리석은 아녀자들이나 믿는 것, 무당에게 속임 당하는 여성이 문제’ 같은 믿음이 고스란히 투영된다는 것이다. ‘무속은 미신’ ‘무속 폄하+여성 비하’ 등 사회 저변에 깔린 인식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더 키우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김씨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에 ‘배웠다’는 사람들, 지식인층까지도 무당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이유가 뭘까 고민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먼저 무속을 곧 미신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알더라도, 그렇게 해야 현 정부 비판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예컨대 ‘나보다 훨씬 못한 무당이 우리를 가지고 놀았다’ 이렇게 해야 더 큰 분노를 부를 수 있다고 보고 의도적으로 썼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무당에 대해 숙고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적 편견 때문에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두 사람은 이같은 레토릭이 다른 약자층에 피해 입힐 가능성을 우려했다. “특히 지금 막 신내림 받은 애기 무당들은 상처를 많이 받는다. 가족의 반대 등 힘든 과정을 거쳐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시작하려던 이들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분노와 조롱이 무속·여성 편견과 함께 봇물처럼 터지니, 당사자는 물론 가족이나 신도 모두 타격받는 거다. 정식 교육을 받는 무녀들조차 싸잡아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정순덕 무녀) “문제는 레토릭이 레토릭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실체를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분명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할 말이 많다. 특히 지식인이고 연구자라면.”(김동규 박사)
김씨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무당’을 생각해달라고 덧붙였다. “무당들도 사회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건 다 한다. 촛불집회에 나가는 무당도 있고, 주부의 일을 일상적으로 하는 무당도 있다. 동시에 종교인으로서 기도를 한다. 무당이라고 다 가정 버리고 사회 버리고 기도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무당이냐 아니냐’는 지엽적 문제 </font></font>두 사람 모두 더 큰 걱정거리는 나라 상황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무속이라는 ‘곁가지’보다 ‘본질’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번 음력 개천절에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천지신명님 앞에 사회의 혼란스러운 바람을 재워달라고 축원문을 올리고 천문도 열고 왔다. 그런데 이번 천제 일주일 전에 요사채에 불이 나서 제복이 다 타버려 천지인이 모아지지 못했다. 30여 년 동안 천제를 올리면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던 적은 처음이다. 긴 터널 속에 있는 암담함, 암울함 같은 걸 느꼈다.”(정순덕 무녀)
정씨는 조심스럽게 최근 공수도 전했다. “내년에 또 큰 혼란이 있고 권력 공백도 생길 수 있다.” 그래도 ‘봄’은 온다고 덧붙였다. “7~8년 전부터 국운이 계속 나빠졌다. 지금부터 3~4년 좋지 않은 운이 계속될 것 같아서 걱정이 크다. 대한민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흙탕물이 맑은 물로 정화되기 위해 마지막 혼란을 겪는 것과 비슷하다. 다시 꽃은 핀다.”
“최순실씨가 무당이냐 아니냐는 지엽적 문제다. 그 문제를 부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최순실이 무당이냐 아니냐, 사이비 종교에 빠졌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선출직 대통령이 합법적이지 않고 비민주적 밀실정치를 했다는 게 문제 아닌가? 그런 부분이 논의의 주요 대상이 되어야 한다.”(김동규 박사)
다른 종교 연구자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10월31일 기독교 인터넷 언론 에 기고한 칼럼 ‘박근혜와 영세교, 그 담론의 불온성’에서 이렇게 썼다.
“신학연구자로서, 이 담론(박근혜 정부의 측근 비리를 둘러싼 담론) 속에 등장하는 영세교에 관한 담론을 보면 우려스런 점이 없지 않다. 한마디로 그것은 불온하다. 박근혜 정부의 권력 농단 세력이 자행한 비리와 범죄를 성찰하고 청산하는 데 있어 부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 박근혜와 영세교를 연계시키는 담론 속에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숱한 비리와 범죄로 이어진 권력 농단의 주범을 영세교로 국한시켜 생각하는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나쁜 종교’가 ‘끝판왕’아니다 </font></font>무당의 ‘억울함’을 푸는 방법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청와대발로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소식이 쏟아지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사이비 종교’ 혹은 ‘나쁜 종교’를 문제의 원인으로 몰아버리고 싶은 욕구도 이어질 것이다. ‘아무말대잔치’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다.
<font color="#008ABD">글</font>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font color="#008ABD">사진</font>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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